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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남 Mar 18. 2024

PM 그리고 가장

나는 임직원수가 1만 명이 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우리 회사는 현재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콕찝어서 "우리 회사는 이런 걸로 돈을 법니다."라고 하기가 쉽지 않지만, 예전 우리 회사는 주로 SI/SM를 통해 돈을 벌었던 회사였다.

SI(System Integration) : 다양한 업무 시스템을 통합하여 기업의 비즈니스 목적에 맞는 맞춤형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무

SM(System Management) : SI를 통해 구축된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유지보수 하는 업무


나는 그중에서 SI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에 속해서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SI를 한다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회사 생활 고작 11년 차에 불과하며, SI 업무를 한 지 6년밖에 되지 않은 내가 Project의 정확한 R&R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이번글의 전개를 위해 간략하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우선 System을 구축하는 Project에는 PM이라는 역할이 존재한다. PM은 특정 프로젝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프로젝트 팀을 이끄는 총책임자이며,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흐름 및 예산과 리소스를 관리함으로써, 프로젝트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키맨이다. 다양한 업무영역을 하나로 합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다수의 프로젝트 경험 및 관리 능력을 필요로 하며, 프로젝트를 발주한 고객사 담당자와도 긴밀히 협업하고 소통해야 하기에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스킬 및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말이 쉽지, PM은 살인적인 업무량과 막중한 중압감 그리고 고객과 긴밀히 소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술자리도 자주 가져야 하는 자리이기에 요즘엔 지원해서 하겠다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야망을 가진 젊은 능력자이거나, PM업무를 오랜 기간 해와서 경험치가 많이 쌓인 선배님들이 PM역할을 많이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PM 아래에는 PMO와 PL이 존재하는데 우선 PL은 프로젝트에 연관된 각 업무별 리더를 지칭한다. PM이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흐름을 설계한 후, PM이 모든 걸 다 할 수 없기에 각 업무별 PL에게 업무에 대한 Ownership을 일임하게 된다. 때문에 PL은 고객사 담당자와 PM의 의도를 잘 파악한 후, 요구사항에 맞는 방향으로 구축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PMO는 프로젝트의 모든 영역을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PM이 목표에 맞도록 각 영역별로 큰 흐름을 잡고 일선에서 대응하는 존재라면, PMO는 PM과 고객이 결정한 프로젝트의 일정이 제대로 준수되는지 모니터링하며, 필요할 경우 리더 및 구성원을 교육한다. 더 나아가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 간/PL 간의 이슈가 발생할 경우, 이슈를 공론화시키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우리 회사는 임직원 수가 1만 명이 넘는 매우 큰 규모의 조직이다. 회사에서 SI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이 많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I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만 추려도 어지간한 중견기업 총 임직원 수는 될 정도의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전체에서는 꽤 많은 수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간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의뢰한 고객의 비즈니스 요건, 자금사정도 각기 다르기에 프로젝트 별로 투입된 인원수와 난이도가 모두 제각각이다. 모든 프로젝트에 S급/A급 인력만 보내게 된다면, 비교적 스무스 하게 진행이 되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회사 입장에서는 인원을 적절히 분배해서 모든 플젝을 성공적으로 오픈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PM을 포함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모든 인력에게 어떤 성향의 고객사를 만나는지, 그리고 어떤 동료와 일을 하게 될지 복불복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Open을 위해서는 PM과 PMO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운 좋게도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서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의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고, 고객사 담당자들도 본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정말 드물지만, 어쩌다 한번씩 그럴때가 있긴 하다.) PM이 기본적으로 정확히 방향을 설정하고, PMO에서 프로젝트 일정만 잘 관리 해줘도 큰 무리 없이 프로젝트가 오픈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좋은 인력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고객사 담당자가 본인들이 발주를 내 놓고도 원하는게 뭔지 몰라서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하고, 혹은 특정 업무 영역의 담당자들의 경험부족 또는 업무태만 등의 이유로 문제를 발생 시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는것이 당연하다는 얘기이다. 그럴때마다 PM은 본인의 축적된 경험치 혹은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으로 상황을 극복하여 다음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PM혼자 모든걸 다 할 수 없기에 PMO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대안을 만들고, 업무 협의가 가능한 적절한 담당자를 연결하며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Follow Up 해야한다. 하지만 내가 수행했던 몇몇 프로젝트에서는 일정 관리만 하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담당자에게 Toss 하기에 급급한 PMO 분들이 있었다. 그 분들의 공통점은 프로젝트 진척률에만 집착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이슈로 인한 지연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언제까지 할건지 물어보는 것이 더 우선이 된다. 그런 PMO담당자와 같이 협업을 하는것은 PM이나 실무 담당자 입장에서는 퍽 힘든일이다.


