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은 물결

by 아이언캐슬

작은 물결이 일었다 아무도 없는 호숫가
그 떨림은 마음의 가장 얇은 껍질을 스치며
잠든 시간을 흔들어 깨운다
흐른 적 없는 기억이 물 위에 겹겹이 떠오르고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함께 흔들렸다

네가 웃던 날의 물빛
떨리던 어깨, 스쳐간 공기
닿지 못한 숨결까지
물결 속에서 고요히 피어올랐다
한순간, 호수는 기억의 망막이 되고
나는 그 안에 스스로를 투영했다

물결은 바람도 손도 없이 퍼져
내 안의 시간들을 뒤엎는다
파문마다
너의 목소리, 웃음, 조용한 발걸음이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닿지 않는 손, 젖지 않은 옷자락
멀어진 거리 너머에서도
너는 여전히 내 쪽으로 흘러왔다

나는 물속에 손을 넣었다
기억의 온기를 느끼며 차갑고도 투명하게
나를 감싸는 너를 맞이했다
물결은 현실과 꿈의 경계 위를 부유하며
시간을 흩뜨리고, 공간을 접어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안겼다

지금도 작은 물결 하나가
내 안에서 너의 이름을 부르고
내 호흡과 함께
천천히, 은밀하게 다시 호수를 뒤흔든다
그 잔물결 속에서 함께 녹아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