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필수
스무살 수강했던 상담학개론 수업은 아직도 내 대학 생활 중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상담학개론을 맡으신 분은 상담심리 학계에서 유명하셨던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교수님이셨다.
교수님께서는 의사가 환자를 다루듯이 상담자가 내담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상담자는 사람을 고쳐야할 부족한 무언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해줄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중에 이 기억을 떠올리니 심리학의 질병의학적 모델과 예방적 모델을 비교하여 교수님의 가치관을 전하려 하셨던 것 같다.
상담사는 인간의 변화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난 그 말을 사실은 믿고 싶었지만, 믿기 어려웠다. 나는 내가 너무 싫은데, 바꾸고 싶은데, 매번 실패했고 더 싫어졌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 가능한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역시 가능한가? 본 적이 없고 경험한 적이 없는 데 이걸 어떻게 믿으라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이해하고 알 것 같다.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심리적 영역은 분명히 있다. 어찌되었든 매사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던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훨씬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어졌다는 점에서.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교수님이 하신 말씀들이 떠오른다.
교수님은 생각을 묻는 토론을 참 좋아하셨다.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손도 들라고 시키고, 또는 이름을 부르시며 발표시키셨다. 어쩌다 내가 걸리면 난 새빨개진 얼굴과 작은 목소리로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얼버무렸다.
시험 문제도 참 난해하게 내셨다. 영어 원서 책을 겨우 번역해가며 공부했건만 답안지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것 같은 모호한 질문이 나왔다. 학점도 좋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 교수님은 자기 생각을 충실히 쓰는 걸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주입식 자동인형이었던 나는 그 뒤로 이 교수님 수업이 자신이 없어 피해다녔다.
'곤란하다'라는 말이 가장 생각나는 수업이었지만, 그만큼 매 순간마다 내게 생각치 못했던 혼란을 주며 기존의 가치관을 뒤흔들고 생각을 바꿔주었던 기억에 남는 강의였다. 힘들었던 강의를 끝까지 수강해낸 것을 시작으로 상담을 업으로 삼게 된 지금을 돌아보면, 이때의 기억은 참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