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

01. 베네치아 공항에서 일어난 헤프닝

by 박태근

유럽 여행은 누구나 꿈꾸는 소망이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마음은 들뜨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단순히 한두 군데를 갔다오는 것이 아니라 차를 렌트하여 한 달 일정으로 이탈리아 유명 도시를 투어하는 여정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과연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식하게 용기를 내 보았다. 무엇보다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빠의 고희(古稀) 선물이라고 했다.


여행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EU로 묶여 있다. 즉, 유럽 연합(European Union)이다. 유럽연합은 유럽 27개 국가들이 모인 정치, 경제 연합 기구로 화폐는 유로화를 사용한다. 소속 국가들은 각국의 이름을 사용하고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연합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연합과 연방은 다르다. EU는 연합체이지만 미국이나 독일 등은 연방제다. 연방은 하나의 국가로 정치, 외교, 경제, 군사, 사법적 결속력이 강한 하나의 국가이다. 반면에 연합체는 각 국가들의 독자적인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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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EU 국가간의 출입국은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를 여행하는 것처럼 간단하고 편리하다. 어쩌다 공항에 EU 국민과 비EU 국민 간의 게이트가 분리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구별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듯 유럽연합 간의 여행은 마치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을 가듯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런 간편함 때문에 결국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여행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은 예외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소의 경비로 최대를 효과를 얻는 것이 경제법칙이다. 기회비용처럼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럴 때 어느 것이 더 효용성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 유럽 여행에서 국가 간의 이동은 주로 저가 항공사의 항공권을 구입했다. 탑승객이 없을 것 같았지만 막상 비행기를 탑승해 보니 항공기의 전 좌석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저가 항공을 이용하려면 항공권은 온라인으로 체크인해야 하고 수하물은 공항의 셀프백드랍 기기에서 셀프 등록해야 한다. 처음 할 때는 모든 게 낯설었다. 번거롭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아니 생소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사람은 해야 될 상황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이 모든 생명체 중에서 상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온라인 체크인이나 셀프백드랍 등록은 우리나라의 저가 항공사들도 실시하고 있다. 다만 한국과 유럽과 차이점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가 스스로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다를 뿐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습득하는 존재다. 처음은 어려울지라도 한 번 해보면 곧장 적응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냥 막무가내로 부닥치면서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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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탑승한다.

유로윙스(Eurowings)다. 보딩 패스(boarding pass) 게이트에서 기다렸다가 시간이 되어서 항공권을 보여주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근거리 이동이어서 그런지 비행기는 크지 않았다. 좌석은 좁고 불편했지만 이코노미석은 어느 비행기나 다 그런걸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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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슈투트가르트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벌써 이탈리아 베네치아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시간보다 짧다. 창밖으로 베네치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의 시작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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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잠깐이었다.

머리 속에는 입국 수속을 할 때 나누어야 할 대화 내용만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려 공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같이 간편한 차림이다. 백팩을 메거나 기내용 캐리어를 끌고 가는 정도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라는 달라도 서로 가까운 거리여서 잠시 휴식하고 돌아갈 사람들의 차림새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그러했다.

우리도 다른 도시를 여행할 때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지 않는다. 필요한 몇 가지만 챙겨서 간다. 이들이라고 생각이 다를까? 다만 우리는 앞으로 한 달 동안 이탈리아를 돌아야 하니 대형 캐리어가 두 개나 더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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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안으로 들어가니 뭔가 휑했다. 전혀 붐비지 않았고 오히려 한산한 모습이었다.

관광객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많이 입국한다는 베네치아가 왜 이렇게 조용한걸까? 사람들이 그새 다 나가고 없는 것일까? 살짝 걱정되었다. 항공 수하물도 찾아야 하고 입국 수속을 하려면 앞서가는 사람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다. 아내는 캐리어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거듭 말했다. 나는 입국 수속이 끝난 후에 캐리어를 찾을거라는 생각에 앞서 가는 사람들 뒤를 따라 졸래졸래 걸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출구가 나왔다. 이게 뭐지? 우리는 입국을 위한 수속과 검색대를 거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공항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나온 것이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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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음부터다.

위탁 수하물을 찾지 않은 채 그냥 나왔기 때문이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들어가려고 하니 공항 경비가 제지했다. 이곳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말만 했다. '아니, 우리들의 수하물이 저 안에 있다구요.' 하고 말했지만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으니 항공사 데스크로 가라고 했다.


사람은 당황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뭘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행동은 뒤죽박죽으로 얽히고설킨다. 머리 속은 하얗게 되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이탈리아가 아닌가? 유로윙스 데스크로 갔다. 수화물을 찾으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더니 옆으로 가라고 했다. 옆 데스크에서는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뭐야?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그렇게 오락가락 헤매던 중에 짐을 부칠 때 받았던 수하물 스티커가 생각났다.

주머니를 뒤져 스티커를 찾아 유로윙스 데스크로 다시 갔다. 수하물 스티커를 보여주며 우리들이 수하물을 찾지 않고 그냥 나와서 안으로 들어가 위탁 수하물 캐리어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티커를 확인한 안내원이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똑 바로 간 후에 라운지 입구에 서 있으면 자기가 가겠다고 했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비상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수하물 찾는 곳(Baggage reclaim)으로 가니 우리 캐리어만 두 개가 한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어쩔줄 몰라 헤맸던 이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다. 경황이 없었을 뿐 아니라 아내가 엉뚱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핀잔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사진 한 장 찍지 못한게 아쉽기만 하다. 그것도 추억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