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속 칼럼>

-격차보다는 나의 길을 바라보기-

by avivaya

“그럼에도 우리가 탈희소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불평등 때문이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불평등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채우지 못한다. … … 물질적 풍요가 탈희소성 사회로 이어지려면 삶의 경로가 다양해지거나 불평등이 완화되어야 한다. 이도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해결해주지 않는다.” (한겨레 2026-1/19-27면 ‘세상 읽기’ 최영준)

진부한 문제이지만 반드시 어필해야 할 주제가 있다. <불평등>과 <빈부 격차> 이야기. 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집요하게 붙어 다닌다. 아무리 둘의 만남을 저지하고 일갈한다 해도 결코 헤어질 수 없다. 그런 우리의 경계심이 오히려 그들의 은밀한 만남을 조장하고 또 다른 문젯거리들을 등장시킨다. 나 또한 그 둘에게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다. 그로 인해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과거에 살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벗어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커플에게 눈 뜨고 코 베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들의 만행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특히 나의 무지와 무감각에 기생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조건들을 샅샅이 찾아내서 부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적당한 타협안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권모술수일 뿐이고 결국 그들 이익에 부합하는 환경에 일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기 위해 또한 나를 지켜내기 위해 학습하고 배워야 한다. 그것은 나에게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술수와 유혹의 화살을 막아내고 조롱과 혐오의 포로에서 풀려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비록 한참 뒤떨어져서 달려가고 있는 것 같겠지만 나에게는 격차를 좁히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따라잡을 수 없을 테니까. 그들 뒤를 낙오자처럼 따르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 2026년 가벼운 삶으로 매일 새 문을 열어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칼럼 속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