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의 꿈, 140일의 기억에서 깨어나며

by 흑투리

"예상보다 16만 원이 더 나간 핸드폰 요금제 고지서."


기상하자마자 알고 싶지 않던, 이 끔찍한 사실을 자각하면서부터 시작한 그날 아침. 투리 본인이 핸드폰을 바꾸었던 때가 올해 1월이었는데, 원래대로라면 4월부터 요금제가 낮은 것으로 변경되어야 했다. 그런데 7월까지 빠져나간 금액을 보니, 생각보다 그 금액이 많았던 것이다. 손실액은 낮게 잡아도 어림잡아 16만 원.


정신을 부여잡을 틈도 없이 허겁지겁 핸드폰으로 향한 손가락. 통신사에 전화해 보니, 원인은 본인이 직접 요금제 변경을 인증하지 않아서라고. 그간 통신사에서 본인한테 질릴 정도로 문자와 전화를 돌렸지만, 본인이 유심을 바꾸는 바람에 연락이 아예 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전까지 투리는 시간이 지나면 요금제가 자동적으로 바뀌는 줄 알았다. 하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이용자의 직접 인증이 없으면 변경이 안 된단다. 급히 요금제를 바꾸기는 했지만, 이미 16만 원은 날려버린 꼴.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이 모습이, 바로 한 학기 동안의 교환학생 기간을 끝내고 투리가 맞이한 첫 번째 아침의 순간 었다.





"인생은 실전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시작하는 한국생활은 너무하지 않아?

.....라고 개처럼 절규해도, '시간'호선 위의 기차는 여전히 달리는 중. 집 근처의 카페들과 익숙한 골목들, 어느새 귀와 눈에는 늘어난 빈도수의 한국어와 한국인들. 그리고 점점 쌓이고 있는 대학교 알리미와 취업 문자들. 비교적 둔감한 편인 투리의 오감마저, 이제는 새로운 생활의 종료를 뼛속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비례해서 점점 쌓이기 시작하는 본국 특유의 K-스트레스. '케데헌(Kpop 데몬 헌터스)'가 아니라 '케스헌(Kpop 스트레스 헌터)'이라는 아이돌이 있다면, 바로 팬클럽 1기부터 가입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기분이야말로, 본인이 삶의 감각을 진정으로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스트레스는 본인이나 여느 한국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폴란드에 있었을 때도, 인턴이나 취업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현지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말이 한국인이지, 본인이 일반적인 한국인 특성에 맞는 인간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들지 않지만, 솔직히 다른 국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만족도가 높았을 것 같지는 않다. 원래 본인이 체험하지 못한 멀리 있는 무언가를 동경하는 게 인간의 심리 아닌가. 분명히 투리와는 반대로 넷플릭스의 K-콘텐츠를 보면서 투리의 모국에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 유럽인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투리 본인이 맘 편히 느낄 정착지가 애초에 존재하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내가 이 교환학생 생활을 너무나도 만족스럽게 보냈다는 말도 되겠지? 일단 첫 소감을 밝히자면, 투리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독립심이 강한 족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여러 번 다닌 결과, 가장 만족스러웠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혼영('혼자 여행'의 줄임말)이었다. 물론 친구들과의 여행이 불만족스러웠다는 얘기는 아니다. 혼자 여행과 같이 여행 둘 다 제각각의 매력과 한계가 존재한다. 다만 뭔가에 꽂히면 깊이 파는 투리의 성격상, 상대적으로 주변 경치만 쓱 보고 떠나는 사람들과의 합류보다는 한 도시의 모든 것을 맛보고 뜯어볼 자유가 있는 기회가 본인에게는 더욱 좋지 않았나 싶다.


단순히 여행뿐일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구속력이 줄어든 것도 독립심 강한 투리가 느낀 하나의 이점이었다. 가끔씩은 주변 사람들과의 과한 만남 때문에 은근히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아예 외국에 있으니까 관계를 위한 불필요한 만남이 없어져 편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소통들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아서, 이 적절한 거리감이 어떤 면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약간 분위기 환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제는 슬슬 현실을 자각할 시간. 살아생전 다시 경험하지 못할 교환학생의 순간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한국에서 마저 끝내지 못한 목표들을 다시 마주할 때이다. 약간의 고통은 수반되겠지만, 그럼에도 역시 교환학생 경험은 후회하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투리는 잃어버린 영어실력(?)을 다시 전성기 시절로 되찾았으며, 수많은 외국인 동기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본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여러 좋은 경험들도 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 좋은 경험들을, 이 브런치 스토리에 다시 개제할 시간이다.






어쨌든 꿈과 같았던 140일, 달리 말하면 한 학기 동안의 교환학생 기간이 끝난 흑투리 군.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 약간의 넋두리와 함께, 생존신고 알립니다! 이 글을 볼 리는 없겠지만, 우선 투리 본인과 좋은 경험들을 함께 공유했던 교환학생 동기들과 저를 격려해 주신 ICF Warsaw Church 성도님들, 그리고 각 여행 때마다 본인을 친절하게 대해 주신 현지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어떨 때는 아기처럼 칠칠치 못한 저와 같은 기숙사를 공유하면서 불만 한 마디 안 꺼낸 기숙사 동기 분들께 수고했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들께는.....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휴재 없이 열심히 연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학생 분들과 유럽, 특히 폴란드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우당탕탕 폴란드 교환학생 기행글' 시리즈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7월 초까지 부득이하게 휴재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