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오후가 머물고 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 창틀 위에
누군가의 시선처럼
조용히 내려앉은 빛
당신이 떠난 뒤에도
그 창문은 여전히 바깥을 보고 있다
나도 한동안 그 곁에 서 있었다
말없이 머물렀던 날들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한 감정처럼
바람이 스쳤고
햇빛은 유리 위를 흘렀다
나는 창문을 통해
당신이 떠났던 방향을 다시 보았고
그곳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게 더 아팠다
커튼은 가끔 혼자 움직였다
누군가 지나간 듯 흔들리기도 하고
누구도 오지 않는 현관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창문만이 매일 같은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창가에 오래 머물며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말은 점점 투명해지고
투명해진 마음은
창에 닿을수록 바깥 풍경에 섞여버렸다
어느 날엔
햇살이 벽에 길게 걸렸다
그건 창문이 만든 오후의 그림자였다
나는 그 그림자 옆에 앉아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이
당신과 함께했던 어떤 오후보다
더 조용하고
더 오래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함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창문처럼 투명해지고
빛처럼 아무 데도 닿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무는 마음이 되었다
밖은 저녁으로 가고
방 안엔 아직 오후가 남아 있었다
나는 말 대신 그 빛을 개켜 넣고
다시 창가에 앉았다
오늘도
마음이 나가지 않은 채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