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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Sep 09. 2024

바뀐 창애의 세상

(소설)창애야 넌 무슨 꿈을 꾸니?

창애의 옆자리 할머니가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익숙한 환자복 대신 집에서 가져온 화려한 채색옷을 입은 모습이 새삼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채색옷이 얼굴까지 환하게 물들인 듯 오늘따라 얼굴에도 유난히 생기가 감돈다.  

 아니... 저 생기는 명절을 맞아 아들이 자신을 데리러 온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줄곧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새벽 일찍 눈을 뜨자마자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들은 오후에나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할머니의 단장은 이미 오전에 끝났다. 그리고 저 생기를 안고 몇 시간이나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엄마 벌써 준비하셨네? 어서 갑시다!"

할머니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할머니가 아들과 떠난 후 창애가 병실을 둘러본다. 총 6개의 침대 중 주인이 남아있는 건 단 2개. 북적북적하던 요양병원이 오늘따라 조용하게 느껴진다. 

창애의 명절은 올해도 작은 침대에서 흘러가는 중이다. 

 



1년 중 창애를 가장 힘들게 하는 날은 단연 명절이다. 집안의 모든 식구들이 이곳 집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대가족 살림을 챙기기에도 버거운데 집안 식구들이 먹을 명절음식까지 만들어야 하니 창애의 몸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결혼 후 첫 명절은 전쟁이 일어나도 이것보다는 덜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미선이가 태어나고 이후 2~3년 터울로 4명의 딸이 태어나 손을 보태줄 나이가 되자 한결 수월해지긴 했다. 

  몸이 조금 편해졌다고 마음까지 편해진 건 아니었다. 매년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집안 어른들의 잔소리와 동서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창애를 괴롭혔다. 처음 4년 동안은 '언제 아이를 갖냐'라고 하더니 딸만 4명을 낳자 아들도 못 낳는 여자라고 비난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창애는 아들에 대한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딸의 서러움, 여자로서의 불평등을 토로할 때도 창애는 그저 남의 일로만 여겼다. 자신에게는 딸도 일을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는 아버지와 딸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애가 옷을 만들겠다는 꿈을 꿀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혼 후 미선이가 태어나고 둘째 딸이 세상 빛을 봤을 때도 창애는 감사했다. 또 하나의 자신의 편이 생겼다는 감사였다. 그러나 창애를 향해 아들을 갖지 못하는 여자라는 비난이 계속될수록 창애는 점차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틀린 건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겠다던 당당한 창애는 점차 자신의 길을 지우고 다른 사람들이 걷던 길을 눈치 보며 걷기 시작했다.

 창애도 아들이 갖고 싶어졌다. 자신을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건 어쩌면 아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셋째, 넷째 그리고 드디어 다섯째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을 가진 창애는 세상을 모두 가진 듯했다. 그렇게 창애의 세상은 바뀌었다. 창애가 아들에게 집착한 후 딸들에 대한 관심은 점차 소홀해졌다. 첫째 미선이의 탄생을 기뻐하며 자신의 편이 되어줄 거라 기대하던 창애는 이제 아들의 편이다.

 그렇다고 창애가 자신의 아이들을 미워했던 것은 아니다. 아들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살아갔을 뿐. 자신의 처지를 아는 딸들은 아마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우리 엄마 뭐 하고 있었어?"

미경이 창애가 좋아하는 음식을 가지고 찾아왔다. 

"명절이라 병원이 텅텅 비었네. 우리 엄마 심심하겠다. 큰아들은 왔다 갔어?"

창애가 고개를 젓는다. 

"막내아들은 통화했어?" 

창애가 다시 고개를 젓는다. 

미경이 한숨 쉬며 전화기를 꺼내든다. 그리고 동생의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누른다. 

통화음이 가고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스피커폰으로 바꾼다. 

"야! 명절인데 너는 엄마한테 전화 한 통도 안 하냐?"

"엄마한테 갔어?"

"그래! 자 엄마랑 통화해!"

막내아들이 창애의 안부를 이것저것 묻는다. 창애는 질문에 따라 휴대폰 화면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젓기도 한다. 통화가 끝나고 미경이 준비해 온 간식을 꺼내놓는다. 

"우리 엄마 좋아하는 거 해왔어. 얼른 잡숴봐"

창애가 천천히 다 먹고 난 뒤, 미경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엄마 갈게. 명절 잘 보내고"

명절에 혼자 두는 엄마가 안쓰러워서인지 얼굴을 더 쓰다듬은 뒤 문을 나선다.  

"할머니 갈게요"

함께 온 손녀딸이 인사를 건네고 걸음을 돌리며 텅 빈 병실에 누워있는 창애에게 눈길을 한번 더 보낸다. 

"다들 집에 가고 없네. 우리 할머니는 얼마나 심심할까"

"장소가 바뀌면 치매가 심해지니 집에 데리고 올 수가 있어야지. 자식이 7명이나 있는데... 우리 엄마 말년 참 외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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