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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스 Apr 23. 2024

21. 고촌? 거기가 어디야?

김선임은 어떻게 대표님이 되었을까?

서울 강서구가 어디 붙어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강서 주민이 된지도 6개월이 지났다.

아직은 강서가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대부분의 약속은 강남에서 있기 때문에 강남으로 가는 일이 많았다.

어마어마한 9호선이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강남을 가는 것이 큰 부담이 아니었다.

신방화역에서 신논현역까지는 3~40분 정도면 갈 수 있기 때문에 강남은 그냥 동네 마실 가듯이 큰 부담이 없었다.

어떨 때는 지하철 타고 강남 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경우도 꽤 많았다.

나의 경우에는 마포에서 나고 자라서 신촌 홍대가 익숙하지만 와이프의 경우에는 강남에서 회사를 다녔고 오래 살아서 강남이 익숙한 듯 했다.

그리고 첫 신혼 생활을 서초동에서 해서 그런지 나도 이제는 강남이 편했다.

그렇다고 지금 마곡의 생활이 불만인 것이 아니었다. 

그냥 전에 거주했던 강남이 익숙해서 이리라.

차츰차츰 강남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겠지.


주말에 강남에 약속이 있어서 같이 움직였다.

오찬 모임이였기에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3시경에 9호선을 타고 귀가를 하고 있었다.

“여보는 스파게티 별로 였지?”

“아냐, 나도 가끔 먹고 싶어. 여보 아니면 내가 이런 음식을 어디에서 먹어.”

“미안. 여자들은 그래. 나도 사실은 순대국에 소주가 더 좋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집에 오는 길이였다.

강남의 반대쪽으로 가는 열차이기도 했고, 시간이 어정쩡 해서인지 열차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일부러 들으려고 들은 것은 아닌데 아줌마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있으시고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는 좀 세련된 복장의 나이가 있으신 여자 두분 이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자기. 김포는 어때?”

아마도 강서에 사시다가 김포로 넘어가신 것 같았다.

“너무 좋지. 지하철이 아직 없지만 강서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고 차로 외곽타면 지방가기도 수월하고 너무 쾌적하고 좋아.

제일 중요한 건 집값이 서울의 반값이니 너무 좋지.

그리고 대부분이 새 아파트라 너무 깨끗하고 좋지.”

“그래? 거기가 어디라고 했지?”

“고촌. 방화동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고촌이야. 김포라고는 하지만 그냥 서울이지 뭐.”

나와 와이프는 귀가 번뜩 뜨였다.

다른 사람들이 들리지 않는 조용한 소리로 얘기했다.

“어디라고? 고촌?”

“조용히해!”

‘고촌고촌고촌’

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지역 이름을 되뇌었다.

신방화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오면서 와이프랑 얘기를 나눴다.

“김포가 집값이 싼가?”
 “지도를 보니 가깝긴해. 강서나 김포나.”

“한번 가보자.”

“그래 놀러도 갈 겸 한번 가보지 뭐.”


우리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매 주말마다 놀 거리(?)를 찾고 있었다.

근처에 재래 시장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방신시장이 있어서 놀러가서 장도 보고 오뎅도 사먹고 재미있게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듯이 항상 새로운 것을 찾기 마련이다.

이번 주말은 김포다!

지도를 보니 김포라는 곳은 익숙한 모양이 아닌 길쭉하게 생겼다.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 지 몰라서 일단은 그때 할머니께 들었던 지명인 고촌을 네비게이션으로 찍고 갔다.



“어? 뭐야 정말 가깝잖아. 15분밖에 걸리지 않아.”

“그래 어쩌면 김포라는 이름이 주는 심리적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나보다.”

“와 뭐야 새로운 집도 많고 깨끗하잖아.”

“그니까, 난 황금빛 평야를 생각했네. 하하하”

“여기 근처에 모델하우스가 있는 것 같아 한번 보러가자”

“어디? 풍무동이라고 조금만 들어가면 모델하우스가 있는데. 푸르지오래.”

“그래 가보자.”

우리는 차를 몰아서 풍무동으로 들어갔다.

지리적으로는 장곡을 지나서 태장로를 타지 않고 오른쪽으로 빠지면 바로 풍무동이다.

도착해서 보니 주위에 정말 논밭만 잔뜩 있고, 반대쪽에 덩그러니 모델하우스가 하나 지어져 있었다.

부동산 침체기라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했다.

모델하우스로 들어가니 도우미 분들께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찾아오신분 있으실까요?”

“네? 아 그냥 구경하러 왔는데요.”

“아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무전기로 나지막이 “워킹 한 팀” 이라고 어렴풋이 외친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나이가 40대 초반 정도의 아주머니가 오셨는데, 실장님이라고 했다.

뭐 이쪽 세계에서는 다들 직함이 팀장 아니면 실장이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천천히 하나하나 꼼꼼히 소개를 해주셨다.

