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 22 – 헝가리

민주주의의 외피, 권위주의의 복원

by 나팔수

국가연구 22 – 헝가리

민주주의의 외피, 권위주의의 복원

― 유럽 한복판에서 되살아난 ‘국가주의의 유혹’


헝가리는 낯설지 않은 나라다.

유럽의 중심부에서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고, 수도 부다페스트는 가장 아름다운 강변 도시로 회자된다. 한때 헝가리는 동유럽 민주화와 체제 전환의 흐름 속에서 “서구로 가는 길”을 가장 빠르게 선택한 국가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헝가리는 다른 이유로 더 자주 거론된다.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나라, 유럽연합 내부에서 가장 논쟁적인 국가, 자유와 법치의 언어를 쓰면서도 권력의 집중을 실험하는 나라. 헝가리는 전차를 앞세운 쿠데타가 아니라, 제도의 틈을 이용한 ‘침식’으로 체제를 바꾸는 방식을 보여준다.


국가연구가 헝가리를 다루는 이유는 분명하다.

헝가리는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가해국은 아니지만, 제국이 무너진 뒤 남은 상처가 어떻게 현대 정치의 독이 되는가, 그리고 그 독이 민주주의를 어떤 속도로 후퇴시키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제국이 끝났다고 해서 제국의 기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국이 사라진 뒤, 그 기억이 더 위험하게 변형되기도 한다.


헝가리는 중앙유럽의 내륙 국가로, 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우크라이나·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부다페스트(Budapest)다.

면적은 약 93,030㎢, 인구는 약 960만~1,000만 명에 이른다.


헝가리는 강대국이 되기엔 작고, 약소국이 되기엔 전략적 위치가 너무 큰 나라다.

이 지역의 국가는 대부분 그렇다. 바다를 통해 확장할 수 없고, 육지의 균형 속에서 살아야 하며, 강대국의 충돌이 시작될 때마다 “길목”이 곧 “전장”이 된다. 헝가리의 불안은 지정학에서 시작되고, 그 불안의 기억은 정치의 형태를 바꿔왔다.


1. 제국의 유산 ― 헝가리는 한때 ‘이중제국’의 핵심이었다


헝가리는 단독 국가로만 존재했던 나라가 아니다.

19세기 후반부터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 함께 이중제국, 즉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Austria-Hungary)의 한 축이었다.

이 제국은 여러 민족을 억지로 묶어 유지하던 다민족 체제였다.

그리고 그 제국이 지탱되는 동안 헝가리는 “유럽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얻었지만, 동시에 제국의 구조가 무너질 때 가장 큰 붕괴감을 겪는 운명도 함께 안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은 해체된다.

문제는 단지 국가가 줄었다는 것이 아니다. 헝가리는 “우리가 중심이었다”는 오래된 감각을 상실한다. 이 상실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정치적 원망과 복원 욕구로 바뀌기 쉽다. 상처가 곧 정치의 연료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2. 상처의 정치 ― ‘트리아농’은 기억이 아니라 무기가 되었다


헝가리 현대 정치의 심연을 이해하려면 트리아농 조약(Treaty of Trianon)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조약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의 영토와 국경이 크게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고, 헝가리 내부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국가적 굴욕과 상실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약의 ‘사실’보다, 그 사실이 현대 정치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이다.

상처를 기억하는 일은 존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상처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순간, 그것은 국민을 결집시키는 장치가 되며, 외부를 적으로 만들고 내부를 단속하는 근거로 변한다.

헝가리 정치의 강한 민족주의적 언어는 종종 여기서 자란다.

과거의 상실을 미래의 비전으로 바꾸지 못할 때, 정치권력은 가장 쉬운 길을 택한다. 국민에게 “복원”을 약속하며, 복원의 열망을 권력 집중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3. 민주주의의 역설 ― 선거로 권력을 잡고, 제도를 약화시키는 방식


헝가리의 오늘을 설명하는 가장 무서운 표현은 이것이다.

“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국가.”

군사 쿠데타는 즉시 국제사회의 경계 대상이 된다.

