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도리 그 도리를 지키느라 정작 딸아이 입에 따뜻한 밥을 포기 할 형편인데도 지켰다.
그쯤 했으면 되었다.
이제 고만 해도 어차피 그렇게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오히려 경우 무시하고 공부만 하던 동생이 돈 많이 벌어 돈으로 이것저것 잘 챙기니 보기에도 더 효녀인 듯 보이고..
시어머니께 도리 지켜 내느라 없는 돈 쪼개서 명절이고 행사고 오라고 할 때 마다 꼬박꼬박 찾아가고 명절 제사음식 준비 20년 동안 도와 드렸건만 이제야 한다는 소리가 겨우 부자 집 며느리가 좋더라 어디 며느리가 시어머니 집 사줬다 하더라.....소리만 들었다.
아무것도 정말 안했다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부자 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며느리가 원망스럽다는 말인가
그런 며느리를 만난 게 싫다는 건가
지금이라도 부자 집 며느리를 보고 싶다는 건가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으면 해서 옹골차게 용심을 부리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
그냥 마구, 마구 부끄러울 뿐 내 남편의 어머니가 저 정도 밖에 되지 않음이,...
어머니가 가시 돋친 험한 말을 나에게 자꾸 쏴 붙일 때 마다 남편과 이만큼 씩 이만큼 씩 멀어져 갔다.
그걸 원하신 건지...
이젠 비켜드릴 수도 있는데 못마땅한 며느리 치우고 새 며느리 받으시라고....
그때마다 남편에게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가 올바르다고 생각 하는가에 대해 확답을 받고자 매번 닦달했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은데 매번 그럴 때 마다 남편을 추궁했다.
하지만 내가 원한 답변은 전혀 듣지 못하고 오히려 본인의 어머니를 좋게 미화해 두둔하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또 더 흥분하고 화가 나서 날뛰었다.
그렇게 첫 미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그게 쉽게 사라지긴 힘들지만....이제 조금 아주 조금은 이해를 해 보려고 한다.
본인도 본인의 어머니가 그 정도임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따뜻하게 교양 있는 말로 감싸주는 마음 넓은 시어머니가 아님이 얼마나...
이건 이런 뜻으로 이렇게 말했을 테고 이건이래서 그랬을 거야 하며 감싸 주기도 한두 번이지 않을까?
어느 해 명절인가....“요즘은 좀 어떠냐?” 하고 묻는 어머님 말에 내가 “어머님 요즘은 아파트 주차장 문제부터 해서 자꾸 주변 사람들과 싸울 일들 까지 많이 생겨요 안 그래도 힘든데...”하고 말했더니 딱 한마디...“그럴수록 네 인성을 돌아봐라!!”
딸이 친할머니 댁에 가는 걸 힘들어 했다 그러니 불편하고 싫어서 가면 밥을 잘 먹지 않는다.
그걸 보고 어머니는 “아가 뭘 잘 안 먹노? 우리 집에는 다 잘 먹는데” 남편이 오이는 안 먹는다고 하니 “원래는 먹었는데 왜 지금은 안 먹는다고 하느냐” 남편은 말했다. 태어나서 오이를 먹은 적이 없다고......
처음 남편과 인사를 드리러 간 날 집에서 해주는 밥을 먹고 식구들 앞에서 어찌 할 봐를 모르고 있다가 어머님께 겨우 용기내서 “모르는 게 많으니 앞으로 잘 가르쳐 주세요” 했더니 “그래 많~이 배워야겠다.” 딱 한마디 하시던 어머니....왜 저러시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밥 먹고 설거지 한다고 안해서 그런 것 같다고.....
그런 어머니가 최근에는 그러셨다. 부잣집 며느리가 좋더라고....참고 참은 결과인건가?
아주 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본인의 어머니를 좋지 않게 얘기 할 수 없어서 그런다 하더라도...아니 아주 조금이라도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하며 스스로 위로를 해 본다. 명절 이틀쯤 전이면 어김없이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거의 통화가 없다가 무슨 일이 있거나, 명절 이틀 전이 되면 전화가 온다.
이유는 딱하나 콩나물 삼천 원 어치를 사서 다듬어 오라는 말을 하 기 위해서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어머니가 제사재료 준비를 거의 다 해놓으면 하루 전 가서 전이며 나물 등의 음식들을 도와 드리러 가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모자라 보이시는 건지 그걸 꼭 시키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늘 살던 곳이 주택가가 아니어서 .....이유는 집이 없어서 늘 상가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콩나물을 사기도 어렵지만 자영업으로 쉬는 날도 없이 일하느라 집에서 편히 앉아 콩나물을 다듬을 시간이 없다는 거다. 처음에는 가게에서 하다가 바빠서 못하면 그 다음날 어머니 댁에 가는 길에 사서 차에서 하기 도 했다.
