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구조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글로벌 자본 시장의 의료 투자 기준이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과거 제약 및 바이오 산업의 투자는 천문학적인 자본과 십수 년의 임상 기간이 소요되는 화학적 신약 개발에 집중되었다. 현재 벤처캐피탈은 실패 확률이 높고 자본 회수 기간이 긴 전통적 신약 개발에서 이탈하여 소프트웨어 기반의 디지털 치료제 시장으로 자금을 대거 이동시키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알약이나 주사제 형태를 띠지 않으며 환자의 인지 행동을 교정하거나 신경계 질환을 관리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및 가상현실 기기 형태로 제공된다. 우울증 불면증 치매 등 노인성 만성 질환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물리적인 병상과 의료 인력을 무한정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한한 복제와 배포가 가능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집중 투자하여 의료 시스템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초기 창업 기업이 이러한 거대한 자본의 이동 경로에 탑재되기 위해서는 자사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이 일반적인 건강 관리 앱과 명확히 구분되는 의학적 효능을 지녔음을 법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허가 절차를 통과하는 것과 더불어 해당 소프트웨어의 구동 원리를 특허청에 출원하여 독점적인 지식재산권으로 확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뛰어난 치매 예방 게임을 개발하더라도 특허로 보호받지 못하면 거대 IT 기업이나 게임 회사가 즉시 유사한 애플리케이션을 시장에 쏟아내어 시장 점유율을 잠식한다. 투자 심사역은 창업팀의 의학적 전문성보다 그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경쟁사의 진입을 물리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특허 장벽을 갖추었는지 최우선으로 검증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무형의 코드를 국가가 보증하는 유형의 지식재산 자산으로 치환하는 능력이 디지털 치료제 스타트업의 유일한 생존 지표로 작용한다.
의료 산업의 특허 명세서 작성 실무는 특정 화합물의 화학식이나 약물의 배합 비율을 기재하는 방식에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의 시계열적 데이터 처리 단계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디지털 치료제 스타트업은 환자의 생체 신호와 인지 반응 데이터를 스마트폰 카메라나 웨어러블 기기로 수집하고 이를 중앙 서버로 전송하여 질병의 상태를 진단하는 전체 과정을 방법 발명으로 권리화해야 한다. 창업자가 우울증 환자의 음성 패턴을 분석하여 치료 개입 시점을 결정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했다면 인공지능을 이용한 우울증 치료 방법이라고 포괄적으로 출원해서는 안 된다. 특허 심사 과정에서 진보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음성 데이터에서 특정 주파수 대역을 추출하는 단계 추출된 변수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연산 단계 연산 결과에 따라 환자의 스마트폰 화면에 특정 시각적 자극을 표출하는 제어 단계를 낱낱이 분해하여 명세서에 기재해야 한다. 소프트웨어가 환자와 상호작용하며 데이터를 주고받는 모든 통신 규약과 정보 처리 로직을 특허 청구범위에 촘촘하게 배치하여 경쟁사가 해당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공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인간의 진단 행위나 치료 행위 자체는 산업상 이용 가능성이 없어 특허 등록이 거절된다. 창업자는 의사의 임상적 판단 과정을 하드웨어 단말기와 서버 간의 데이터 송수신 및 연산 과정으로 완벽하게 번역하여 법률적 한계를 우회하는 고도의 명세서 작성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환자가 입력하는 설문 데이터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고 특정 알고리즘을 거쳐 다음 단계의 훈련 난이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폐쇄적인 피드백 루프 전체를 특허로 묶어두는 작업이 요구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연산 과정을 텍스트 형태의 강력한 독점권으로 빚어내는 역량이 디지털 치료제 개발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디지털 치료제 비즈니스의 최종 목적지는 개별 환자에게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수익 모델에 머무르지 않는다. 막대한 자본과 글로벌 유통망을 장악한 거대 다국적 제약사와의 기술 이전 계약이나 인수합병을 통해 대규모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거대 제약사들은 기존 블록버스터급 화학 신약의 특허 만료 기한이 다가옴에 따라 극심한 수익성 악화 위기에 처해 있다. 그들은 자사의 기존 우울증 약이나 치매 치료제와 스타트업의 디지털 치료제를 결합하여 환자의 복약 순응도를 높이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처방 모델을 구축하려 한다. 스타트업이 거대 제약사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자사의 디지털 치료제가 생산하는 환자의 실시간 복약 데이터와 증상 호전 데이터를 독점하는 지식재산 포트폴리오를 사전에 완성해 두어야 한다. 제약사는 화학 약품이 환자의 몸에 들어간 이후의 실시간 반응 데이터를 추적할 수단이 없다.
스타트업이 스마트폰을 통해 수집한 환자의 일상적 행동 데이터와 약물 복용 이력을 결합하여 부작용을 예측하는 분석 알고리즘을 특허로 선점한다면 제약사는 꼼짝없이 스타트업의 가치를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인정하고 기술을 사들여야 한다. 스타트업은 약물 처방과 디지털 소프트웨어 처방이 연동되는 하이브리드 진료 시스템의 통신 인터페이스 자체를 다국적 특허로 등록하여 제약사의 독자적인 시장 진입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전술을 펼쳐야 한다. 글로벌 제약사의 실사팀은 스타트업이 보유한 데이터 자체의 양보다 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방법론이 법적으로 얼마나 두껍게 방어되고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자체 임상 시험을 통해 검증된 의학적 효과를 특허 문서상의 권리 범위와 정확히 일치시키는 기업만이 거대 자본에 흡수되지 않고 생태계의 꼭대기에서 막대한 경제적 과실을 수확한다. 노령화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술은 철저하게 계산된 방어적 지식재산권으로 무장할 때 비로소 자본 시장의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로 탈바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