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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는....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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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Oct 15. 2024

나도 하고 싶어

주변에서 모두가 미대 입시 준비로 바쁠 때 나는 형편상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 엄마를 졸라봤다. 학원을 보내 달라고

선배가 하는 학원을 알아 봤는데 반값에 다니게 해 주겠다고 한다.

보내 달라 그만큼만 어떻게 좀 해 달라 그런 나를 보고 아빠가 처음으로 나없는 데서 나를 비난 했다고 한다,

밥 빌어먹으려고 미술은 한다고 하느냐고

그런 말은 하지말지.....

하지만 그런 말들이 나의 의지를 꺾어 놓지는 못했다.

그때쯤부터 인 것 같다.

안된다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오기가 생긴게...

아빠를 속이고 엄마는 일반적인 화실의 절반 정도의 비용으로 선배의 화실을 다니게 해주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화실을 다녔다. 그때는 그냥 화실이라는 곳을 그냥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그냥 마냥 좋았던 것 같다. 매일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나의 사치 같으면서 그런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학원비 외에도 물감, 붓 등의 재료비가 들어가는 터라 이래저래 친구들과는 사뭇 다른 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었다.

그런데 그런 행복도 잠시 나에겐 입시를 위해 미술을 하는 게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에 여러 가지 위기들이 찾아 왔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러 번 하려고 하는데도 자꾸 부딪히고 순조롭게 잘 이뤄지지 않는 일은 포기하거나 나의길이 아님을 인정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화실 원장님과 이상한 일을 경험했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놀랐다.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던 화실 여자 친구가 그랬다. 어느 날 본인을 원장님이 원장실로 부르더니  치마가 너무 짧다고 하면서 치마 안에 손을 넣으려고 했다고 가슴을 만지려고 했다고....에이 설마 했지만 친구의 이야기는 지어 내기에는 너무 디테일하고 진중했다.

원장님은 같은 고등학교의 선배이자 나에게는 은사 같은 사람인데 돈이 없어 화실을 못가고 있는 후배에게 절반 가격으로 화실을 다니게 해준 고마운 사람인데...이런 사람이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년을 같이 보낸 선배들이 졸업을 하는 날이었다.

학교 미술부에서는 졸업하는 선배들을 위한 작은 파티가 있었고, 같이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자고 해서 그런 이유로 화실을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원장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늦게라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오라는 얘기를 듣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을 했다. 파티는 길어지고 일어나기 싫었지만 나는 원장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자 화실을 향했다. 시간은 벌써 10시가 다되어 갔다.

화실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이미 모두 돌아가고 없이 원장선생님만 계셨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 했더니 네가 이래서 되겠느냐 하면서 꾸중을 하셨다.

조용히 듣고 있는데 원장님은 일어서서 점점 가까이 왔다.

“너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라고 해서 죄송하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

“내가 일부러 학원비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적게 받고 네가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데 그런 일로 이렇게 화실을 빠지거나 한다는 건 부모님께도 잘못 하는 거 아니냐?”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면 그게 사실이라는 걸 나에게 증명해봐라” 라고 한다.

그러면 이번 한번은 부모님께 말하지 않고 넘어가 주겠다고....

“어떻게요?”했더니 자기 앞에서 옷을 벗으란다. 그러면 믿어 주겠노라고...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에 너무 당황하고 무섭기 까지 해서 괜찮다 부모님께는 말씀 드렸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느냐? 어서 옷을 벗어 증명하라고 다그친다,

언성이 높아지고 목소리에 힘이 실리자 나는 저번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너무 무서워져서 일단 옷을 벗는 척을 하다 도망이라도 가야 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총각이라 변태인가 했던 친구들의 말이 떠오르며 도망갈 궁리를 했다.

교복 블라우스 단추를 두 개쯤 아주 천천히 풀었다. 울먹이며 매달려 볼까 생각 했지만 자존심도 상하고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꾸물거리며 세 번째 단추를 풀자 선생님은 되었다고 한다.

죄송하다 말을 남기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걸음으로 학원을 벗어 나왔다.

놀란 가슴 진정 하기도 전에 집에 와서 엄마에게 사실을 말했다.

엄마는 그냥 아빠에게 말하지 마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리고 화실을 그만 다녀라. 소리만 할뿐 어떤 대처도 해주지 않았다. 

나에게 그 어떤 설명도 해 주지 않았고, 나를 진정 시켜주거나 자초지종을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 진정을 하고 보니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나 때문에 화실을 옮긴 친구도 있는데....

거기 친구들도 나와 많이 친해져 있는 터라 억울한 마음을 친구들에게 이야기 했다.

남자 친구들이 같이 흥분해 줬다. 그리고는 본인들도 화실을 옮기겠다고 했다.

화실에 있던 또 다른 강사선배님이 연락이 왔다.

본인이 대신 사과 하겠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선생님이 왜 미안해요 했지만 그 선생님은 자기 사과라도 받으라고 그랬다.

그랬다.

그렇게 나의 짧은 화실 생활은 끝이나버렸다.

정말 안 되려고 하니 이렇게도 안 되고 하지마라하지마라 하는데 나는 참 빠득빠득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내가 혼자서 안 된다, 안 된다하는걸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다가 아주 풀이 죽어 버렸다.

세상은 혼자 날뛰는 10대 고등학생에게는 호락, 호락 하지 않았다.

입시가 다가오는 고3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미술을 포기하지 못했다.

밥 빌어먹는다는 아빠에게 디자인과에 가겠다. 밥 빌어먹지 않고, 회사에 취직 하겠다. 엄마를 통해 전달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빠에게 말 한데로 정말로 하고 싶었던 순수미술을 포기하고 디자인과로 목표를 잡았지만 입시를 위해서는 화실에서 입시 전략에 맞게 입시용 그림을 배워야만 했다. 어깨너머 친구들의 그림을 봤지만 공식적인 틀이 필요하고 원하는 대학에 맞춰 그림 도안을 얻어 계속 연습 해야만 했다.

게다가 순수미술과 달리 도형 같은 도안들을 암기 하듯 외우고 그 안에 채색을 해야 하고 물감도 그에 맞춰 다양한 색상 패턴으로 준비를 해야 했기에 혼자는 역부족이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털어 서울에서 홍대를 나온 사촌 언니의 후배가 운영하는 화실을 다녀왔다. 서울 아이들에게 부산 사투리를 쓴다고 놀림을 받으며 방학동안 입시 미술을 배웠다.

그리고는 너무도 과감히 입시를 치뤘다.

하지만 안 될 일이였는지 아침부터 같이 시험장에 가기로 한 친구가 늦어 나까지 지각을 할뻔 하고 시험장에서는 다 그린 그림에 물통을 넘어트려 한마디로 실기 시험을 망쳐 버렸다.

그렇게 보기 좋게 상 중 하로 골라서 치른 3군데의 대학에 모두 떨어졌다.

꺾이고, 꺾이고 몇 번이나 무릎을 꿇게 하는 미대를 나는 포기 해야만 했다.

우리 집 형편상 재수는 무리이고 재수를 한다고 화실을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쯤 아빠는 또 한 번의 팩폭을 날렸다.

정말 소질이 있는 거라면 뭘 하든 어떻게 하든 된다. 그놈의 학원 따위 다니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다.

그랬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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