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원서 접수를 앞둔 고3 시절, 내가 상담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은 어떤 카더라때문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하면, 배우는 동안 자신의 성격을 전부 뜯어 고쳐야된대."
"왜?"
"그래야 자기 성격의 모난 부분들을 없애고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해서 마음을 고쳐주지."
별다른 꿈은 없었다. 당시의 나는 나를 싫어했고, 주로 우울했고, 자주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지금도 대한민국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우울하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아마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그때에도 덜하진 않았을 것 같다. 공부만 잘하면 장땡이라는 경쟁적인 분위기, 성적이 좋고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에 포함되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 안그래도 초조하고 불안하고 사람을 충동적으로 만드는 호르몬, 미성숙한 전두엽으로 인한 판단력 부족,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모르지만 자기를 탐색할 시간과 방법은 없음.
중구난방으로 써낸 수시 원서 6개는 전부 불합했다. 경영, 경제, 무역, 법학 등등이었다. 당연히 가고 싶었던 학과들은 아니었고 뭐하는 학과인지도 잘 몰랐다. 내가 꾸역꾸역 공부를 했던 이유는 언젠가 꿈이 생겼을 때 성적에 발목잡히지는 않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야속하게도 아니 자연스럽게도 대학 학과를 정해야 하는 순간까지도 하고 싶은 건 없었다. 진로탐색이란 걸 해봤어야 알텐데,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 버티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미래를 계획한다는 건 허황된 이야기였다. 되고 싶은 꿈이란 미래가 기대되는 누군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꿈을 꾸라는 말은 공허한 외침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 레벨이라도 높여 썼던 수시 광탈 이후 정시를 써야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차려졌다. 며칠동안 서점에 가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같은 심리학 책들을 읽었다. 자기계발서들도 많이 읽었다. 그리고 어차피 딱히 관심 있는 것도 없는데,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똘똘 뭉쳐있는 나자신을 조금이라도 뜯어 고칠 수 있다면 심리학으로 가자고 결심했다. 심리학을 전공해서 마음이 힘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생각은 그 당시에는 전혀 없었다. 그냥 내가 좀 변하고 싶었다. 그렇게 수도권 4년제 대학의 상담학과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