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방학이 끝나고 신학기가 시작하는 9월 프랑스 중고등학교가 시끄러웠다. 학교 측이 정문에서 아바야를 입은 학생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여학생들은 그깟 원피스 때문에 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다니 너무 웃긴다고 항의했다. 일반 여론이 시끄러워지고 TV와 라디오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은 금지를 풀어 주지 않았다.
아바야는 사우디를 비롯한 이슬람 지역에서 여성들이 입는 원피스다. 루즈 핏으로 얼굴 손 발을 빼고 온몸을 가리는 일상복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다른 이슬람 지역에서도 여성들이 비슷한 옷을 입는다. 머리에만 두르는 히잡이 있고 원피스 ‘아바야‘가 있다. 그 둘을 합하면 ‘차도르’가 된다. 얼굴까지 완전히 가리는 ’ 니캅‘과 ‘부르카’도 있다. 니캅은 주로 까만색으로 눈 부분만 가로로 좁게 열어놓고 온몸을 감싸는 것이고, 부르카는 같은 콘셉트이지만 눈 부분을 망으로 가렸다는 차이가 있다. 부르카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소개하는 사진에 흔히 등장하는 여성의 옷이다.
이슬람 세계 여성들은 몸매를 다듬을 필요가 별로 없다. 아름답게 다듬어도 공개 장소에서 과시할 기회가 없다. 이슬람국가인 알제리에서 온 방문단을 만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알제리 남성들은 우리 젊은 여성들의 노출 상황에 대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며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유럽의 거리나 공항 같은 곳에서 큰 눈에 윤곽이 뚜렷한 얼굴을 내놓고 까만 천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는 아랍 여성을 마주치면 무언가 경건하고 엄숙하다. 나름 카리스마를 풍기며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잠깐뿐이다. 얼마나 더울까? 그 땀을 어떻게 하지?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슬람 지역은 주로 건조한 지역이라 우리보다 땀을 훨씬 덜 흘리고 금방 마른다. 서구식으로 빰을 서로 대고 인사를 해보면 뽀송뽀송 할 때가 많다. 일하다 온 부인들은 약간 축축하지만. 그래도 갑갑하고 불편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입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니캅과 부르카는 2010년부터 유럽 여러 나라에서 금지되어 있다. 테러 방지를 이유로 복면, 헬멧 등과 함께 공공장소에서 금지한다. 입고 다니다 적발되면 벌금형을 받는다. 프랑스에서는 벌금이 150유로, 24만 원이다. 사실은 전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허용되는 히잡도 프랑스에서 금지되어 있다. 2004년 히잡 금지 법안이 의회 표결을 통과했다. 국민의 63%가 찬성했다. 벌써 20년이 되었다. 아니 스카프를 금지했다고?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에서? 흥분할 필요는 없다. 팩트 체크를 해야 한다.
공립 초중고 교내에서만 안 된다. 학교 밖을 나오면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리고 히잡만 콕 집어서 못 쓰게 하는 것이 아니다. 놀랍지만 기독교 십자가, 유대인의 빵모자 키파, 시크교도의 터번 등도 똑같이 금지되어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종교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표지나 옷차림”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국가에서 십자가를 목걸이에 달지 못하게 하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 이러한 조처는 프랑스 역사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자유, 평등, 박애와 더불어 4번째 국가 이념인 ‘라이시테-비종교성’이 금지의 배경이다.
‘라이시테’는 ‘세속성’ 혹은 ‘비종교성’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시민사회와 종교를 분리하는 원칙으로 국가와 종교가 상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둘은 당연히 서로 다른 것이 아닌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종교와 정치는 하나였다. 왕권 즉 정치권력이 신으로부터 오는 것이었으므로 둘은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법, 교육을 비롯해서 사회 전체가 가톨릭의 컨트롤 아래 있었다.
프랑스에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는 이념적으로 1789년 대혁명 때 시작되었지만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다.
종교와 정치를 떼어놓은 것은 대단히 복잡한 일이었다. 교회가 관리했던 모든 일을 정부가 가져와야 했다. 법정에서 십자가를 치우고 법을 하나하나 만들어야 했다. 교회가 독점하고 있던 교육을 국가가 담당해야 했다. 공화국 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무상 의무 교육을 신부와 수녀가 아니라 새로 임명된 교사들이 하게 되었다.
1905년 제정되어 종교와 정치를 결정적으로 분리하는 법의 골자는 4개 사항이었다.
첫째 국가의 공식 종교는 없다.
둘째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에 따라 원하는 신앙과 신념을 가질 수 있다.
셋째 모든 시민은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넷째 앞의 사항들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어떤 압력도 행사하지 않으며 중립을 지킨다.
‘양심의 자유’는 사실 양심과는 별로 상관없이 자기가 원하는 신앙과 신념을 가질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 대신에 자신의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항은 국가가 중립을 지킨다는 것인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교사, 판사, 경찰 등 공무원이 공적 공간에서 자신의 종교를 표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반인에게 압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사가 신부복을 입을 수 없으며 경찰이 키파를 쓸 수 없다. 공무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일반 국민이나 외국인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1989년 고등학교 여학생 3명이 히잡을 쓰고 등교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이 계속되었다. 2004년에 공립 중고교 교정에 한해서 히잡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교정은 공적 공간이며 히잡은 종교의 표지라고 보기 때문이었다. 같은 법에 의거해 ‘아바야’도 금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아바야가 “종교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표지나 옷차림”인가? 사실 히잡에 대해서도 똑같이 물을 수 있다. 의견이 갈린다. 단순히 패션 아이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 종교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종교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양쪽 모두 이러저러한 옷을 예로 들며 논쟁을 벌인다. ‘프랑스이슬람협회’가 주장하듯 종교와 무관한 옷일 수도 있다.
프랑스 국민의 10%이고, 그들 중 57% 공화국 법보다 샤리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통계가 있다. 프랑스인들이 과민하게 반응한다고 비난만 할 수는 없어 보인다.
결국 프랑스 교육부는 공립학교에서 아바야뿐 아니라 무슬림 남자들이 입는 원피스 카미스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행정법원도 합법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현재까지 계속 적용하고 있다.
히잡을 쓴 젊은 외국인이 한국인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동영상을 제작해 공개했다. 한국인들이 머리에 쓴 히잡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실제 히잡을 별로 경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적 관용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아마도 우리 문화가 유일신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비종교적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