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은 40년을 같은 집에 살고 계신다. 연탄에서 기름보일러, 가스보일러까지 보일러가 바뀔 때마다 바닥을 다 들어내고 다시 깔고, 여러 번의 공사를 치르는 동안 내부는 조금씩 변했지만 외양은 여전히 처음의 모습 그대로다.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지붕과 빛 바랜 페인트, 구석구석 갈라진 시멘트가 이 집의 나이를 짐작케 한다. 우리 집에서 나이가 든 건 집뿐만이 아니다. 가구, 가전제품, 그릇, 거의 모든 것이 10년, 20년 이상 함께 살고 있다. 안방에는 40년 된 엄마의 자개농이 아직도 버티고 있다. 어찌나 무겁고 튼튼한 지 공사 때마다 몇 번을 들고 나고 했는데 고장도 나지 않는다. 창문 옆 벽에는 자개농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원목 서랍장이 서 있다. 이 서랍장의 브랜드는 이름이 바뀐 건지, 아예 없어진 건지 이제는 그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다. 거실 창가에 있는 하얀 에어컨이 우리 집에서 가장 늦게 들어온 물건이다. 30년짜리 에어컨은 고치고, 고치다가 부품이 없어 수리도 못할 때까지 수명을 다 하고 나서야 집을 나갔다. 수리하러 오신 기사님이 “이 에어컨을 아직도 쓰는 집이 있네요.”라며 골동품이라도 본 듯 말했다. 그리고는 쓸 만큼 썼으니 다음엔 그냥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30년 된 에어컨은 자신의 빈자리를 티를 낸다. 마룻바닥의 색이 다르다. 우리 집 물건은 웬만해선 죽어야 나간다. 40년 된 110V 선풍기도 더 이상 고칠 수가 없어서 집 밖으로 나갔다. 박물관에 보낼 걸 그랬나 보다.
집이든 사람이든 오래되면 고장 나고, 망가지고, 병치레를 하기 마련이다. 몇 년 전 엄마는 몸에 대 공사를 했다. 척추가 부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 부러진 척추 뼈가 어긋나지 않고 잘 붙기를 기대 했지만, 결국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긴 수술 끝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서야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등에 꽂힌 피 주머니 두 개, 목에 구멍을 내 꽂은 튜브, 항생제, 수혈, 꽂힌 줄이 너무 많다.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의식이 채 돌아오지 않았는데 엄마는 계속 신음을 한다. 엄마가 깨어나 죽을 먹을 수 있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수술을 하고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사람이 챙겨주는 사람 없어서 밥이나 제대로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빠의 밥걱정을 하고 있다. 엄마는 자신의 몸보다 아빠 밥이 더 걱정되는 모양이다. “지금 아빠 밥걱정할 때야?! 밥하고 국, 찌개 다 사다 놓았어요. 전자레인지 돌리는 법도 알려 줬고. 그리고 식당 가서 사 먹으면 되지.”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지. 밥을 차려줘야 드시는 우리 집 왕이 계셨지. 그렇지 않아도 새언니가 주말에 가서 국, 찌개, 반찬, 아빠가 먹을 만한 끼니거리들을 챙겨 주고 왔단다. 나도 아빠의 밥상을 차려야 했다. 종종 대며 국을 데우고, 수저를 놓고, 반찬을 꺼내 담고, 밥을 떠서 식탁에 내려놓으니, 밥이 많다고 한 숟갈 덜어 달라고 한다. 국은 식지 않게 맨 나중에 담아 밥 그릇 옆에 놓았다. 꼿꼿하게 자리에 앉아서 아빠는 숟가락을 들며 말한다. “이거 내 숟가락 아니다.” 내가 독립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는 각자의 은수저를 썼다. 은수저를 깨끗하게 쓰려면 자주 닦아야 하고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롭기 그지없다. 나는 그 은수저를 모조리 치워버렸다. 아빠만 여전히 자신의 은수저를 쓴다. 자신의 은수저를 고집하는 아빠가 꼭 은수저 같다. 누군가를 위해 살림하는 일은 너무도 싫다고,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밥 챙겨주는 게 가족의 의무는 아니지 않아요!
