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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 Dec 20. 2023

Memento Mori

지금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질문

Memento Mori
스무 살이 된 이후 지금까지 나의 가치관 중 하나로 굳건하게 자리 잡은 나름의 좌우명이다. “죽음을 기억하라” 숭고하고 난해한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종종 이 마법 같은 문장을 나는 생각한다.

나는 메멘토 모리란 정처 없이 지나가는 현재 직시하고 있는 이 삶을 조금은 찬찬히 시간을 들여 순간을 맛보라는 의미로 해석했었다. 순간이 모여 현재가 되고 그 현재는 이 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어버리는 시간의 묘미는 언제 생각해도 블랙홀의 중심만큼이나 유혹적이고 미묘하다.


지금이 지나간 시간은, 그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과거는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했던 것일까. 그도 아니리면 존재할 것인가. ‘지금’이 지나가며 남긴 현재의 증거와 파편들이 더 이상 기억되고 현존하지 않는다면 과거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가령 1년 전 읽은 담론이라는 책의 123p를 생각해내지 못한다면 내가 그 페이지를 읽기 위해 소모했던 시간과 느꼈던 감정과 고민했던 사유의 흔적은 결국 소멸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지금이 지난 세계는 마치 평행 세계처럼 지금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잔존해 있는 것일까.


 1이라는 숫자 또한 어찌 됐든 인간세상의 수많은 가정 중 하나일 뿐인데 가정 위에 쌓아 올린 가정들이 모인 가정 투성인 이 세상이 믿을 만큼 안정적인지 모르겠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간다는 운명론부터 전생의 삶을 알고 싶다면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 후생의 삶을 알고 싶다면 현재의 삶을 되짚어보라는 윤회설까지 오히려 나를 창조하고 인도해 주는 신이 있길 믿는 편이 간단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 그러기에 지금이 가치 있는 시간인가. 인간의 삶도 결국 하나의 나무와, 하나의 개미와, 하나의 구름과 하등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인생의 덧없음 뒤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 누가 숨기기라도 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물을 사물이라 인식할 때 사물이 되듯이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만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일까.


의미 있는 현재를 살고 그러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이 참된 가치라 통용되지만 과거의 불확실성과 지금의 무의미함이 나를 무력감과 무망감에 빠뜨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인간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지, 이 세계가 하나의 ‘트루먼 쇼’가 아니라는 증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과연 내가 생각하기에 고로 존재하는 것이 맞는 건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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