뜬금 없이 왜 SI와 PM/PMO에 대한 설명을 했느냐 한다면, 지금부터 내가 풀어 나갈 "가장으로써 요즘 내가 느끼는 압박감"을 성명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아들을 1명 둔 평범한 가정의 외벌이 가장이다. 와이프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무조건 맞벌이를 선호했고, 맞벌이가 불가능한 사람은 아예 배우자로써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맞벌이가 아니면 수도권에 터를 잡고 가정을 이루기 쉽지 않을것이라 생각 했고, 나의 어머니 역시 평생을 일을 하시며 살아왔던 분이었기에 어찌보면 나에게는 배우자가 일을 하는 것이 굉장히 당연하게 여겨 졌었다. 그러다 서울 상경 1년이 되지 않아 여자친구로 와이프를 만나게 되었고, 당시 와이프가 직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와이프가 직장을 그만두었는지 궁금해져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와이프는 중소기업을 전전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말도 안되는 성과보상 체계(ex. "너는 이번년도에 아들이 태어났으니 연봉을 많이 올려줄게") 어떤 경우에는 입에 담기도 힘든 폭언 때문에 직장을 오랜기간 다니지를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나는 맞벌이가 아니면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지속적으로 얘기해 왔고, 그래도 와이프의 업무능력은 꽤 출중한 편이었던지라 폭언때문에 고생했던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와이프는 해당 회사로 재취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와이프가 그 회사에서 마음의 병을 얻어 다시 퇴사하게 되는데에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 와이프는 심리적 부담을 덜고자 비정규직(알바) 형태로 일을 하게 되었고, 해당 직장을 다니던 중에 나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약 2년의 기간동안 우리는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우리의 신혼을 좀 더 누리자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우리 둘 모두 다 서로의 인생 가치관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쉽사리 아이를 가지는 것을 시도할 수 없었다.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 갈등이 생긴걸 글로 쓰자면 장편소설 몇 부작이 될 것 같지만, 심플하게 한줄로 설명하자면, 나는 "아끼고, 힘들어도 열심히 살면 좋은날이 온다" 였다면 와이프는 "늙어서 좋기보다는 지금을 즐기자" 였다. 가치관에 맞게 와이프는 비정규직으로 다니던 회사를 나와 합의도 전혀 없이 결혼 만 2년이 된 시기에 깔끔하게 그만두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아이도 생기고, 와이프는 전업 주부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 와이프가 일을 구만 두고 아이가 생기기 까지의 일도 몇 부작의 글이 될 것 같아 그 부분은 생략한다.


얼마 전, 수행 했던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외벌이보다 맞벌이 부부가 과반수라고 한다. 나 역시 내 나이 또래의 직장동료를 봤을 때, 외벌이보다 맞벌이인 부부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나는 맞벌이 부부를 상당히 부러워 하곤 했었는데 금전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심리적인 압박감이 줄어드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유 였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가정을 구성하고, 키워가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맞벌이 부부의 경우 서로가 PM이자 PMO가 있는 관계라 생각한다.  물론 각각의 역할을 더 잘하는 사람에 맞춰서, 분업을 할 수도 있겠으나 유사시(특별한 사유로 휴직을 하거나 건강에 이슈가 발생 했을 경우)에는 PMO를 했던 구성원이 PM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와이프와 결혼을 결심했을때 부터, 나는 와이프가 아이를 출산하고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만 직장을 다녀주길 바랬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하는시점에 우리 가정의 PM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결혼을 하는 해에 SM업무를 하는 부서에서 SI업무를 하는 부서로 손 들고 이동했다. 부서를 옮길 때,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왜 고정된 근무지에서 편하게 다닐수 있는 부서에서 업무강도 빡세고, 근무지도 들쑥 날쑥인 곳으로 이동하냐고. 그때마다 난 내가 처한상황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곤 했다. 회사가 나를 지켜주지 않아도, 내가 그동안 쌓아온 프로젝트 레퍼런스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가정의 PM으로써 좋든 싫든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옮긴 부서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PM은 아니고 프로젝트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가정을 키워나가는 프로젝트의 PM으로써 큰 위기에 봉착했다. 2021년에 갑상선암으로 인해 절반을 떼어 내는 수술을 했었고, 운 없게도 올해 5월 남은 갑상선을 제거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 했다. 갑상선 반쪽이 사라졌을 때도, 이전과 다른 몸 상태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갑상선을 아예 제거한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심난하다. 갑상선이 반이라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굉장한 차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2년전부터 체감되는 급격하게 상승된 물가 역시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한다. 삶의 질을 그다지 올리지 않았는데도 내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물가가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요즘엔 너무나도 조바심이 난다. 아직 어린이집 다니는거 외에는 딱히 돈 들어갈데가 없는 아이 1명이 있을 뿐인데 주담대 내고 생활비를 쓰면 수중에 남는돈이 전혀 없다.  


