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투자는 PF의 사각지대다

정부는 돈의 물길을 트고 금융은 넷제로 투자의 구조화역량을 높여야 한다.

by 유상희

서울 여의도의 한 회의실. 수소 연료전지 발전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기업 대표가 은행 담당자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업 계획서에는 정부가 보장한 전력구매계약(PPA), 연료전지 설비 도입 계획, 그리고 향후 수익 전망까지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행 담당자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REC(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가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계통 출력제한이 걸리면 수익이 줄 수 있습니다. PF로는 힘들겠네요.”


넷제로 투자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넷제로 투자’는 단순히 친환경 이미지를 위한 투자가 아닙니다.

2050년 탄소중립(Net Zero)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산업·교통·금융 전반의 구조를 바꾸는 데 필요한 모든 자금 투입을 뜻합니다.


크게 세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 태양광, 풍력, 수소, 저장장치(ESS), 스마트그리드 등 전력 인프라.

산업 전환: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저탄소 철강·시멘트, 전기차·배터리.

금융·시장 전환: 녹색채권, RE100 PPA, 탄소배출권, 정책 지원 제도.


즉, 넷제로 투자는 탄소를 줄이는 기술과 구조를 키우는 모든 투자 활동을 포괄합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매년 4조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정할 정도로, 그 규모도 막대합니다.


한국 현실: PF의 사각지대


2023년, 한국에서 처음 열린 일반수소 발전시장에서 24개 사업자가 선정됐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PF(Project Financing)로 금융을 조달해 실제 착공까지 이어간 곳은 단 한 곳뿐이었습니다. 나머지 23곳은 금융 대주단을 설득하지 못한 채 멈췄습니다. 기술은 가능했지만, 돈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울산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탄소포집·저장(CCUS) 프로젝트가 논의 중입니다. 발전소와 공장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모아 동해 해저 지층에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2030년까지 연간 1,000만 톤 이상을 감축한다는 청사진도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벽은 입니다. CCUS는 초기 설비 투자만 수조 원이 드는데,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습니다. 미국처럼 포집한 CO₂를 석유 회수(EOR)에 활용하는 시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탄소 가격은 낮아 경제성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결국 은행들은 PF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PF가 주저하는 진짜 이유


이 장면들은 같은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넷제로 투자가 PF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기술 자체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한국 금융기관의 분석 역량 부족: 화석·부동산 PF에는 익숙하지만, 수소·풍력·CCUS 같은 신사업은 내부적으로 평가 역량이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최종 수익흐름(캐시플로우)을 보장할 제도·시장 장치가 미흡합니다. 전기가격, REC, 탄소배출권, 보조서비스 시장 모두 안정성이 약합니다.


은행이 진짜로 묻는 건 “위험이 없냐”가 아니라, “위험이 있어도 꾸준히 돈은 들어오냐”입니다. 지금은 그 강줄기가 약하니 PF가 멈추는 것입니다.


금융은 리스크를 구조화하는 기술이다


금융의 본질은 리스크를 피하는 게 아니라, 리스크를 가격화해 투자로 바꾸는 것입니다. 국채 금리엔 국가부도 확률이, 회사채 스프레드엔 기업 부도 위험이, PF 구조엔 프로젝트 실패 리스크가 녹아 있습니다. 담보, 보증, 보험, 선·후순위 트랜치, 리스크 프리미엄이 그 역할을 합니다.


즉, 금융은 본래 불확실성을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구조화하는 기술입니다. 문제는 한국의 넷제로 프로젝트에는 이 구조화 장치가 얇다는 점입니다. 탄소가격은 불안정하고, 출력제한 보상은 희박하며, 장기 PPA는 미성숙합니다. 결국 수익 흐름을 보장할 제도적 기반이 약하니, 투자자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법: ‘수익의 강줄기’를 굵게 만들어라


PF가 원하는 건 위험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위험이 있어도 돈이 꾸준히 흐른다는 약속입니다.

전력수익 안정화: 장기 PPA, 출력제한 보상, CfD(차액계약).

탄소수익 보장: CCfD(탄소 차액계약)으로 톤당 바닥가격 설정.

보조시장 확대: ESS·수소발전이 용량요금·주파수조정 등으로 수익을 적층(Revenue Stacking).

금융 구조화: 정책금융이 후순위(퍼스트 로스)를 맡아 리스크 흡수, 민간은 선순위로 안정적 수익 확보. 보증·보험으로 정책·규제 리스크 프리미엄화.

금융 역량 강화: 은행 내부에 넷제로 PF 심사팀 신설, 표준계약·데이터룸 구축으로 리스크를 ‘보이는 숫자’로 만드는 것.


결론: 넷제로 PF는 금융의 상상력을 시험한다


넷제로 투자가 PF의 사각지대에 머무르는 건 기술 때문만이 아니다. 수익의 흐름을 시장·계약·정책으로 구조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은 본래 리스크를 피하지 않고, 그것을 쪼개고 가격을 붙여 투자로 만드는 기술이다. 지금 필요한 건 그 금융의 본질을 넷제로 투자에 적용하는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다.


그리고 정부는 정책적으로 그 물길을 풍성하게 만들고 또 잘 흐르도록 길을 터주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러한 돈의 수로가 만들어 지면 자연스럽게 문제는 해결된다. 시장이 작동하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국의 넷제로 전환도 진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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