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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 Dec 09. 2023

용기

그 차분함에 대하여


잘못된 것에 대한 위험이 마음속 생각을 통해 정해졌을 때의 숙연함


용기에는 참 많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엔 악과 대적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행동만이 용기인 줄 알았는데 나 자신을 오롯이 바라보는 능력 또한 용기의 범주에 속해있었다.

어쩌면 용기는 고통과 직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수치심과 창피함과 시기와 부러움과 후회를 온전히 인정하기 위해서는 나를 심해 저 밑으로 내려놓아야 하는 용기가 요구된다.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연기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보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약하고 보잘것없다.




받아들이기 거북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생각을 정지해 버리고 순수한 감정에만 몰두하는 방어기제는 누구한테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가끔씩 울컥하는 회색의 감정 속에 짓눌릴 때면 밤늦게까지 자책하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은 개운했지만 긁어내지 못한 가려움처럼 원인 모를 답답함이 끝내 마음 깊이 남아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공감이 부재했던 탓일까.

왜 우울감이 발끝에서부터 솟구치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를 여러 번 걷어 차 봐도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었는데 나를 거울 앞에 세워 찬찬히 지켜보니 또 색다르다.

상처를 헤집는 고통이 수반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새 살을 돋아나게 하는 연고를 바르는 기분이다.

나를 인정하는 건 자기 연민과는 약간 성질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토해내면 괴로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용기를 통해 용기를 얻는 것 같다.

나를 미워할 용기.

아니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용기는

나를 인정할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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