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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골치 아픈 것

얼굴뼈 자르는 의사의 세상 보기

골치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진짜 두통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골치가 아프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가 성가시거나 어렵다는 뜻이다.


“결혼은 골치 아픈 거예요” 라는 말은, 영국 드라마 <닥터포스터>를 리메이크하여 최고 시청률을 31%까지 기록한 한국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나온 여주인공 김희애의 대사다. 이 정도면 아주 점잖은 표현이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2002년 영화도 있다.


결혼이란 건 정말 골칫거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스무 살 때쯤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만은 사실이다. 인생에 단 한 사람을 운명처럼 만나 첫눈에 반하고, 불같이 사랑하다가 결혼으로 완결 짓는 전개는 만화에도 없다. 시시해서라도 그렇게 안 그릴 것이다.


결혼이 골치 아프다는 건 결혼 이후가 그렇다는 것이겠지만, 결혼을 하게 되기까지도 사실 골치 아프다. (연애만 하고 산다면 거의 골치가 안 아플 수도 있다)


일단 결혼할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요즘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결혼 적령기 전후의 한국 미혼 남녀들은 여전히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멀쩡히 연애를 하다가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먼저 내비치면 상대방이 지레 겁을 먹고 멀어지기도 한다. 3년을 연애하고 결혼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더니, 상대방이 “나는 비혼주의자야” 라고 말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다고 결혼을 ‘전제로’ 사람을 만나는 맞선 같은 건 더 억지스럽다. 영화에서는 동거를 한지 꽤 오래 된 부부 같은 커플도, 결혼 프러포즈가 성공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혼전에 ‘결혼 전까지는 손만 잡자.’던 사람이, 결혼한 다음 알고 보니 변태적인 취향이라거나, 성적 혐오 장애(sexual aversion disorder)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정말 큰 문제다.


한 사람과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참 대단한 일이다. 나는 늘 궁금하고 신기하다. 내 주위에 그 많은 결혼한 커플들이 어디서 제 짝을 그렇게 잘도 찾아냈을까? 어쩌면 그들에게 진짜 ‘제 짝’은 따로 있었는데, 짝이 잘못 엮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안 어울려 보이는 부부라도 잘들 살고 있다.


한편, 이런 저런 이유로 이혼을 한 지인들도 있다. 좋아서 결혼했겠지만, 제 짝이 아니라고 느꼈으니 갈라섰을 것이다. 그 돌아온 싱글, 소위 돌싱에게 원래 100%의 제 짝이 있었다고 쳐도, 그(녀)는 다른 배우자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 100%의 짝이 싱글이어서 다시 결혼을 한다고 해도, 살아보면 역시 현실은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동화 같은 결혼생활은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다.


결혼이란 근본적으로 정말 골치 아픈 것일까?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 *


첫 번째 이야기


마스크를 쓴 20대 후반 정도의 여자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일단 마스크를 벗어보실까요?


마스크를 내린 그녀의 얼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자양분이 풍부한 토양에서 맑은 물과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화초처럼 반짝였다. 돌출입수술을 20년 넘게 해온 사람답게 반사적으로 먼저 관찰한 입은, 돌출입이 아니었다. 흠잡을 데 없이 예뻤다. 전혀 수술할 곳이 없는데...생각하며 차트를 보니, 몇 년 전 내게 돌출입수술을 한 기록이 있었다. 리스트에서 그녀의 사진을 찾았다. 아아 이 분! 수술 전 얼굴을 보니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장난꾸러기 아기공룡처럼 생긴 수술 전 사진 속의 그녀는 증발했고, 누구에게나 사랑스러워 보일 우아한 그녀가 내 앞에 앉아 있다.


그녀가 필자를 다시 찾은 것은 수술 당시 사용된 핀과 나사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나는 환자들에게 금속판과 나사를 제거하는 수술을 굳이 권하지 않는다. 의료용 핀과 나사는 티타늄 재질로, 생체적합성(biocompatibility)이 99% 이상으로 높아서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서 이물반응이나 염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시 말해 뼈와 사이좋게 잘 지낸다. 그러므로, 평생 가지고 살아도 이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평생 지니고 사는 치아 임플란트 나사, 심장 스텐트 등도 역시 티타늄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굳이 핀과 나사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을까? 가지고 살아도 아무 문제없었고,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듯한데, 왜 지금 그런 ‘골치 아픈’ 선택을 했을까?


갑작스레 필자의 소위 ‘촉’이 풀가동했다.

-혹시 결혼 앞두고 계신가요?


그녀가 살포시 웃으며 끄덕였다. 네 번째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프러포즈 받은 반지였다.