아빠도 엄마가 곁에 없으니 많이 걱정하셨던 모양이다. 보호자 이외의 면회자는 병원에 오래 머물 지도 못하는데 시골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엄마 손을 덥석 잡고 아파서 고생이 많다고 말을 건넸다. 그 태도가 좀 오래 가면 좋으련만. 엄마가 퇴원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며 조금씩 거동을 하고 살살 밖에도 나갈 수 있게 되자마자 아빠는 엄마의 손을 빌리기 시작했다. 의사는 앞으로 절대 무거운 거 들지 말고, 집안일도 하지 말라며 거듭 강조해 말했다. 수술한 뼈가 자리를 잡기 전에 잘못 틀어지기라도 하면 평생 허리가 굽은 채 살아야 하고, 신경을 건드리면 하반신을 아예 못 쓸 수도 있다고 겁을 주기까지 했다. 자기 몸 아끼지 않던 엄마도 의사의 말에 겁이 좀 났던지 조심하며 지냈다. 당신도 낡은 뼈에 쇠기둥을 몇 개나 세웠으니 몸이 내 몸 같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아픈 사람인 걸 잊은 건 아빠뿐이다. 자신의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며 좀 두드려 달라고 환자인 엄마에게 안마를 시킨다.
요즘은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다며, 밥을 안 먹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갔네, 짜네, 달아서 못 먹겠네’ 타박을 하며 기어이 며칠씩 사골을 고게 만들고, 질려서 못 먹겠다고 된장찌개를 끓이라 한다. 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달랜다. “밥을 안 먹으니 기운이 없지. 나와서 밥 먹어요.” 하면, “입맛이 없는 걸 어떻게 해. 입이 써. 먹기 싫어. 안 먹어.” 하고 투정이 심해진다. 계속되는 투정에 엄마도 참지 못한다. “몰라, 그럼 먹지 마. 나도 내 몸 아픈데, 좀 챙겨주면 입맛이 없어도 먹고, 걷기 운동이라도 하고 기운을 차려야지. 안 먹고 병들어 쓰러지면, 그냥 요양원 데려다주고 올 거니까 먹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요양원에 버리고 온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아빠는 엄마에게 당신이 병들어 쓰러지면 요양원 보내지 말고, 간병인도 쓰지 말고, 꼭 엄마가 간호해 달라고 한다. 아빠는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기로 돌아간 것 같다.
오래된 주택에 살다 보면 자잘하게 손볼 일이 끊이질 않는다. 부지런히 가꿔야 그나마 집의 모양을 하고 살지,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금방 꾀죄죄해진다. 한번은 수도세가 어찌된 일인지 수십만 원이 나왔다. 낡은 수도관이 터진 것이다. 어디서 새는지 누수기로 찾아내느라 땅을 여기도 파고 저기도 파고 금세 마당이 너덜너덜해졌다. “이거 못 찾으면 물이 계속 샐 텐데 큰일이네.” 엄마가 걱정을 해도, 아빠는 “사람들 왔으니 찾겠지, 뭐.” 하고 무심하게 대꾸한다. 어느 해 겨울에는 온 집안이 냉골이 된 적도 있다. 보일러는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방바닥은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워졌다. 이번에는 보일러의 배관이 터졌다. 배관 공사는 온 집안 살림을 다 비워야 하는 만만찮은 공사다. 아무리 작은 시골집이라 해도 엄마 혼자서 관리하기에는 힘에 부쳤을 것이다. 이런 공사를 꽤 여러 번 치르고 적잖이 피곤했던지 어느 날 엄마는 집에 공사할 일이 자꾸 생기니 힘이 드는데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 나도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엄마를 거들었지만, 아빠는 극구 반대를 했다. “사람이 마당 있는 집에서 흙을 밝고 살아야지. 싫어. 난 안 가.” 아빠는 아파트가 싫다고 했다. 엄마는 “누가 시골 출신 아니랄까봐 땅 타령은. 뭐 하나 제대로 관리도 못 하면서.”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아빠의 반대는 완강했다. “닭장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면 나도 이 집에 버리고 가!”
