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끝에서, 사랑이 시작되다: 헤겔- 요1:14.
삶의 지혜 10편 외전
“이 글은 철학을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철학이 멈춘 자리에서, 사랑이 다시 걸어간다.”
사유의 끝에서, 사랑이 시작되다: 헤겔- 요1:14.
헤겔은 모든 것을 생각하려 했다.
그에게 세상은 사유의 구조였고,
진리는 논리의 완성에 있었다.
그는 신을 이성의 자리로 끌어내리고,
세계의 모순을 정반합의 틀 안에서 조립하려 했다.
그러나 정반합은 생명을 품지 못했다.
그것은 살아 있는 피가 아니라, 죽은 체계였다.
레오는 묻는다.
“이성의 절대정신?
그 정신이 인간을 얼마나 이해했는가?”
헤겔은 모든 사유를 통합했지만, 한 사람의 고통을 품지 못했다.
그의 정신은 완전했지만, 사랑이 없었다.
그의 체계는 방대했지만, 만남이 없었다.
철학은 완성되었으나, 인간은 사라졌다.
체계는 견고했으나, 진리는 숨을 잃었다.
예슈아는 논리로 오시지 않았다.
그분은 사람으로 오셨다.
요한은 말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그분은 사유의 구조를 깨뜨리고,
만남의 구조를 여셨다.
그분은 철학의 문장을 완성하지 않고,
인간의 상처를 완성하셨다.
진리는 설명이 아니라, 손 내밂이었다.
진리는 개념이 아니라, 피 흘림이었다.
헤겔은 “절대정신”이라 불렀지만,
레오는 그 이름을 “고독한 신학”이라 부른다.
사유가 절대가 되면, 신은 침묵한다.
사랑이 잊히면, 이성은 광기가 된다.
헤겔의 철학은 완벽했지만, 살아 있지 않았다.
레오는 묻는다.
“만약 헤겔이 오늘, 예슈아의 발 앞에 서 있었다면,
그는 뭐라고 했을까?”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생각했으나, 당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슈아는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를 찾으러 왔다.”
진리는 인간이 쌓는 탑이 아니라,
하셈이 내려오시는 사닥다리다.
철학은 신을 이해하려 하지만,
사랑은 신이 인간을 이해하신다.
이제 사유는 끝나고,
사랑이 시작된다.
세 줄의 지혜
사유는 신을 향한 언어이고, 사랑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언어다.
철학은 묻고, 사랑은 대답한다.
진리는 생각이 아니라, 만남이다.
편집자 주
- 삶의 지혜 10 외전편 - 은 철학의 종착점에서 다시 인간을 회복하려는 고백이다.
이 글은 철학을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그 너머의 숨결, 곧 사랑으로 완성되는 신적 만남을 말한다.
레오의 펜은 냉소와 통찰을 지나,
다시 예슈아의 눈물 앞에 멈춘다.
사유의 끝에서,
사랑은 조용히 시작된다.
저작권
본문 해석과 묵상은 저자(레오 송)의 창작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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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 (CC BY-NC-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