결혼을 앞둔 신부에게는 이런 걱정이 있을 수 있다. 행여 신랑이 치과에라도 같이 갔다가 자신의 엑스레이를 보면, 핀과 나사를 보고 ‘깜놀’할 것 같은 불안감이다. 만약 신랑이 의료계 종사자라면 핀과 나사를 더 잘 발견할 것이다.


뭐 사실, 이런 핀이 왜 있냐고 물으면 솔직하게 돌출입수술과 턱끝수술을 했다고 인정하면 아주 쿨(so cool)해 보이기는 할 것이다. 성형수술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안전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결과가 나왔다면 최선이다. 그러나, 지금의 신부 얼굴이 너무 예쁜 신랑 입장에서는, 수술 전의 얼굴이 두고두고 궁금할 것이다. 행여 신랑이 다른 환자들의 돌출입수술 전후 사진을 찾아서 보게 된다면, 과연 자기 신부의 수술 전 얼굴은 어느 정도였을지 기괴한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견고한 사랑에 위태로운 실금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게 마음에 걸릴 수 있고, 사실을 모르는 신랑에게 굳이 알게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사실, 인간은 영혼만을 사랑할 수는 없다. 신랑이 신부와 사랑에 빠진 것은, 그 신부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만약, 신부의 성형수술 사실을 알게 된 신랑이 연극배우의 독백처럼 양팔을 펼치며 이렇게 외친다면?


-이 결혼은 애초부터 무효야! 난 너의 수술 전 얼굴을 꼭 확인해야겠어! 그게 진짜 너잖아!


이런 이해심 없는 신랑이라면 차라리 결혼이 파투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부언하자면, 화장(make-up)하거나, 치아교정한 것은 괜찮고, 수술한 것은 가짜 얼굴이라는 건 편견이다. 필자는 가짜 얼굴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 주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중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2012년 11월 국내 몇몇 뉴스매체가 전한 외신에 따르면, 미모에 반해 끈질긴 구애 끝에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할 수 있어 행운아라고 생각해온 중국인 남성 젠펑이, 첫 아기가 놀랄 만큼 못생긴 사실에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친자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친자식임을 확인한 이후에도 계속된 아기의 외모에 대한 추궁 끝에, 중국인인 아내는 결혼 전 한국에서 한화 1억원 정도의 성형수술을 받았음을 털어놓았고, 남편은 중요한 사실을 속이고 한 결혼은 무효라며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중국 법원은 남편의 주장을 받아들어 이혼을 허용하고, 남편을 속이고 결혼한 아내에게 12만 달러(약 1억3100만원)의 위자료를 남편에게 배상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고 한다.


이런 극단적인 일까지는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돌다리 두드려 건너듯, 제 할 일을 다 마친 핀과 나사를 결혼 전에 깨끗이 싹 다 제거하고 싶은 신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녀가 혼자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핀과 나사가, 결국 결혼을 준비하면서 ‘골치 아픈’ 것이 되어 버렸다. 신랑 몰래 제거 수술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돌출입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핀을 제거할 일도 없었겠지만, 대신 지금의 신랑을 만나 아름다운 신부가 되지는 못했을 공산이 크다.


내 손으로 돌출입수술을 해 준 환자가 멋진 남자로부터 결혼 프러포즈를 받은 것은 내 가족 일처럼 기쁜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 수록된 하루키의 결혼 축사로 축하를 대신한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 *


두 번째 이야기


어느 월요일, 40대 초반의 여자 환자가 필자에게 돌출입수술, 광대뼈수술, 눈밑지방 제거수술을 받았다. 화요일이 되었고, 이 환자는 오후 쯤 퇴원할 예정이다.


그 화요일 오전, 그녀의 입원실 바로 옆방으로 남자 환자가 입원했다. 남자 환자와 수술 전 상담을 시작한다. 돌출입을 넣는 정도, 턱끝의 위치와 모양, 비대칭의 양상 등을 더 세밀하게 의논하고, 수술과 합병증 가능성에 대한 설명도 하는 시간이다. 남자는 그 날 오후 돌출입수술, 광대뼈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남자 환자는 소위 ‘돌싱’이었다. 필자가 보기엔 참 서글서글하고 성격 좋은 남자다. 직업도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과 같은, 고마운 일을 하는 분이다. 두 번이나 유산을 하고 슬하에 자녀 없이 이혼했다고 한다. 웃으며 담담하게 “이제 혼자 살아야죠.” 하는 그에게서 선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수술 전에는 아무리 담대한 사람이라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환자를 안심시킬 겸 이렇게 말해주었다.


-옆방에 계신 여자 환자분도 어제 똑같은 돌출입, 광대뼈 수술을 하셨어요. 수술 잘 되었고 조금 있다가 퇴원하실 예정입니다. 이틀 연속 같은 수술을 하게 되네요.


