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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Sep 23. 2024

좋은 엄마 2

(소설) 창애야 넌 무슨 꿈을 꾸니?

드르륵드르륵

창애의 손에서 빨간 옷감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포개진 천 사이사이 가지런히 박히는 실들. 구색을 갖춰가는 옷감을 보자 물레 손잡이를 돌리는 손과 페달을 밟는 발에 더욱 힘이 실린다.

창애는 여름을 맞아 어린 손녀딸의 피스를 만들기로 했다. 멀찍이 구경하던 손녀딸이 어느새 옆으로 바짝 다가와 앉았다. 

조그만 입에서 오랫동안 참았던 궁금증을 터져 나온다. 

"할머니 이게 뭐야?"

"니 거 옷 맨들어 줄라고"

"진짜? 내 거야?"

"오냐. 거의 다 됐어"

"할머니 패션디자이너 같다"

손녀딸의 말에 창애가 슬며시 웃음을 짓는다. 

"할머니도 한 땐 그런 꿈이 있었지"

"할머니도 꿈이 있었다고? 옷 만드는 거?"

"그럼! 나도 하고 픈게 있었지. 근데 너네 이모랑 엄마, 삼촌들 키우고 먹고 사느라 그 꿈도 잊어븟제. 또 다른 꿈도 있었는데 그것도 참되기 어렵드라. "

"아... "

어린 손녀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잠시의 침묵 뒤 손녀딸의 말이 이어진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창애가 그저 웃는다. 

"다 됐다! 자 입어봐"

옷을 건네받은 손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오른다. 재빨리 머리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근데 할머니.. 머리가 잘 안 들어가...."

"오매... 머리구녕을 너무 작게 만들었나 보다."

두 사람은 낑낑대며 머리를 집어넣는다. 한참을 애쓴 뒤 드디어 원피스가 몸 한가운데 제자리를 잡았다. 

빨간 원피스 위로 상기된 손녀딸의 얼굴이 어째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할머니 그래도 난 좋아 이거"




 창애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은 고생 가득한 삶을 살지 않길 바랐다. 고생은 엄마가 한 것으로 족했다. 불행의 시작은 결혼이었다. 오랫동안 창애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못난 남편을 향한 원망과 결혼에 대한 후회. 삶에서 도려내고 싶은 부분이었다. 

 그래서 창애는 아이들의 결혼에 집착했다. 상대의 집안을 보고 직업을 봤다. 별 볼 일 없는 상대는 기를 쓰고 반대했다. 결혼하겠다며 두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독하게 밀어냈다. 지금은 원망해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고맙다고 할 것이다. 

  언젠가 셋째 딸 민영이 결혼하고 싶다며 사윗감을 데려왔다. 동네에서 함께 자란 남자였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을 돕고 있으며, 가업을 이어갈 생각이라 했다. 창애는 단칼에 곧 죽어도 결혼은 안된다며 퇴짜를 놓았다. 만약 결혼한다면 자신과 같은 삶을 살 것이다. 창애는 확신했다. 1년이 넘도록 민영과 남자는 창애를 설득하려 애썼다. 그러나 창애는 꿈쩍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축적된 시댁살이 기억이 단단한 성벽이 되어 창애의 귀와 마음을 막았다. 난공불락. 무너뜨리지 못할 성벽이었다. 

 먼저 제풀에 지친 건 남자였다. 민영에게 이별을 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밤낮 울기만 하던 민영이 어느 날 멀끔한 모습으로 창애에게 찾아왔다. 

"나 결혼 안 해. 평생 안 해. 죽어도 안 해. 이건 엄마 때문인 게 엄마는 절대 잊지 마"

"그딴 결혼 안 한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좋은 남자 만나면 되지 뭘 결혼을 안 해야. 이따위 결혼했으면 니 인생이 어찌 됐을지 안 봐도 훤해. 나처럼 살았겄지. 시부모 모시고 하루종일 부엌에 앉아서 뒤치다꺼리하다가 니 삶 다 끝날 것이다. 니가 하고 픈거, 갖고 픈거 다 생각도 못하고 남이 하고 픈거, 갖고 픈거만 해주다고 끝난다고. 나처럼 살지 말라고 그란건디 엄마 맘을 이라고 모르냐 "

"내가 어떻게 살았을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 엄마가 나에 대해 뭘 알아. 난 엄마처럼은 안 살았어. 난 지창애가 아니라 손민영이니까. 엄마 인생에 내 인생을 투영하지마."

창애와 크게 다투고 민영은 독립해 나갔다.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창애는 민영을 보지 못했다. 한 통의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병원이랬다. 민영이 위독하다고 했다. 

창애는 한걸음에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신장이 망가져 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담담히 전했다.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며 빨리 결정하라고 조용히 재촉했다. 창애와 영수가 먼저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영수와 민영의 조건이 일치했다. 그러나 영수는 거절했다. 기증자에게도 위험한 수술. 아니 기증자가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 영수는 이미 죽어가는 한 사람만 죽자고 했다. 창애의 울부짖음에도 영수는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민영과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민영은 창애의 손을 잡았다. 

"민영아. 미안허다. 좋은 엄마가 아니라서. 너 하나 살리지도 못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너 원하는 대로 살라고 할 것인디."

"엄마. 고마워 결혼 반대해 줘서. 얼마 안 남은 생.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마누라가 아니라 나로 살게 해 줘서. 좋은 엄마였어"

창애의 손 위에 포개진 민영의 손이 차갑게 식어갔다. 

민영은 창애가 직접 만든 수의를 입고 마지막 길을 떠났다. 만드는 동안 흘린 눈물로 창애도 딸의 길을 함께 했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승진했다고 월급 받자마자 옷 한 벌 사주더라고. 화사하니 어찌나 이쁘던지. 호호호."

"아이고 좋겠네요. 우리 딸은 얼마 전 여행 갔다 왔다고 망고를 먹어보라고 보내주더라고요. 생전 처음 먹어보는 건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이따 내 방에서 하나 갖다 줄게요. "

"영숙 할머니도 자식 잘 두셨네. 엄마가 잘해주셨나 봐요. 그러니 자식들이 이렇게 잘하지."

병원복을 입은 할머니 두 분이 함께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간호사가 다가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영숙 할머니, 망고 알레르기 있으니까 절대 망고 드시면 안 돼요. 따님한테 저희가 잘 설명할게요. 다시 드시면 큰일 나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창애가 서랍 속에 있는 요플레는 하나 꺼내 먹는다. 얼굴엔 편안한 미소가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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