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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 Apr 08. 2024

명예

우리는 언제나      와 신의 속에 산다.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동기의 형과 노량신 수산시장에서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형은 오래전에 장교로 제대하고 지금은 사회에서 굵직한 외국계 기업에 다니며 스포츠카를 타는 소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높은 친화력과 겸손함, 삶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 무엇보다 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레 호감이 생겼다. 전방에서 고생하는 후배들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에 식당 전체가 훈훈한 내음과 뜨끈한 포근함으로 가득 찬 듯한 느낌이었다.


각종 비싼 회를 담은 접시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형이 내게 '명예 헌'이라며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소위 시절 초급군사교육반에서 일어났던 일화를 동생에게 들었는데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고, 심지어 아내는 아버지가 군인이셨던 군인 가족이었기에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큰 위로를 받았었다고 하는 것이다.


솔직히 형에게 그 말을 듣기 전까지 그 에피소드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었었으며, 듣고 나자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정도였고 정확히 내가 어떤 말을 했는 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어떤 기분과 태도를 가지고 그 말을 했었는지만 생각이 나는 정도였다.


2019년 3월 1일 소위로 임관하고 처음으로 다른 기관에서 양성된 동기들과 장성 보병학교에서 초급군사교육반에서 3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었다. 동기들과 희희낙락하던 즐거웠던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고 교육 수료의 끝을 바라보는 시기였다. 각종 평가만 남았고 우등상을 받고 목에 메달을 걸고 싶은 욕심이 컸던 나는 한 학급의 대표인 학급장이라는 완장도 차고 매일 진행되는 토의와 발표도 열심히 참여했었다. 그날은 독도법이라 불리는 지도와 나침반만을 가지고 팀을 이루어 목표를 찾는 평가를 진행하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파란 하늘은 청명한 빛을 내뿜었고 짙은 잎새들은 강렬한 햇빛을 전부 담아내지 못하여 주변에 흩뿌릴 정도의 더운 날씨였던 기억이 난다. 교번 순으로 팀을 이루어 독도법 평가를 진행하기 전 교관님께서 평가 방식과 주의사항에 대해 교육을 하셨다. '지도에 표시된 목표들을 찾되 개별로 움직이는 행동은 금지하며 꼭 팀과 함께 움직여서 찾을 것.'


봄의 끝과 여름의 초입 그 사이에 있던 탓에 날씨는 무더웠다. 대부분의 팀은 좀 더 빠르게 목표를 찾고 쉬기 위해 교관님의 말씀을 어기고 개별로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 팀도 다른 팀처럼 개별로 임무를 나눠 빨리 목표를 찾아 높은 점수를 얻고 쉬자 라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때 내가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단다. "그건 명예롭지 못하잖아..." 결국 나의 의지 탓에 우리 팀은 정석대로 목표를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고 다행히 높은 체력과 준수한 방향탐지 능력 덕분에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노량진에서의 만남과 작은 에피소드를 기억해 준 동기와 형 덕분에 임관하고 5년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명예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4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외쳤던 사관생도의 신조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되었던 화랑의식도, 학기마다 감독관 없이 치러졌던 시험도, 들키지 않은 잘못을 보고 하는 양심 보고도 모두 명예로운 군인을 육성하기 위한 국가와 선배들의 가르침이었으나, 경솔하게도 나는 잊고 있었다.


군인에게 필수적인 덕목인 명예라는 가치는 흰색 깃털과 같아 새하얗게 빛나지만 쉽게 오염되며 외부의 압력에 의해 꺾이기 쉽다. 장교는 특히 군인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큰 책임과 권한이 부여되기 때문에 갖가지 유혹과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군인은 국가방위와 국민의 보호를 사명으로 해야 함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스스로 군임임에 숭고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면 지금도, 미래도 '명예 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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