사람이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며 결국 이사도 못 가게 하더니 그 후엔 그 놈의 흙 마당이 없어졌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우리 집 작은 마당 안에는 소나무와 대추나무, 하얀 함박꽃, 진홍색 철쭉, 분홍빛 연산홍이 심어져 있었고, 대문에서 안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 양 옆으로는 분재 나무와 일년생 꽃들이 줄지어 있었다. 휑하던 나무 가지에 볼록하게 새 순이 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이제 곧 봄이 오는구나’ 하며 따뜻한 날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봄이 되면 마당에는 흐드러지게 꽃들이 피었다. 꽃과 나무 옆에는 풀도 함께 자란다. 엄마가 마당에 풀도 좀 뽑고 가지치기도 해야 하니 거들어 달라고 하면, 아빠는 언제나 “내일“, “나중에” 하며 다음으로 미룬다. 이후에는 도와달라는 말도 귀찮았던지 엄마와 상의도 없이 마당에 깔린 잔디와 보도블록을 싹 걷어내고 시멘트를 부어버렸다. 그 후로 담장 옆에 서 있던 소나무는 죽어버렸다.
아빠는 손에 흙 묻히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빠를 얼러서 시골 자투리땅에 우리가 먹을 고추, 고구마, 상추, 땅콩, 김장 배추를 조금씩 심었다. 벌레 먹고 못 생겼지만 직접 길러낸 싱싱한 유기농 먹거리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밭으로 갈 때면 엄마는 장화, 장갑, 호미, 바구니 등등, 밭일에 필요한 짐을 챙기고 인상을 찌푸리고 투덜거리는 아빠를 태우고 운전해 간다. 밭에서도 똥 손인 아빠보다 엄마 손이 더 바쁘다. 결국 밭일은 다 엄마 차지가 되었다. 나의 아빠는 알아주는 똥 손이다. 전등 하나 바꿔 다는 일도 끙끙대며 땀을 뻘뻘 흘린다. 벽에 못을 하나 박을 때도, ‘못 가져와라, 망치 가져와라, 의자 가져와라, 요기 좀 잡아라’ 하며 시키는 일이 더 많다. 본인은 망치 들고 딱 두드리는 일만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아빠 덕분에 기계를 다루고, 전기를 고치는 사람을 볼 때면, ‘어머, 이런 것도 할 줄 아네’ 하고 입이 벌어진다. 기계를 만질 줄 아는 남자가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오래전에 내부 단열 공사를 한번 하긴 했지만 우리 집은 아파트만큼 따뜻하진 않다. 부모님은 익숙해져서 추운 줄 모르고 지내지만 겨울에 오빠네 가족이 집에 올 때면 늘 춥다고 한다. 그 바람에 아빠에게 재미있는 일거리가 하나 생겼다. 80대 할아버지인 나의 아빠, 엄마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일을 벌였다. 외풍을 막는다고 시멘트 집 외벽에 내부용 단열재를 둘러 붙였다. 그것도 사다리가 올라가는 1층 높이 까지만. 햇빛이 닿으면 외벽의 절반만 번쩍번쩍 빛이 난다. 나는 기껏해야 50만원에서 70만 원 정도 줬겠지 했는데 몇 백이라고 한다. 보기 싫어서 다 뜯어내고 싶지만 뜯어내지도 못한다. 그러지 않아도 볼품없는 외관이 몇 백을 들여서 꼴 보기 싫음을 얻었다. 열불 남은 덤이다. 이쯤 되니 나이 드신 분이 해달라 한다고 그 공사를 진행한 사람을 탓하게 된다. 수백만 원을 지불했는데 재료비, 인건비, 비용이 얼마가 들었는지 영수증도 없다. 영수증이라도 달라고 하려는 나에게 엄마는 ‘어디를 가도 다 아는 사람인 작은 동네, 이미 저지른 일, 그러지 말라’고 한다.
