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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Jan 08. 2023

02. 노포와 당신

남편은 노포를 아주 좋아한다. 남편은 식당이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는 것이 맛에 대한 보증수표라고 믿는 모양이다. 우리 부부는 연애 시절부터 실용주의 노선을 탔다. 분위기 좋은 식당보다는 국밥집을 많이 다녔다. 돼지국밥집, 순댓국밥집, 복국집, 대구탕집 등등...


한 번은 형님께서 그런 질문을 하신 적도 있다. ‘동서는 왜 삼촌을 그렇게 잘 따라가요?’ 그러게요, 저는 왜 잘 따라다녔을까요. 어느샌가 내가 그에게 길든 셈이다. 어렸을 적부터 색깔도, 생김새도, 냄새도 이상하다면서 입에도 대지 않았던 순대를 내가 찾아서 먹어댈 줄이야.




그의 노포 사랑이 정점을 찍었던 적이 있다. 신혼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날은 땅거미가 져서 테베 강물이 거뭇하게 보일 때까지 정처 없이 걸었다. 주린 배를 채울 요량으로 식당가를 향해 걸었다. 남편은 무슨 오기였는지, 스마트폰으로 맛집을 검색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타국에 왔으니,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끝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여행객은 우리밖에 없어 보였다. 진짜 맛있는 곳 잘 찾아온 것 같아! 흡족한 표정으로 남편은 자신 있게 피자를 주문했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고야 말았다. 발육이 좋은 멸치 몇 마리가 치즈의 바다에 파묻힌 피자를.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엔초비 피자였던 것 같다. 도대체 남편은 당시에 무슨 메뉴를 시켰던 걸까. 미스터리다.) 우리는 피자를 먹기도 전에 충격을 먼저 먹었다. 나는 그다음 기억도 먹어버렸는지, 남은 게 거의 없다. 피자에서 생전 처음 맡아본 바다 내음 말고는. (남편은 그래도 우리가 다 먹지 않았겠느냐며 반문하더라.)




그가 제일 사랑했던 순댓국밥집은 시장 안 골목길에 있었다. 그가 손을 위로 쭉 뻗어야만 엄마, 아빠의 손을 붙잡을 수 있었던 시절부터 다녔던 곳이었다. 그는 자라서 더 이상 부모님의 손을 잡지 않고도 혼자서 식당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조금 더 자라서는 그의 연인에게 순댓국을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순댓국에 누린내가 조금 난다는 이유로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바로 묘미라며 그녀를 설득했다. 그 이후로도 그는 종종 그녀를 데려갔다. 결혼한 이후에도 순댓국이 생각날 때면 그녀와 손을 잡고 시장엘 갔다. 그렇게 가서 그 식당에 앉기만 하면, 그는 뚝배기 바닥에 인사하기 일쑤였다.


지난해 어느 날이었던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순댓국밥집의 사장이 바뀌었는데, 맛도 바뀐 것 같다는 전화였다. 그 후로, 그는 식당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다. 절대로 그 집을 찾지 않았다.


그가 잃은 것은 단순히 순댓국 한 그릇, 노포 한 곳이 아닐 것이다.
그가 잃은 것은 그의 인생을 관통했던 어떤 의미의 ‘사랑’이었으리라.
어린 시절, 가족, 연인 그리고 맛.

그나저나 앞으로 우리는 어느 노포에 정착하게 될까. 알 수 없는 인생이다.


마지막 사진이 될 줄 모르고 찍었던 그 노포의 순댓국.

남편은 한 번 가면 당분간 순댓국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준다며 참 좋아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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