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려는 투쟁
나에게 지쳐갈 때쯤 엄마는 동생과 새로운 계획들로 분주해 갔다.
동생은 그런 나의 빈자리를 채워주고도 남을 만큼 우수한 인재였다.
중학교 내내 전교1,2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했다.
엄마와 동생이 같이 머리를 맞대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친구들이 좋았고 밖에서의 생활이 훨씬 재밌었다.
술만 마시면 폭언하는 아빠와 나만 보면 비난하는 엄마 말고 깔깔 거릴 수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 훨씬 좋았다.
동생과 한참을 싸우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 왔다.
뭔가에 무척이나 화가 난 듯한 엄마는 의자를 들어 나를 찍으려고 했다.
피하는 게 자존심 상해 버티며 엄마를 노려봤다.
엄마는 정말 의자로 나를 찍어 누를 듯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지 늘 그렇듯 그냥 동생과 싸웠을 뿐인데....동생이 대들기에 큰소리가 좀 오갔을 뿐인데....
사실 그 쯤 우리 집은 형편이 안 좋아 져서 엄마가 비디오가게를 하면서 집이 없어졌다.
그래서 가게에 딸린 방 하나에 4식구가 모여 살았다.
그래서 방에서 큰 소리를 내면 가게에 다 들렸다.
욕실도 없어 사춘기 딸 둘이서 입식 간이 부엌에서 호스로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아 가스레인지에 물은 데워 썼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빠가 회사를 그만 둔건지 잘린 건 지 알 수 없는 이유에서이다.
그때부터 엄마는 떡볶이도 팔고 이래저래 하다 결국 집 전세를 빼서 가게를 하게 되었다.
힘든 엄마를 지금에서야 이해는 하지만....폭력적으로 변한 엄마는 그 모든 화를 나에게 다 푸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를 닮은 나에게....
싸우고 또 싸우고 만나면 뭐라고 하고 그러면 나는 또 데 들고 하루일과가 동생이랑 엄마랑 싸우는 게 되어 버렸다.
학교에서도 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활발한 척 하는 드센 여학생이 되어 내 나름 아우라를 지키려고 했고 집에 돌아 와서는 쌈 닭 인 냥 건드리기만 해봐라 하며 거세게 반항했다.
그냥 전투력 갖춘 쌈닭 그 자체였다.
성적은 곤두박질쳐 중간아래를 돌았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이 하고 싶어 엄마 아빠에게 말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지금 형편에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걸 알지만 너무 하고 싶었었다.
그 이유마저도 반항의 실마리가 되었다.
몰래 미술을 하고 싶어 고등학교 미술동아리에 가입을 하고 미술활동을 계속 했다.
화실을 가지 않으면 입시를 치를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어떻게든 화실을 다니는 친구들과 선배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고자 미술부 활동을 이어 갔다.
졸업한 선배들이 찾아오고 고3 선배들의 졸업식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고등학생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인 줄 너무 잘 알지만 그때는 그런 사실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이렇게 어울려 있다는 사실이 그냥 즐겁고 좋았다.
조금 마시면 어때? 괜히 다른 순진한 아이들은 하지 않는 그런 행동들을 하면서 우월감도 느끼고 그렇게라도 하고 나면 엄마와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도 조금은 생기는 듯해서 그나마 숨이 쉬어졌다.
아빠는 아빠 데로 술만 마시고 엄마는 나만 보면 소리 지르고 화내기 바쁘고 동생은 그런 나를 한심하게 볼뿐 집이라는 곳은 그때 나에게는 벗어나고픈 소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