이 층 베란다는 일정 시기가 지나면 방수 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 “이층 바닥 방수 공사 한 번 해야 할 텐데” 하고 엄마의 말이 떨어지자, 일 저지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으신 나의 아버지, 이번에도 상의 한 마디 없이 어느 날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시끌벅적 공사 시작. 공사를 하는데 왜 아빠가 더 신이 나서 분주하다. 공사하는 사람들이 기계 장비, 페인트, 롤러, 도구들을 안으로 나를 때부터 아빠는 대문에서 안으로 따라다니며 무슨 재미있는 일을 구경이라도 하듯 쓸데없는 말을 걸고 그 옆에서 얼쩡대고 있다. “기계를 써야 하는데 전기 꽂을 데 없어요?” 묻는 말에, 서둘러 콘센트 연결선을 찾아 손수 꽂아준다. 일처리가 잘 되고 있는 지는 뒷전이고, 공사하는 사람들 시중을 드느라 바쁘다. 왔다 갔다, 들락날락, 빵, 우유, 음료를 사다 바치고, ‘간식 좀 드시고 해라, 쉬었다가 해라, 맥주를 드릴까, 막걸리를 드릴까’ 계속 옆에 붙어서 벗어나질 않는다. 공사를 하는데 아빠가 오히려 걸리적거릴 것 같다. 간식 더미가 한가득 쌓여 있는데 뭘 더 못 줘서 안달이다. 간식을 다 챙기고선 일하는 분들 점심 준비를 한다고 나가서 생 삼겹살, 상추, 깻잎, 고추, 오이에 막걸리, 맥주, 소주까지 먹고 마실 것들을 잔뜩 사가지고 왔다. 생전 설거지 같은 건 하지도 않는 사람이 직접 채소까지 씻고, 휴대용 가스버너, 고기구이 팬, 쌈장, 고추장, 기름 장, 온갖 집안 살림들을 다 꺼내다 마당에 벌여 놓고, 불을 피우고 일꾼들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한다. 집안일은 손도 까닥 안 하는 사람이 시종으로 변했다. 공사가 끝나고 마당에는 먹다 남은 음식과 그릇들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고, 아빠는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공사한 바닥 페인트가 들뜨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수평도 맞지 않아 물웅덩이가 몇 개나 생겼다. 방수 작업을 하려면 기존의 페인트를 말끔히 벗겨내고 바닥을 매끈하게 갈고 난 후 방수포를 바르고 표면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 물이 잘 빠지도록 경사도도 정교하게 맞추어야 하는데, 들뜬 페인트만 대충 벗겨내고 그 위에 방수 작업을 한 것이다. 어쩐지 예상보다 일찍 끝나 좀 의심스럽긴 했다. 엄마도 화가 나서 한 마디 했다. “이 층 공사한 거 바닥 다 들뜨고 갈라졌어요. 어떻게 했기에 벌써 들뜨는 지. 공사한 사람에게 와서 보고 다시 시공해 달라고 해요.” 아빠는 직접 가서 보더니, “그러게 다 들뜨네.” 하고는 그만이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으니 엄마가 또 한 번 말했다. “저거 공사 다시 해달라고 해야지. 저렇게 그냥 두면 집 안으로 물 스며들고 다 썩어요. 가서 다시 해 달라고 얘기해요.” 그 말에 아빠는 오히려 화를 낸다. “그만 좀 해! 알았다는 데 왜 자꾸 얘기를 하고 사람을 이렇게 들볶아?” 그러더니 그 일은 끝이다. 공사가 잘못되었으니 다시 해달라는 말도 못한다. 결국 다른 업체를 불러 다시 시공을 해야 했다.
