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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다다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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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원 Sep 23. 2024

14

Epilogue

상현은 꿰맸던 수건을 전부 낱개로 분해한다. 열 장의 수건을 종이가방에 담아 대문 앞에 선다. 가로등에 하루살이들이 엉겨 붙고 떨어진다. 바람이 숨죽여 분다. 집에는 불이 꺼져있고 대문은 한 뼘 열려있다. 그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서 문을 조심스레 연다. 정원엔 벌써 눈이 온 것처럼 하얀 가루가 엎질러졌다. 아몬드처럼 작고 단단한 추위가 몸에 흩뿌려진다. 컨버스 스니커즈가 도어매트 위에 놓여있다. 상현은 똑같은 컨버스를 그 옆에 가지런히 벗는다. 도자기 없이 기둥만 서있는 빈 거실. 흙먼지가 거실에 너저분하게 흩어졌다. 물건이 없는데 온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장치와 살충과 살균 처리를 하는 기계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없다. 방마다 문 없이 모두 아치형의 입구만 있었다. 사무실에는 대형폐기물 스티커가 붙어있다. 상현은 복도처럼 생긴 드레스룸 끝에 반투명한 유리문을 본다. 그곳에서 어두운 빛이 가물가물하게 나왔다. 옷장 사이를 지나 미닫이문을 연다. 욕조에 앉아있는 소년. 은빛의 눈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 상현의 눈꺼풀이 떨린다. 물도 햇볕도 사랑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영혼은 육체를 벗어놓고 도망쳤다. 욕조엔 징그럽게 문드러진 꽃들이 머리카락처럼 붙어있다. 나체의 무표정한 소년. 맨살이 드러난 부분마다 피로 얼룩져있다. 턱과 어깨, 손바닥과 허벅지. 벌어진 목에서 활짝 드러난 속살. 무화과처럼 핏기 띈 씨앗을 쏟아낸다. 상기된 두 뺨. 금방이라도 아무 벽을 붙잡고 구토할 듯이 더부룩한 입. 가혹한 열기로 엉킨 머리카락. 가위가 진흙탕 위에 떠돌아다닌다. 욕조의 물은 아직 따뜻하다. 목은 속이 비어, 흘러나온 내장처럼 덜렁거린다. 가위는 소년의 목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찢어진 살덩이가 솜털과 함께 뒤집힌다. 단물이 뚝뚝 떨어진다. 물비늘처럼 속살대는 붉은 살. 상현은 오른손을 들어 벗겨진 살갗을 훑는다. 찐득한 통증. 진홍빛 수건으로 말캉한 과육을 덮는다. 백자대호 같은 소년의 몸에 푸른 어둠이 새겨진다. 하얀 숨소리에 손을 얹는다. 빈자리에 풍경을 끌어당긴다. 평창동은 너무 조용하고 밤은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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