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산으로 간다.
시대가 변해도 한참이 변했는데 관료들의 생각은 아직 박정희 개발독재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민의를
받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아직 관료들은 정권이 바뀌었는지 모르고 있는지 아님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이 가발 수출하고 해외여행 허가제하는 시대가 아닐진대, 아직도 문제만 발생하면 관료가 모두 해결하려 들고 그 방법은 서툴고 거칠다.
집값이 오르면 보유세를 올리면 되고, 환율이 오르면 서학개미들에게 양도세를 더 올리면 된다. 이러다 인구증가를 위해 독신세 때리고 국민 건강이 너무 걱정된답시고 설탕세 신설을 추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세금은 징벌이 아니다.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전쟁이 왜 발발했는가. 바로 세금 때문이다. 절대왕권 시대 국왕이라도 국민의 대표의 동의가 없는 과세는 용납될 수 없었다.
세금은 국민의 재산을 강제적으로 이전시키는 예외적인 행위로 국민과 정부 간의 약속 없이는 불가능하며 국민은 이러한 약속하에서 납세를 고귀한 의무로 받아들인다. 이런 세금을 징벌로 활용한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경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런 징벌적 형태의 세금은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 작동을 왜곡하여 시장이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
시장에서의 가격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이다.
가격은 시장에 참여라는 주체들에 의해 결정이 되지만, 경제 주체들에게 현재와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신호로서 기능한다. 집값이 오른 다는 것은 공급 부족, 유동성 증가, 기대인플레 상승 등의 신호를 줘서 정부가 공급을 늘리거나 금리인상으로 시중 유동상을 흡수하거나 하는 등의 정책시그널을 주며 민간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신호로 작용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 가격에 세금이라는 수단을 활용해서 징벌적 의미로 개입하게 되면 가격은 신호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되며 경제주체들은 시장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지를 모르게 되고 자원배분은 왜곡된다.
요즘 이상 신호를 보이는 환율이라는 가격 지표도 우리 경제에 여러 사전 경고를 주고 있음에도 이를 분석하여 대응하려 않고, 주범을 서학개미로 몰아 세금 폭탄을 때려 환율 자체를 눌러버린다면 경제주체들은 우리 경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게 되고 경제는 더 곪아가게 되는 것이다.
징벌적 과세가 남용되면 일단 정부가 밀어주는 분야 외에서 수익이 발생한다면 경제주체들은 과세가 이뤄질 것을 예상해 장기적 투자패턴이 왜곡되고 종국적으로 국내 자산은 투자 회피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민은 세금을 국가의 장기적 재원확보 수단이 아닌 수익 강탈을 위한 징벌로 인식하게 되어 세정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우려도 상존한다.
과세이론적 측면에서도 징벌적 과세는 적합하지 않다.
Ramsey 같은 학자는 조세는 수요공급 탄력성이 낮아 행동 왜곡을 최소화하는 곳에 부과해야 하고 탄력성이 높은 곳은 과세를 자제 또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근로소득세나 부가가치세는 세금이 조금 오르더라도 회사를 그만두거나 먹던 라면을 끊지 않는다. 그러나 징벌적 과세로 언급되는 자산시장 관련 분야는 탄력성이 높아서 수틀리면 바로 한국 뜨기 쉬운 분야로 과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만일 외환시장에서 달러 환전마다 세금을 때리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클릭 한 번이면 되는 세상에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다른 시장으로 다 떠날 것이다.
정책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을 때리면 그 순간은 통쾌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합의금을 물어야 하는 시기가 오면 피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다. 그 피눈물의 대가는 이미 떠난 정부 관료가 아니라 남아 있는 국민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이다.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하겠다는데 아직 관료들은 생각은 아직 꽉 막혀있다. 세금을 더 걷고 싶으면 면세나 비과세 분야를 개선해서 넓고 얇은 안정적 세원을 발굴해야 하고, 세금을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한 징벌적 수단으로 활용하면 안 된다. 세금은 내는 것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내는 것이 당연하고 내는 것이 자랑스러워야 한다. 세금이 징벌이 되면 안 내고 피하는 것이 당연하고 내는 사람은 범죄자로 취급받는다는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이게 정상적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