아이가 어려 울고 보채는 걸 업고 전을 부쳤고.... 콩나물도 다듬어 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 해 보니 너무 화가 났다. 다른 자식들은 아무도 안하는 제사 준비를 늘 가서 전을 부치고 도와 드리는데 이런 것 까지 해야만 하나 싶어 졌다.
한번은 실컷 다듬어 놓은 콩나물을 오는 길에 빠트리고 왔다. 그랬더니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집에 다시 다녀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어머니 댁 아래 시장에서 사와서 셋이서 다듬었더니 10분도 걸리지 않더라.....나 혼자라면 일하며 짬짬이 한 시간 넘게 걸릴 일이...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라. 그래서 어느 해 남편에게 어머니께 말씀 드리든지 아니면 나는 이제 못하겠다고 했던 그해 남편은 혼자 구석에서 콩나물을 다듬었다.
이런 어머니가...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 주지 않으시고 가족으로 받아 주지는 않으면서 나의 도리만 강요하는 어머니가, 처음에는 너무 서운했고, 이제는 그냥 싫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해야 해!
하지만 유치한 장난 같은 ‘물에 빠지면 내가 먼저냐 어머니가 먼저냐?’ 하는 실없는 농담에도 화끈하게 대답 한 번을 안 해 주고 현재는 네가 수영을 못하니 네가 먼저지 그런다.
그렇다면 내가 수영을 했다면 어머니를 먼저 구하겠다는 소리인거지....
참 머리가 나쁘고 요령이 없다.
아니면 그런 농담마저도 나에게 허용 할 수 없다는 것인지....
하지만 아주 본인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현 해 주는데 감사해야 할지....
나에게 잘한다, 친정에도 잘한다. 너무 고맙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나 둘 중 누가 우선순위인지가 알고 싶은 거다.
이렇게 그게 중요하게 된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다.
계속 나를 적이 되게 가시 돋친 말들로 상처를 주고 나를 계속 밀어내서 결국은 남보다 못한 사이를 만든 어머니 때문 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절대 가까워 질수 없게 만드는 건 본인의 어머니인데 자꾸 나에게 참아라 이렇게 해봐라 하니 나는 더 짜증이 나고 약이 오르는 거다.
사람들은 늘 가만히 있는 나에게 늘 참으라고 한다. 봐주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봐주고 두 번 봐주면, 그들은 그런 나에게 다시 또 그렇게 한다.
왜? 가만히 있으니까..
적당히 나를 이야기 하고 적당히 나를 챙겼어야 하는데
온전히 내가 다 받고는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 격이니 내 잘못도 있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단지 화를 내거나 가만히 있거나 그것만 존재한다고 생각 했을 뿐..
그때마다 이런 건 잘못되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다. 나도 기분 나쁘다.
말을 했어야 했다.
화를 내지 말고 말을 했어야 했다.
내 상황과 내 기분을 말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냥 참거나 소리치거나...
둘 다 잘못된 방법이란 걸... 이제 서야 알아간다.
50이 다되어 가는 이즈음...
더 이상 내가 상처 받지 않도록 더 이상 다혈질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무식한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반성을 했는지...
필요한 걸 울부짖으며 소리쳐서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정 당당히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조곤조곤 나의 상황과 상대가 알지 못하는 나의 입장을 말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많은 것이 바뀐다.
때로는 사람들이 모두 나 같지 않아서 진심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시어머니도 그랬을까? 그랬다면 우리사이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너무 갈 때 마다 어머니 말에 상처를 받으니 남편에게 부탁을 해봤다. 내가 말하는 것 보다 아들이 말하면 나을 테니 나대신 어머니께 얘기 좀 해달라고 했더니 나는 그런 거 못한다. 어른은 어른이기 때문에 너처럼 그렇게 어른에게 대들고 싫은 소리 하라고 배우지 않아서 본인은 못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가르친 어른이니 아무 말도 해 보지 못하고 결국 나만 혼자 속상해 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좋게 들었을 리가 없을 듯싶다. 단지 말대답 하는 며느리가 되어 있었겠지....
이생에서는 포기 하고 싶은 일이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남편의 어머니와 잘 지내는 일
이젠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가 않다.
그만큼 상처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