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멸망으로 치닫을 때 읽는 1,300페이지의 생존 지침서
지난 1화에서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의 멸망 앞에서 어떻게 이성의 날개를 꺾고 신학이라는 거대한 매트릭스를 설계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2화에서는 그가 설계한 거대한 도면, 서양 지성사의 가장 무거운 벽돌책인 『신국론(De Civitate Dei)』의 텍스트 한가운데로 직접 걸어 들어갑니다.
미리 밝히지만, 저는 무교입니다. 하지만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종교는 피해 갈 수 없는 거대한 산입니다. 소크라테스부터 이어진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치열한 고찰이 종교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부검할 텍스트는 그 정점에 있는 책,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입니다. 무려 1,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로마 제국이 멸망으로 치닫던 대혼란의 시기, 한 지성인이 써 내려간 '정신적 생존 매뉴얼'입니다. 지금 경제가 무너지고 시스템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1,600년 전 로마인들의 공포와 현대인들의 불안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그 서늘한 해답을 찾아봅니다.
이 책이 쓰인 배경은 일종의 '억울함' 때문이었습니다. 서로마가 이민족(서고트족)에게 유린당하자, 로마 원로원의 기득권들은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우리가 올림푸스 신들을 버리고 기독교를 믿어서 나라가 이 꼴이 되었다!"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치며 논리적으로 반박합니다. 그의 논리는 현대의 감사역이나 법조인의 공방처럼 치밀하고 예리합니다.
전례(Precedent) : "너희가 올림푸스 신만 믿던 기원전에도 켈트족에게 영토가 털리지 않았느냐? 그때 너희 신들은 신전이 불타는데 대체 뭘 했느냐?"
비교(Comparison) : "이번 게르만족 침입 때 그들은 '교회'만큼은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목숨을 건졌다. 누가 진짜 신이냐?"
도덕성(Morality) : "너희 신들은 연극에서 희롱과 질투, 불륜을 일삼고, 너희는 그걸 보며 즐거워하지 않느냐? 악마와 다를 게 없는 신들이 어떻게 나라를 지키는가?" 그는 감정에 호소하는 대신, 냉철한 역사적 팩트로 로마 지식인들의 패배주의와 책임 전가를 산산조각 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핵심은 '행복론'입니다. 유럽의 뿌리인 아리아족은 조상 숭배와 자연신(다신교)을 믿었고, 고대 철학자(플라톤 등)들은 '윤회'를 믿었습니다. 죽으면 망각의 강을 건너 다시 다른 육체로 태어난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무한 루프(윤회)'를 거부합니다. "다시 육체로 태어난다는 건, 다시 고통스러운 이 현실로 돌아온다는 뜻 아닌가? 그게 어떻게 행복인가?"
그는 시작 이후로 어떤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 역사관'을 제시합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원죄 이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참회하고 신에게 귀의하면, 다시는 고통받지 않는 영원한 나라, 즉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로마(현실)는 망해도, 너의 진짜 조국(천국)은 영원하다"는 가장 완벽하고 강력한 멘탈 케어를 제공했습니다.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기독교가 인류사에 끼친 가장 긍정적인 영향은 '잔혹성의 탈피'라고 생각합니다. 고대 그리스나 중국 상나라의 역사를 보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이 빈번했습니다. 인간이 권력 앞에서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야만의 역사죠. 하지만 기독교, 불교, 유교 같은 고등 종교가 정착되면서 이런 야만적인 풍습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중세 시대 교회가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며 가난한 자를 돌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여부를 떠나, 종교가 거대한 권력과 인간의 본성 사이에 '넘어서는 안 될 도덕적 선(Line)'을 그어주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거대한 의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지식인으로서의 아쉬움도 진하게 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인이었지만, 철저히 '하나님의 도성(내세)'만을 추구했습니다.
"어차피 지상의 국가는 탐욕으로 지어졌기에 망하게 되어 있다"는 그의 종말론적 태도는, 역설적으로 서로마의 멸망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요? 만약 로마의 엘리트들이 피안(천국)으로 도피하는 대신, "우리의 이성으로 현실의 로마를 다시 세우자"며 똘똘 뭉쳤다면 역사의 물줄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조직과 국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분열'과 '현실 도피'입니다. 1,600년 전 로마의 멸망은, 지금 우리 시대의 거대 조직들에게도 "내부의 결속이 무너지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서늘한 경고를 던지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신을 믿지 않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치열하게 쌓아 올린 이 사유의 거탑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는 로마가 불타는 절망 속에서도 '절대적인 가치(선, 정의, 사랑)'를 끝까지 붙잡으려 했습니다. 세상이 흉흉하고 시스템이 무너져가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어쩌면 외부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한 '도성'을 쌓는 일이 아닐까요? 1,300페이지의 압박을 이겨내고, 인간 지성의 한계를 넓히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우리가 사는 나라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한결같은 자유의지가 존재하리라. 어느 누구의 자유의지도 흐트러지지 않고 그분 안에서 벗어나지 않을 터이며 모든 악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모든 선을 가득 채워 영원한 기쁨을 즐길 것이다. (본문 중에서)
[다음 화 예고] 제3화. 보편논쟁과 중세의 지적 한계 아우구스티누스가 닫아버린 이성의 문 안에서, 그 후 천 년 동안 유럽의 천재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이름표가 먼저인가, 실체가 먼저인가." 생존을 위해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졌던 가장 기묘하고도 치열한 지적 전쟁, '보편논쟁'의 서늘한 현장으로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