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무뚝뚝한 은유적인 서사 전개를 보기 위해 매일 들리는 카페처럼 영화를 찾아본다. 이제 김민희가 없어도 홍상수라는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볼 수 있다.
자매가 서로의 안부를 모른다. "언니 우리 너무 창피하다." 동생은 연락의 부재가 일으킨 간주를 확인하고 눈물도 흘린다. 하지만 곧 지어질 새 아파트를 보러 갈 땐 선글라스를 끼고 산책하듯 걷는다. 아파트가 공사 중이라 내부엔 들어가지 못하고 겉에만 구경하는 모습이 꼭 6개월 뒤에 언니가 죽을 거라는 걸 모르는 동생 같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인데 집에 있으면서도 돈 때문에 떠날 생각을 해야 하는 처지가(쫓겨나는 게 아니라 옆집이 더 좋아 보여서) 불편해 보인다. 편안하게 산다는 건 고통을 둔감하게 느끼는 것. 그렁그렁한 당신의 얼굴 앞에 숨겨진 천국을 발견하는 것. "높은데 싫어. 정말 무서워. 너네 집 창가 근처도 못 가." / "언니 너무 힘들겠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주택에서 살았다. 그리고 현재는 미국에 산다. 동생이 왜 아무도 없는대서 사냐고 하지만 언니는 단지 자신이 아프지 않을 수 있는 곳에서 사는 것이다.
다리 아래 흐르는 시냇물 앞에서 담배를 핀다. 초록색 풀들과 회색빛 담배연기. 언니는 죽어가고 세상은 파릇파릇하다. 나의 병을 드러내는 대조적인 배경 앞에서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요. 마치 나는 옷에 묻은 떡볶이 국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데. 여자는 기도한다. 다가올 미래는 악몽이기에, 여기, 지금, 이곳에 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간이 무의미한 신께 자신의 영혼을 맡긴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다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남기 싫어서. 쭈글쭈글한 나의 얼굴. 제 얼굴 앞에 보게 하소서.
조카에게 지갑을 선물받는다. 그 마음이 소중해서 그 정성에 합당한 마음이 되길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감독을 만난다. 처음 보는 감독한테 자신이 오래 못 산다는 고백을 한다. 감독은 이미 그전에 그 여자의 연기를 쭉 지켜보면서 진실함을 느꼈다는 특별한 기억을 꺼낸다. 영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오직 그 여자의 영혼을 믿어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오래될수록 늘어져서 차라리 처음 보는 사람이 더 친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믿음보다 중요한 건 실체다.
"견디다 보면 죽겠죠?" 남자는 내일 당장 영화를 찍자고 한다. 둘이 그렇게 헤어졌는데 다음날 아침, 어제 했던 약속은 원래 이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며 하루하루 행복하시길 바란다는 음성 메시지만 남겼다. 여자는 허탈하게 웃는다. 안 아픈 사람처럼. 혹은 아파서 미친 사람처럼. 동생은 좋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언니는 그 꿈이 절박하다. 동생은 그 복을 언니에게 줄까. 언니가 시간이 없는데 우린 아직도 모르는 게 많구나.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누적된 식상한 시간이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