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 17 - 일본 2

겉의 예의, 속의 경멸 ― 일본이라는 태도의 구조

by 나팔수

국가연구 17 - 일본 2

겉의 예의, 속의 경멸 ― 일본이라는 태도의 구조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예의 바른 나라로 자주 묘사된다.

친절한 미소, 낮은 목소리, 정중한 몸짓.

외국인들이 처음 접하는 일본의 인상은 대개 이렇다.

그러나 일본을 오래 상대해 본 사람들, 혹은 반복적으로 관계를 맺어본 이들은 공통된 감각을 이야기한다.

앞과 뒤가 다르다는 감각이다.


일본 사회에는 공개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절제나 배려의 문화가 아니라,

불만과 경멸, 분노를 제도적으로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넘어가지만, 자리를 벗어나면 곧바로 항의하고,

직접 말하지 않지만 기록과 절차로 상대를 압박한다.

이 이중성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오랫동안 학습된 사회적 태도에 가깝다.

이러한 구조는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반복된다.


일본 사회에는 혐한 정서가 더 이상 주변부의 일탈로 머물지 않는다.

서점에는 한국을 조롱하거나 왜곡하는 책들이 공공연히 진열되고,

그 내용은 ‘의견’이 아니라 ‘사실’처럼 소비된다.

겉으로는 외교적 예의를 유지하면서도,

속으로는 한국을 얕보고 비하하는 시선이 구조화되어 있다.

문제는 이 혐한 담론이 일본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한국보다 먼저 산업화한 국가였고,

경제 규모와 국제적 인지도 면에서 ‘선진국’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그 결과, 일본인의 말을 신뢰하는 외국인들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은 일본의 시선을 거친 왜곡된 이미지로 전파되곤 했다.

외국인들은 한국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일본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럴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설명하는 권력을 오랫동안 독점해 왔다는 증거다.

물론 이 구도는 서서히 깨지고 있다.


세계는 점점 일본이 말하지 않는 일본,

일본이 숨기고 싶어 하는 일본의 얼굴을 알아가고 있다.

과거의 전쟁범죄, 식민지 지배, 그리고 그 이후의 무책임한 태도.

사과를 회피하고, 책임을 분산시키며,

“이미 끝난 일”로 덮어버리려는 반복된 전략.


일본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인식이다.

미국 앞에서는 철저히 순응하지만,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대상에게는 가혹해진다.

한국을 대하는 태도,

아시아 이웃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이 구조에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과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과의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왔다.

사과를 하면 책임이 생기고,

책임을 인정하면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사과는 언제나 모호했고,

조건부였으며,

곧바로 번복되거나 무력화되었다.

이 모든 것은 일본이 ‘나쁜 나라’라서라기보다,

자기 성찰을 회피하도록 설계된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다.

겉으로는 정교하지만,

속으로는 균열을 외면해 온 국가.

그 균열을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 유지해 온 자기 서사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는 국가.

그래서 일본은 오늘도 예의를 지킨다.

그러나 그 예의는

존중이 아니라 거리 두기이고,

배려가 아니라 위계 유지에 가깝다.


다만, 일본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시도다.

겉의 친절에 안도하지 않고,

속의 태도를 함께 읽어내려는 최소한의 경계.

국가연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본은 아직,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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