사실 옆방의 여자 환자는 눈밑지방 제거수술도 했으니, 엄밀하게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뼈수술 내역은 같아서 그렇게만 말씀드렸다. 그런데 상담 중 남자 환자가 내게 불쑥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그런데 제가 눈 밑에 다크써클이 좀 있는데 이것도 같이 수술 받고 싶습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옆방 여자 환자와 수술명이 완벽히 똑같아지는 순간이었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연속 두 번 나오는 것은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앞면이 열 번 계속 나오는 것은 조금 신기한 일이다. 확률로는 1024분의 1이다.


내가 주로 하는 수술인 돌출입수술(+턱끝수술), 광대뼈수술, 사각턱수술 그리고, 눈밑지방 수술, 코수술, 쌍꺼풀수술, 이렇게 여섯 가지 수술 중에서 한 가지, 혹은 두, 세 가지, 많게는 여섯 가지 수술을 선택하는 조합은 총 63가지다. 여자 환자와 남자 환자가 하루 차이로 연속해서, 그 중 정확히 같은 명칭의 수술을 받을 확률은 3969분의 1이다.


화요일 오후, 이 남자 환자에게 세 가지 수술을 하면서, 전날 똑같은 수술대에서 똑같은 수술을 받은 여자환자가 오버랩 되었다. 더 신기한 것은 광대뼈의 비대칭, 턱끝의 비대칭도 똑같은 양상이었다. 두 사람 모두, 광대뼈는 왼쪽이 더 컸고, 턱끝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나이를 떠올려보니, 여자는 41세, 남자는 47세다. 나이도 딱 좋다. 여자 환자도 싱글이다. 둘이 만나게 해주면 어떨까? 적어도, 엑스레이에서 핀과 나사가 발견될까봐 불안할 일은 없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40년 넘게 마음에 상처를 주던 돌출입이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지긋지긋했던 돌출입은 필자가 깔끔하게 처리했다.


혹시라도 이 두 사람이 잘 되어서 결혼에 골인을 한다면, ‘은인’인 필자가 주례를 맡을 법도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가친척에게, 어떤 인연으로 성형외과 전문의가 주례를 맡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아무 생각도 없는데, 둘 다 싱글이고 똑같은 수술을 하루 차이로 받았다는 이유로, 필자의 상상 속에서 너무 멀리 갔다.


하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른다. 일단 두 사람이 수술 후 치료를 받는 날짜와 시간대를 동일하게 하라고 우리 직원에게 지시했다. 사랑이 꽃피는 성형외과가 될지도 모른다. 내가 다 설렌다.


* * *


5년 전쯤 자주 흘러나왔던 유행가 가사 중에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라는 가사가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랑을 노력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사랑은 노력해야 한다. 사랑을 쟁취하는데 들어가는 노력보다, 그렇게 얻은 사랑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몇 곱절은 될 것이다.


즉, 사랑의 화학반응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결혼은 위험하다. 강렬한 사랑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호르몬 분비는, 사랑에 빠진 지 2-3년 내에 끊어진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의지와 노력 없이 방치된 사랑은 결국 잿빛으로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숭고한 사랑을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지배하는 신경활동으로 해석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이런 과학적 설명이 사랑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여야 자신 또는 배우자의 감정의 변화에 실망하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


물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도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속 시원한 이별도 있다. 자신을 숨 막히게 했던 대상과의 이별로 숨통이 트이고 살맛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여 년간 돌출입수술을 해온 필자가 목도하는, 내 환자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은 수술 후 처음 거울을 볼 때다. 몇 십 년을 같이 지내서 정들만도 하건만, 자신의 돌출입과의 이별에 그렇게 속 시원해한다. 수술 전 사진은 싹 다 지웠다는 환자들을 자주 본다. 돌출입이 비정상도 아니고 때로는 개성일 수도 있지만, 돌출입을 가진 사람의 마음의 상처는 생각보다 크다. 돌출입 수술을 통해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이 치유되는 것에 필자가 중독되는 이유다.


20세기 프랑스 극작가인 아르망 살라크루는 ‘인간은 판단력이 부족해 결혼하고, 인내력이 부족해 이혼하고, 기억력이 부족해 재혼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개인주의자 선언>등을 펴낸 문유석 전 판사의 <쾌락독서>에도 인용된 구절이다. 러시아에는 ‘전쟁터에 가기 전에는 1번 기도하고, 바다에 가게 되면 2번 기도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3번 기도하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결혼은 골치 아픈 것, 쉽지 않은 것이라는 담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한다.


결혼을 앞두고 핀과 나사를 제거하러 온 여자 환자도, 하루 차이로 똑같은 돌출입, 광대뼈, 눈밑을 수술 받은 남자와 여자 환자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아무쪼록,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한다’는 하루키의 너무나 현실적인 축원처럼, 나쁠 때보다 좋을 때가 더 많은 삶, 슬기로운 연애, 현명한 결혼 생활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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