나의 아빠는 인심도 후하다. 자전거 4대를 길 위에 선물로 남겨 두었다. 아빠는 시내를 다닐 때 운동 삼아 타고 다닌다고 비싸고 좋은 자전거를 샀다. 한 달도 안 되어 그 자전거가 없어졌다. 식당 앞에 자전거를 세워 뒀는데 누가 가져갔다고 한다. “누가? 자전거 잠금 자물쇠가 있는데 그 자전거를 들고 훔쳐 갔다고? 그 도둑도 대단하네. 그 무거운 걸 들고 가고. 차에 싣고 갔나?” 그랬더니 아빠 하는 말, “안 잠갔어. 자기 것도 아닌데 왜 남의 걸 가져가. 허 참.” 도둑을 예방하라고 자물쇠가 있는 거지, 왜 있겠어요? 정말 너무나도 선량하신 나의 아버지. 좋은 자전거를 한 대 내다 버리고 또 한 대를 샀다. 그 자전거도 얼마 안 가 없어졌다. 자전거 4대를 거치고 지금은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을 만큼 허름한 자전거가 남아 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아빠는 남들에게 퍼주는 것을 좋아한다. 남들에게 받은 선물 꾸러미도 집에 제대로 도착하는 일이 없다. 오는 길에 친구에게 들러 받은 선물을 주고 온다. 친구가 집을 달라고 하면 집도 줄 사람이다. 사기당해 퍼주고, 보증서서 퍼주고, 돈 빌려 달래서 퍼주고, 사촌 동생한테 등기 도둑질 당해 땅도 퍼주고, 그 뒤처리는 항상 엄마 몫이었다. 집문서도 내 줄 뻔했다. 오죽하면 엄마가 아빠 인감, 도장, 모든 문서를 다 빼앗아 감추어 두었을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저녁 무렵 아빠가 어떤 아저씨와 집에 와서 다짜고짜 엄마에게 인감도장을 달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느닷없이 인감을 내 놓으라고 하니, 엄마도 순순히 줄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밤새 실랑이를 하고 있을 순 없었던지 결국 인감을 내 주고야 말았다. 그렇게 땅 한 덩이는 또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다른 사람에게는 후한 아빠의 인심이 어쩐지 엄마에게는 가지 않는다. 겨울이 되어 밖에 있는 화분들을 얼기 전에 안으로 들이게 도와달라고 하면 아직 얼어 죽을 만큼 춥지 않다며 자리를 피한다. 겨울마다 화초 여러 개가 얼어서 죽어 나갔다. 그리고 화분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어릴 적 나는 새로 들어오는 화분으로 나무의 종류를 배웠다. 떡갈 고무나무, 인도 고무나무, 벤자민, 녹보수, 제라늄, 산세베리아, 알로카시아, 스투키, 그리고 각종 난들……. 화분을 옮기는 일도, 풀을 뽑는 일도, 먹거리 거두는 일도 힘들어서 못하겠다던 아빠는 퇴직한 동창이 하는 배 과수원에 가서 일꾼 노릇은 자처한다. 친구가 일이 많은데 일 할 사람이 안 구해진다고 하면 하던 일도 멈추고 득달같이 달려가서 머슴처럼 일을 해주고 온다. 남의 일에 진을 다 빼놓고는 힘들다고 보약을 지어먹는다. 친구는 과수원으로 수억의 수익을 올리고, 아빠는 보약으로 수백을 들인다. 물리치료를 받고 와서도 엄마에게 안마를 시킨다. “남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내 몸을 먼저 챙기고 남을 도와줘도 도와줘야지. 남의 일에만 그렇게 열성으로 해야 소용없어요.”하고 엄마가 한 마디 하면, 아빠는 “내가 무슨 남만 위한다고 그래? 참 나. 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 나를 들볶아!”하고 역정을 낸다. 우리 집 일은 남의 일보듯 하면서 남의 일은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하는 우리 아빠. 집에선 왕 노릇, 나가면 머슴 노릇.
사람들은 아빠를 법 없이도 살아갈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착하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기력이 쇠해 버럭도 못하는 앙상한 노인이 되었지만 끝까지 손이 정말, 정말, 정말, 너무도 많이 가는 우리 아빠.
우리 집 가장 나이 많은 아기. 아,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