감상선암 수술의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한다고 하는게 암수술을 할 때, 근육량이 많으면 회복에 효과적이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듣고, 요즘 열심히 근력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부분은 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나는 애초에 회사에서 3끼 식사를 다 하고, 평소에 돈을 거의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지출을 통제하는 부분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는 편이다. 와이프가 생활비를 더 아껴쓸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지출 내역을 매달 와이프가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이 크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억지로 줄이고자 하면 더 줄일수는 있겠으나, 나는 그 과정에 와이프가 얼마나 큰 우울감을 느끼게 될지 잘 알고 있기에 강요를 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이런 지라 와이프도 본인이 이제 더 이상 집에만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심지어 아이는 회사어린이 집에 등원 시키고 있기 때문에 마음 먹으면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갖춰져 있다. 하지만 과거에 직장생활을 했던 시절의 안좋은 기억, 그리고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 등 구직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더 크게 생각하는 중이다. 더 나아가 와이프가 요즘 여러가지 이유로 우울감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가 유추해 보았을 때, 그 우울감의 큰 비중의 차지하는 요소중의 하나가 체중 관리 실패라고 생각한다.


나는 와이프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아지면, 문제를 해결하려기 보다는 동굴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상황을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어 보고자, 올 한해는 구직보다는 몸관리 마음관리에 힘쓰라고 얘기해 왔다. 하지만 요즘 와이프를 보고 있자면, 딱히 심적으로 나아지지도 않았고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보이지가 않아 답답하다.


운이 좋지 않게도, 나는 요즘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 장소에서 프로젝트를 수행중이다. 다행스럽게도 프로젝트 구성원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3시간의 출퇴근 후에 집으로 돌아오면 몸이 녹초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건 저녁형 인간인 내가 새벽 6시에 일어나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늦게까지 일해야만 하는 날에는 나는 아들이 자는 모습만 지켜보고 출 퇴근 하는 가장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나 역시 신체적,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다 보니 가끔씩 무기력해 보이는 와이프 모습을 볼 때면 한없이 마음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우리 가정을 키워가는 프로젝트가 큰 위기에 놓여있는데  와이프는 전업주부로써의 역할은 그런대로 잘 수행하고 있지만, 유사시에는 더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건강 이슈와 물가 상승 이슈가 없었다면 나의 이런 힘든 마음이 좀 더 늦게 찾아왔을지도 모르겠으나, 외벌이 가장으로써 자식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심리적으로 극한까지 몰리는 상황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 가지 이슈가  동시에 찾아오는 바람에 내 예상보다 너무 이른 시점에 위기에 봉착했다.


내가 우리 가정의 PM이 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나는 힘들겠지만 뚝심으로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 했었다. 하지만 겪어보니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미숙한 PM 이었고,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단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와이프는 PMO의 기본역할인 프로젝트 관리(살림, 육아)는 비교적 잘 수행하고 있지만, 이슈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요즘 와이프를 보고 있자면, 프로젝트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정관리만 하고 있는 PMO 담당자가 떠오르곤 한다.


이 시점에 가장 적합한 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해도 난 여전히 와이프에게 감사하다. 사랑스런 우리 아들을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잘 케어해 주고 있으며, 가장으로써 남편이 직장에서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어지간한 가정 문제는 본인이 직접 해결 한다. 그리고, 업무 특성상 초과 근무가 많은 시기에도 왜 자꾸 늦게 퇴근하냐고 면박을 주지도 않는다. 만약 나의 건강 이슈만 없었다면, 그리고 좀 더 많은 돈을 저축해서 주택 담보 대출이자가 좀 더 적었다면, 우리는 그런대로 상황을 잘 헤쳐나갈지도 몰랐겠지만 결국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내 몸이 언제까지 SI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허락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조바심이 많이 나고, 요즘엔 어떤식으로든 와이프에게 변화를 촉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다툼이 발생한다. 만약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된다면, 난 초과근무를 하면서 벌었던 금전적인 부분(초과근무를 하지 않고 빨리 퇴근하는 것이 ROI측면에서는 무조건 옳다.)과 부서에서 쌓아왔던 성과를 한번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좀 더 가정적인 사람이 될 수는 있겠으나, 직장에서는 더 이상 큰 연봉 상승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와이프에게 요즘 내가 느끼는 압박감을 어떻게 하면 감정적이지 않게 잘 설명할지 고민하다가 생각난 방법이 PM과 PMO에 상황을 빗대서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완벽한 사람은 절대 아니고, 결혼생활 중간중간에 와이프에게 상처되는 말을 많이 했기에 더 이상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면서 와이프를 상처주고 싶지는 않다. 근데 막상 글을 써놓고 보니 아직은 와이프에게 이 글을 보여주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기에 결과론적으로 내가 뭔가 안해서 섭섭하다는거 아니야? 나한테 뭔가 더 하라는 거잖아? 라는 대답이 먼저 나올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현 시점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브런치 한켠에 조각으로 묻어두기로 결심 했다. 그리고 언젠가 서로의 마음이 지금보다 더 여유가 생겼을 때, 이 글을 보면서 서로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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