그러나 제도를 이용해 제도를 바꾸는 방식은 늦게 알아차린다.

언론이 조용히 흔들리고, 사법이 정치의 영향력에 가까워지고, 시민사회가 점차 약화될 때, 민주주의는 폭발하지 않는다. 그저 서서히 말라간다.


헝가리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체제 변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침식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렵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 습관이 깨지는 순간부터, 국가는 “국민의 것”이 아니라 “권력의 것”으로 변한다.


4. EU 안의 헝가리 ― 유럽의 제도 속에서 유럽의 정신을 거스르는 국가


헝가리는 EU 회원국이다.

그러나 EU가 주장하는 법치와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충돌하는 국면이 반복되면서 헝가리는 유럽 내부의 ‘균열’로 거론되어 왔다.

이것은 헝가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EU 체제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EU는 공동체지만, 각국의 내부 정치를 어디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헝가리는 바로 그 한계를 시험한다. 혜택은 받되 정신은 거부하고, 규칙은 이용하되 규범은 흔드는 방식.

그 결과 헝가리는 “유럽의 내부에서 유럽을 흔드는 나라”라는 이름으로도 읽힌다.

시스템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균열에 약하다.

헝가리는 그 균열을 드러내는 상징적 국가가 되었다.


5. 한국과 헝가리 ―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방식에 대한 경고


한국과 헝가리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헝가리가 보여주는 정치의 퇴행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민주주의는 외부의 침략으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부에서, 절차라는 이름으로,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무너질 수 있다.


헝가리는 한국에 경고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시작일 수 있으나, 민주주의의 완성은 아니다.

언론, 사법, 시민사회가 균형을 잃는 순간, 국가는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권력의 지속’이 된다.


헝가리를 말할 때 한국 독자에게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있다.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때때로 “헝가리의 종족적 기원과 한국의 고대 북방계 이동이 닮아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 혹은 동방 기원설 같은 비교가 간혹 등장한다. 이 주제는 과장되거나 감성적으로 소비되기 쉬운 소재이기도 하다.

여기서 국가연구는 단정을 경계해야 한다.

헝가리어는 주류 언어학에서 우랄어족(Uralic)으로 분류되며, 한국어와 “같은 어족”이라는 정설은 아니다.


다만 흥미로운 사실도 존재한다.

최근 유전학·고대 DNA 연구 흐름에서는, 헝가리인(마자르)의 형성 과정이 우랄 지역·서시베리아 등 유라시아 동쪽과 연결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다.


이 말은 “한국과 헝가리는 한 뿌리”라는 선언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이것이다.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은 끊임없는 이동과 혼합의 역사였고, 그 과정에서 각 민족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체성을 만들었다. 헝가리 역시 유럽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동쪽 이동의 기억을 품고 있는 민족이며, 한국 또한 오래전부터 북방과 대륙의 압력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다듬어온 역사를 지녔다.


결국 한국이 헝가리에서 읽어야 할 핵심은 “혈통의 친근감”이 아니라,

작은 국가가 강대국 충돌의 틈에서 정체성을 어떻게 정치적 도구로 만들거나, 반대로 어떻게 지켜내는가라는 생존의 문제다.


결론적으로 헝가리는 과거의 상처로 미래를 설계하려는 나라다.

헝가리는 과거의 영광을 잃었다.

그 상실은 집단적 상처가 되었고, 상처는 정치가 붙잡기 좋은 재료가 되었다.

문제는 그 상처가 치유가 아니라 동원이 되는 순간이다.


그때 민주주의는 쉽게 흔들린다.

헝가리는 지금 그 경계선에 서 있다.

민주주의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국민의 이름으로 권력을 집중시키며, 과거의 상실을 복원의 열망으로 포장해 미래를 통제하려 한다.

헝가리의 사례는 우리에게 말한다.

민주주의는 총칼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정상 절차”라는 이름으로도 죽을 수 있다.

그리고 국가연구는 이 나라를 통해 다시 묻는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붕괴를 알아차릴 수 있는가.

아니면, 무너진 뒤에야 깨닫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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