우리가 보았던 모델하우스는 구래동에 푸르지오3차라고 25평 단일평수로 약 1500세대가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였다.

건설사는 대우건설.

‘25평이면 얼마나 되는 거지? 생각보다 꽤 크구나’’

빌라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평수는 감이 없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33평 아파트보다는 작지만 우리 둘이 살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규모의 아파트였다.

방도 3개나 있고, 화장실도 2개. 중간에 펜트리라고 하는 창고도 있어서 웬만한 잔 짐들은 그 곳에 넣어두면 될 것 같았다.

옛날 같으면 열 식구도 살 수 있을 크기였다.

그렇게 잘 둘러보고 손에는 팜플렛과 곽티슈를 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좀 복잡했다.

‘꼭 서울만 고집하지 않으면 이렇게 좋은 집들이 많구나’

“여보 어땠어?”

“뭐가?”

“모델하우스 말야”

“새아파트라서 그런지 좋더라. 그리고 푸르지오라는 브랜드라서 그런지 몰라도 25평인데 엄청 커보이던데. 공간도 활용하기 좋고”

“그치? 그런데 분양가가 2억5천이래. 역시 아파트는 비싸.”

“푸르지오잖아”

“푸르지오라고 하더라도 구래동이면 지도를 보니까 거의 강화 다 가서던데. 너무 멀어.”

“그렇긴 해.”

“그런데 모델하우스 나와서 반대쪽에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가 있던데. 그거 봤어?”

“어. 그것도 푸르지오던데.”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며칠쯤 흘렀을까?

갑자기 번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왜 우리 모두는 행복하지 않지?’

실상은 그랬다.

내가 막내기도 하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좀 늦게 낳으신 편이라 아버지는 벌써 은퇴를 하셨고, 어머니는 식당을 하셨는데 몇 년전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으시고 치료를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장사를 접으시고 은퇴를 하신 상황이었다.

자식이라고는 누나와 나 단 둘 뿐인데, 누나는 결혼을 해서 자기 식구 살피느라 부모님까지 돌 볼 여우가 없었다.

아직은 혼자인 내가 생활비로 100만원씩 매달 드리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도 매일매일이 힘이 들었다.

부모님 마포집 중도금 이자를 내랴 생활비 100만원씩 드리고 나면 우리집은 와이프 혼자 생계를 

꾸려야 했다.

거기다가 우리가 분양을 받고 입주를 하면서 우리에게도 엄청난 빚이 생기면서 와이프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겨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에 부모님 마포집에 완공이 되었고 입주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 중도금 이자는 내가 어떻게 어떻게 냈었는데 저희도 이제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대출이 많아서 아파트 이자랑 생활비는 한동안 어려울 것 같아요.”

“뭐라고? 그럼 두 노인네가 돈이 어디 있어서 대출이자 내고 생활은 어떻게 하니?”

“어머니, 그런데 저희도 살아야죠. 제가 그동안 집에 아무것도 안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날 이후로 부모님과의 연락이 좀 소원해 졌고, 중간에 누나가 몇 번 전화해서 난리를 쳤다.

“두 노인데 굶어 죽으라는거야?”

“누나 미안해. 나도 살아야지.”

결국 부모님은 대출이자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두분이서 사시기에는 33평 아파트가 너무 크다시며 망원동에 신축빌라를 사서 들어가셨다.

8억이 조금 안되는 금액으로 매도를 하셨고, 망원동 신축빌라는 2.5억에 매수를 하셨다.

그 마포 아파트는 부동산이 한참 활황기였던 2022년도에는 20억까지 치솟았다.

어쩌다가 부모님께 얘기를 하면.

“없는 사람들은 이러나 저러나 돈 못버는 거야.”

“그래도 속상하지 않아요?”

“괜찮아 어차피 그런 돈 만져보지도 못해봤고, 여태 거기 살지도 못했어. 대출이자 때문에.”

“좀 아깝긴 한데, 지금까지 가지고 오지는 못했을꺼 같아요.”

“난 암시롱도 안하는데 가끔 마포에 가면 여편네들이 그렇게 입방아를 찧는다. 형님 그거 지금 얼마나 가는지 아냐고. 그래서 요즘 마포 안가.”

“그래 우리꺼 아니라고 생각하면 맘 편해. 그래도 엄니가 속 상해 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해서 참 다행이네요.”

어찌 되었든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이 되고 서로가 인정을 하는 상황이지만, 사실 처음에 생활비를 못 드린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많이 속상하셨을 것 같다.

우리가 새 아파트에 들어가고 부모님도 새 아파트에 들어갔지만 역시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옷처럼 너무나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부모님은 15평정도 되는 망원동의 빌라로 이사를 가셨고, 나도 김포로 이사를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와이프는 곧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서 김포로 들어간다면 나만 고생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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