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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 Apr 21. 2024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왜소한 몸과 그리 좋지 않았던 성적, 소심함과 순수함의 결정체였던 어렸을 적의 나는 자존감이 많이 낮았었다. 나름의 재빠른 상황판단과 눈치, 높은 자존심 덕에 어떻게든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갈 수 있었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 모두 행복한 날보다 불행한 날이 많았고 작은 바람에도 태풍이 온 듯 뿌리 깊게 흔들리던 나는 뽑히지 않기 위해 작은 모래 한 줌 만을 꼭 붙잡고 살아갔었다. 재수 끝에 다행히 중학교 때부터 동경해 왔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군인의 길을 걷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군인상을 목표로 해야 좀 더 멋있는 군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지, 인, 용의 육군사관학교의 교훈 중 나는 인을 택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공부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1순위는 인, 2순위는 용을 단련하기 바빴었다. 하급 생도에겐 존경을, 동기 및 상급 생도에겐 신뢰를 받기 위해 다분히 노력했고 어느 정도 목표는 달성한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나의 약점인 지(영어, 학점, 독서, 쓰기, 말하기 등등)와 신체적 특징(키, 근육, 발성, 외모 등)은 나를 점점 더 작아지게 만들었고 뛰어난 말하기 능력과 논리를 기반으로다양한 기회에 도전하는 동기, 잘생긴 얼굴과 키로 하급 생도의 선망이 되었던 상급 생도 등을 바라보며 나의 선천적 결함을 증오하는 단계까지 진척되었던 것 같다. 또다시 자책과 후회의 생도 생활을 한 뒤 졸업을 하고 소위로 임관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야전에서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랐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그저 수많은 다이아몬드 중 작은 원석, 혹은 하얀 돌멩이일 뿐이었는데, 야전에서는 붉은빛을 띠는 루비만큼이나 돋보였다. 내 실력 때문인지, 출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안 경계 소초장, 작전장교, 여단 인사장교라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직책에 머물 수 있었다. 모셨던 과장님, 주변 중대장님들, 대대장님 등 칭찬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내 생애 중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모종의 일들로 전역을 결심하게 되고 전역을 준비하게 되면서(결국 반려되었지만.) 지금 나 자신이 얼마나 가진 게 없고 능력도 없는 초라한 상태인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특히 전역이 반려되고 군 생활을 다시 열심히 하자는 의지를 다잡는 지금도 나라는 사람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사회적 명예를 걷어내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여전히 논리적이거나 말을 잘하지 못하고, 영어 토익 성적은 임관 전보다 낮아졌으며, 체력 또한 겨우 특급을 달성할 정도이다. 물론 처세술이나 일을 처리하는 방식 등 5년 간 터득하고 배운 덕에 지혜로운 면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과연 타 장교와 비교했을 때 우월할 정도인가라고 생각했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은 수준이다. 


나는 불손하고 오만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가끔의 노력은 나에게 만족감을 주어 더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결국 제자리걸음이 되었다. 지금 나는 출근해서도, 퇴근해서도 온전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중이며, 무력감과 무능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앞으로의 방향을 확정하지 못해서일까, 하루하루 내딛는 발걸음이 불안하다. 몸은 편안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무거워지는 중이다. 나는 언제쯤 나 자신에게 떳떳해질 수 있을까,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날이 과연 올까? 나도 저들과 같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전체적인 내 삶은 윤택해질까? 나는 자기 객관화를 너무 늦게 해 버린 거만한 양치기이다. 정당하고 정의롭게 하루를 살아내자. 언제까지 심연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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