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는 시간, 뇌에 드리운 그림자

긴 앉은 시간이 뇌에 남기는 예상 밖의 흔적

by 정로그

현대인의 삶은 ‘앉아 있는 시간’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무실 책상 앞에서, 퇴근 후 소파에 앉아 보내는 시간까지.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또 너무 길게 앉아 있다. 그동안은 ‘운동을 하면 괜찮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는 우리의 안일함에 경고등을 켠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이라도 오래 앉아 있는 습관 자체가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높이는 ‘독립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메디컬 센터(VUMC)와 피츠버그 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밝힌 이 사실은 뇌 건강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한다.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치매: 알츠하이머 협회 저널(Alzheimer’s & Dementia: The Journal of the Alzheimer’s Association)’에 실린 논문은 노년층의 앉아 있는 시간이 길수록 알츠하이머병 관련 뇌 부위에서 인지 기능 저하와 뇌 위축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운동을 꾸준히 해 온 이들에게서도 이 같은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이 특히 놀랍다.


연구팀은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이 인지 기능 저하와 신경 퇴행성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알츠하이머병의 유전적 위험 인자인 APOE-e4 대립유전자를 가진 이들에게서 그 영향이 더 뚜렷하다.


피츠버그대 신경학 조교수 마리사 고그니아트 박사는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낮추는 데는 하루 한 번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매일 운동해도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습관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밴더빌트 기억 및 알츠하이머병 센터 설립 이사이자 신경학 교수인 안젤라 제퍼슨 박사 역시 “노년층 뇌 건강에 생활 습관이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는 우리에게 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뇌 건강을 지키려면 ‘운동하는 시간’만큼이나 ‘앉아 있지 않은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장시간 앉아 있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 신경 퇴행과 인지 저하를 예방하는 현실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유전적 위험이 높은 이들에게 더욱 필수적이다. 실제 일부 연구에서는 30분마다 5분씩 가볍게 걷는 습관이 뇌 건강 유지에 최적의 방법으로 꼽히기도 한다.


우리 뇌는 끊임없는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우리의 작은 일상 습관 하나가 뇌의 미래를 좌우할지도 모른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사소한 노력이 알츠하이머병의 그림자로부터 뇌를 지키는 강력한 방패가 될 수 있음을 이 연구는 조용히 알려준다.


결국, 뇌 건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움직임은 거창한 운동복을 입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숨겨진 작은 '아날로그적 움직임'이야말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뇌를 지키는 가장 현명하고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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