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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는....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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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Oct 15. 2024

부모와의 관계 2

소아우울증

걸핏하면 울었다.

토라지고 울고 나의 하루 종일 감정 선은 거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변 가족들은 늘 입에 달고 살았다. 저거 또 삐졌나?

또 우냐? 너는 하루 종일 우냐? 하지만, 아무도 그 당시에는 나의 그런 행동들이 우울증일거라고 아니 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라고 생각 하지 못하는 듯 했다.

딱히 재미있는 일이 없고 아침에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다.

동생은 눈을 뜨면 방에서 뒹굴 거리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보내는데 나는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준비를 하고 유치원을 갔다.

친구도 사귀지 못해 혼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유치원..

차라리 수업시간이 훨씬 좋은 유치원

뭘 하든 수업이 시작 되어야 마음이 편해지고, 쉬는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어디론가 몰려가면 나는 두려웠다.

그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모르겠고, 뭘 하고 놀아야 할지도 몰랐다.

모르니 쉬는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아이들은 딱히 무슨 생각을 하며 노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나는 이것저것 다 생각 하느라 정작 노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초등학생이 되고 쉬는 시간이 괴로운 건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했다.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내가 공부를 잘 하는 아이 모범생 정도로 생각해 주는 것 같았다.

실은 친구가 없어서 노는 방법을 몰라서 공부를 하는 줄 모르고

그렇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 지도 모른 채 공부를 했다.

그랬더니 반에서 일등, 더 나아가 올백에서 하나 틀리기, 그랬더니 반장이 되었고, 그랬더니 아이들이 친구라도 되어 주는 것처럼 조금씩 다가와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다.

나랑 놀아주는 친구가 아니라 그냥 내가 신기하고 부러워서 질문공세를 펼치는 팬들 같았다.

나는 점점 더 아이들과 멀어져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살았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맞춰 매일매일 화려한 도시락을 싸줬다.

베이컨 밤 말이 소풍이 아니어도 김밥, 볶음밥을 계란에 부친 주먹밥, 비엔나 볶음 거기다 담임 선생님 도시락까지 싸서 엄마의 음식 솜씨를 맘껏 자랑 하시는 중이었다.

아이들은 신기하기 그지없는 나의 도시락이 궁금해 점심시간만 되면 우르르 몰려와 나 하나만 나 하나만을 외치며 젓가락을 들이 밀었다.

나는 딱히 신기하지도 그게 먹고 싶은 마음도 없는 터라 그대로 아이들에게 다 뺏겨 버렸다.

아이들은 그렇게도 악착같이 살아가고자 했다.

어린 아주 어린 나에게도 느껴지는 살고자 하는 악착스러움..

나는 그때부터 그런 게 없었던 듯하다.

나 하나만을 외치며 젓가락을 들이미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먹고자 하는 열기와 악착스러움이 늘 나를 밀어 내 버렸다.

그런 아이들과 나는 친해 질수가 없었다.

그냥 나는 학교를 다니고 선생님이 엄마가 시키는 일들을 해내고 싶을 뿐이었다.

완벽히 해내면 엄마가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너무 좋아해 주시니까.

또 아이들 앞에서 박수를 받으니까

8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에게 나는 그냥 하얗고 조그맣고 공부 잘하고 도시락 잘 싸오는 부잣집 여자아이 그냥 신기한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5학년이 되자 담임 선생님께서 남녀 짝지를 알아서 정하라고 했다.

서로 앉아보고 싶은 친구들끼리 의논해서 짝을 하라고...

그랬더니 여러 명의 남자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오후 방과 후 책가방을 들어 주겠노라 집을 데려다 주겠노라 아침 등굣길에 책가방을 들어 주겠노라.. 아침부터 집 앞에 남학생들이 서서 기다렸다.

저녁시간 엄마의 가게 앞에 남자 아이들이 모여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는 통에 나는 아예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되니 은근히 우월감이 생기고 꽤 신이 났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랜만 아니 처음으로 나에게도 설레고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담임 선생님은 그랬다.

너는 부반장이 되었으니 혹시라도 짝을 만들지 못하는 그런 아이들을 찾아보고 돌보라고

그래야만 했다.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중 누군가와 짝을 해서 나머지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 멀어지게 되는 것 보다는 그냥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이벤트성 같은 그 일은 나에게 사춘기를 훅 하고 불러일으키는 최대의 계기가 되어 버렸다.

여자 친구들 보다 남자 친구들이 더 좋았다.

갑자기 콧물 줄줄 흘리고 아기 같던 남학생들이 남자로 보이기 시작 한 거다.

한낮의 더위를 뒤로 하고 폭풍처럼 축구를 하고 들어온 남학생의 땀 젖은 얼굴에서 남자다움이 느껴지고 가슴이 쿵쾅거리기 까지 했다.

이런 우스운 일이 다 있을까?

내가? 얼마 전까지 공부도 못하고 늘 선생님께 꾸중만 듣고 쉬는 시간이면 공놀이 하느라 정신없던 이 아이에게 내가? 하지만 이미 가슴은 멀리서 그 아이가 보이기만 해도 두방망이질 쳤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해 할 수도 이해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 이상 증세는 생각보다 심해서 다른 모든 걸 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재미있는 일이 없던 나에게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되어 주었고 스스로 머리를 빗고 스스로 옷을 골라 입고 신나게 학교를 가게 해주었다.

밥맛이 돌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중이 늘어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뭘 하는지 몰래몰래 지켜보는 게 너무 좋았고 의미 없이 던지는 그 아이의 한마디에 관심 없는 척 툭툭 대답하는 내 마음이 들킬까 노심초사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신기한 일들을 아마도 일기에 썼던 것 같다.

뭘 썼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은 기억은 생생하다.

공부는 안하고 쓸데없이 남학생에게 관심이나 가지고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 잘 한다

너보다 못한 그런 친구들을 보고 그게 뭐가 좋다고 이런 글 나부랭이를 써 데는 거냐고....

그렇게 엄마는 내가 하는 공부 이외의 행위들은 모두 비난하고 비아냥거렸다.

아마도 사춘기에 들어선 나에게 그런 말들은 무척이나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반항의 심리가 발동해 엄마가 좋아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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