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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Sep 16. 2024

좋은 엄마1

(소설) 창애야 넌 무슨 꿈을 꾸니?

요양병원 생활을 오래 한 창애에게는 필요한 게 거의 없다.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삶에 만족하는 건지 정말 필요한 게 없는지 알 길은 없다. 창애는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는다. 

미경은 창애를 찾을 때마다 떠먹는 요플레를 한 아름 사다 놓는다. 요플레가 먹고 싶다고는 안 했지만 누구보다 맛있게 잘 먹을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 요플레 넣어둘게"

미경이 나무 서랍을 꺼낸다. 안에는 화려한 꽃무늬 옷이 한 벌 들어있다. 창애에게 남은 마지막 옷. 

요양병원 생활이 길어지고, 외출도 어려워지면서 다른 옷은 모두 처분하고 즐겨 입던 꽃무늬 카라 티셔츠와 일바지만 챙겨다 놓았다. 요플레가 한구석에 자리를 잡자 잘 포개어진 옷 위로 그늘이 지며 서랍장이 닫힌다. 



 

 펑퍼짐하지만 화려함은 잃지 않은 바지. 생활의 흔적이 남은 상의.

양장점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창애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쇼윈도 안 실크 원피스를 입는 마네킹이 나보다 더 예쁠 거야'라는 생각에 닿자 초라함과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창애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 30년 전만 해도 또각구두를 신고 원피스를 입고 당당하게 양장점을 들어설 미래를 그렸더랬다. 일바지를 줄곧 입는 지금의 모습은 계획에 없었다. 

 과거를 겨냥한 한탄이나 미래를 향한 아쉬움도 잠시, 창애는 금세 현실로 돌아왔다. 몇 해 전 창애는 영수와 딸들을 남겨둔 채 아들 둘만 데리고 도시로 올라왔다. 전처의 자식들이 터줏대감이 되어 창애의 아들들에게 못되게 구는 탓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곳이 필요했다. 또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지내는 게 출세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도박에 빠진 남편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지도 어느덧 수 십 년. 남편 없이 홀로 도시생활을 하는 것쯤이야 무서울 거리도 안 됐다. 오히려 남편과 시댁 뒤치다꺼리 안 해도 되니 속이 시원했다. 

 평소 요리를 잘했던 창애는 조그만 식당을 열었다. 창애의 손맛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제법 장사가 잘됐다. 식당 외에도 돈이 될만한 건 이것저것 다했다. 돈을 모을 때쯤이면 찾아와 손을 벌리며 난동을 부리는 남편 때문이라도 꾸역꾸역 더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야 내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창애는 굳게 믿었다. 

 동네 일을 하다 보니 인맥이 쌓였고 장성한 딸들의 취업자리도 어렵지 않게 청탁할 수 있었다. 아들들은 운동을 시켰다. 동네사람들은 보란 듯이 아이들을 키워내는 창애에게 칭찬 대신 수근수근으로 노고를 치하했다. 오랜 시댁생활로 다져진 덕분에 다른 사람의 수군거림이나 뒷이야기는 무섭지 않았다. 좋은 엄마를 향한 질투어린 시기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창애에게 미선이 찾아왔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했다. 

"그 먼데까지 가서 생활할 수 있겠냐"

"내가 못할 건 또 뭐야"

"아니... 걱정되니까 글제. 그래서 얼마가 필요하다고?"

미선은 결혼하면 남편을 따라 먼 도시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그러니 창애에게 혼수자금을 달라고 찾아왔다. 하필이면 며칠 전 영수가 돈을 가져간 탓에 당장 건네줄 큰돈은 없었다. 그렇지만 혼수도 제대로 안 해왔다고 내 딸이 무시당하는 꼴을 죽어도 보기 싫었다. 

"며칠만 기다려주면 그 돈 줄란 게. 좀만 기다려. 글고 상견례 날짜를 잡아야할것인디"

 상견례가 세 달 뒤로 잡혔다는 이야기를 듣자, 창애의 머릿속에 조금 전 양장점이 떠올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미선의 손을 끌고 시내의 양장점으로 향했다. 

"여기 옷 좀 만들어 주쇼!"


어느덧 상견례 날이 되었다. 창애는 실크 원피스를 입고 있는 미선이 양장점 쇼윈도 속 마네킹보다 더 예쁘다고 생각했다. 이날 창애는 처음으로 또각구두를 신는 날보다 더 설렜다. 


    



"엄마 어릴 때는 할아버지랑만 살았어?"

"할머니가 삼촌들만 데리고 가버렸어. 엄마가 없으니까 내가 혼자 김치 담그고 할아버지 밥상 차려드리고 했지. "

"그러면 어릴 때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겠네?"

"없지... 그러고 보면 너희 할머니가 참 독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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