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동생 결혼식날짜가 전사람 생일이었다. 우연인지 우연이 아닌지.
동생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뭘 저렇게 준비하지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식당일 조금 설레이기도 하고 내가 제일먼저 준비하고 있었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하고. 머리는 아주잘 세팅해주셨고 마치 내가 아닌것 같았다.
결혼식을 보고 가족사진을 찍는 내내, 나는 아 혼자구나. 이젠 더이상 남이구나. 미련이 없어지는 생각이 들었다.
첫 이혼하였을때 내가 뭘 잘못한거지? 무슨일이 된거지. 내 아들은 절망적인 순간이었는데. 천천히 시간이 갈수록 난 그걸 받아들였다.
나에게 이혼은 돌맹이가 더욱 단단하게. 거세게 깍여지는 과정중 일부에 불과했다. 그 후에도 다른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모두. 내가 혼자라는걸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순간들이었다.
결혼식을 보며 눈물이 흐르는 내게 손잡아 주는 아들.
이제 나에겐 남겨진 가족은 이 아이 하나뿐. 더이상 가족이 없구나. 내가족은 나와 아들 단 둘뿐이다.
식구라는건 가족이라는건. 평생 같이살줄알았고 변하지 않을줄 알았다.
어느새 익숙함에 변해버리며, 내가 아닌 한아이의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은 그걸또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은 익숙치 않았다.
언젠간 성공하고 싶다. 언젠간 큰사람이 인정받는 욕구가 강한 나에겐 그냥 주부로써는 너무 힘들었다.
사람도. 일도 하나 없는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데는 아무곳도 없구나. 그런생각. 내가 어떤글을 쓰던. 어떤 생각을 하던 응원하기보다는, 쓸데없는 생각이라 무시하던 그 사람.
인연이 아닌걸. 여전히 끌고왔구나.
사람이 살면서 인연도 사랑도 없다는걸, 이혼하면서 35세가 되서 알았다.
왜 나는 내 사주팔자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된걸까.
이혼을 하고 처음으로 갖게된 직장은 아주 작은, 특수 실무사 보조. 장애인 학교에서 근무하는 시간동안.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거에 연이어 어린이집 교사가 되었다. 아이를 못보는게 처음은 힘들었지만 이혼하고 처음 제대로 된 직장에 감사하며 2년을 근무하였다.
나를 알아주는사람도 인정해주는 곳 없던 2년간의 직장을 마무리하며 직장을 이직 후, 대형 유치원에 입사하게 되었다.
내능력 밖이라 여겼던 직장은 어느새, 척척 해내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
이혼 3년째 차였다. 이런생각이 든다. 내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아직 그사람과 함께했다면 이런 커리어를 얻을수 있었을까?
아직 작은 돌맹이지 않았을까.
왠만한 작은일에도 상처받지 않은 돌. 그 돌이 직장내에서는 커다란 인정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커리어를 쌓고.
선생님 주임 원감 타이틀까지. 대학원도 가고 아이 대학교도 보내고.
남편은 없겠지만. 누구보다 돌같은 내가. 단단한 내가.
초등학생 엄마. 선생님. 자랑스러운 딸.
한발자국 또 한발자국 나아갈꺼다. 단단한 돌로써.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오는 아주 단단한 돌로 성장할꺼다.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성장하는 내가 될것이다.
그리고 나 아들 이 가족이. 떳떳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