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보는 유령

사검(査檢) - 기억의 찌꺼기를 살피는 자

by 김빗


1. 프롤로그


사검(査檢) - 기억의 찌꺼기를 살피는 자



[Once upon a time]


그 옛날 호모속의 시간이 도래하자, 사피엔스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호모속을 살해했다.


모든 친척이 사라지고 홀로 지상에 남게 된 사피엔스는 지하로의 소멸을 자연이 아닌 공포로 해석했다. 이 거대한 절멸 공포는 부활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냈다.


사피엔스의 뇌에서 촉발한 인지 혁명은 직관적 의사소통 행위를 필요로 했고, 급기야 언어라는 신을 창조해 냈다. 이 신은 형제 살해의 원흉이라는 원형적 무의식을 사하기 위해, 시신 매장이라는 신앙을 퍼뜨렸다.


뼈에서 생명이 피어난다는 사체 재생 믿음과 특정 유물을 함께 묻어 사후 삶을 대비하겠다는 믿음은, 상반된 두 세계에서의 부활 가능성을 동시에 상정한 신앙 행위였다.


언어를 통해 퍼져나간 매장 신앙은 전 지구적으로 쉼 없이 반복되었다. 지난한 세월 동안 무수하게 반복된 매장 행위는 사검과 망인이라는 존재를 탄생시켰다. 끊임없는 반복은, 가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After a long time]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 남은 이들 걱정에 죽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존재. 그들은 안식처에서조차도 영면에 들지 못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눈을 감아도 다시 눈이 뜨인다. 축축한 흙은 남겨진 이의 소리를 눅진한 공기에 실어 흩뿌린다. 끈끈한 생의 기억은 두텁게 쌓인 흙더미를 걷어차게 만든다. 이쯤 되면 어쩔 수 없다. 보러 가야 한다.


볼 수 있다면, 볼 수만 있다면 결국 보러 가게 된다. 잠들지 못하고 눈을 뜨게 된다.



*



이곳에서 그는 사검(査檢)이라 불린다. 찌꺼기 사(査), 검사할 검(檢). 잠들지 못하는 망인의 기억 찌꺼기를 살펴보는 존재다. 사검은 방황하는 망인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준다. 망인은 그 기회를 통해 기억의 찌꺼기를 벗겨내고 영면에 들어야 한다.


사검은 해결책을 제공하지 않는다. 보여줄 뿐이다. 모든 판단은 망인에게 맡긴다. 망인 스스로 찌꺼기를 씻어내지 못하면, 영원한 기억의 굴레에서 한탄하게 될 것이다.


사검은 망인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망인은 사검을 볼 수 없다. 앞에 있어도 볼 수 없다. 있다고 믿기에 말을 걸 뿐이다. 규칙이다.


한 망인이 말을 건다.


"이보오, 나 가게 해주오."


망인의 목소리가 사검에게 닿는다.


"꿈이 오지 않던가요?"

"꿈은 진즉에 왔지. 잠이 오지 않을 뿐."

"감질날 텐데요."

"들었지. 여러 번 볼 수 있지만, 짧게만 볼 수 있다고."

"오래 볼 수 없는 건, 마주해선 안 되는 존재라서 그래요."

"그래도."


망인의 감정은 절제되어 있다. 목소리에서도 매우 옅은 감정만 묻어난다. 이에 사검도 무감하게 대꾸한다.


"보고 나면 잠들 수 있겠어요?"

"그야 모르지."


감정 없는 망인의 말은 공허하게 흩어진다. 사검은 흩날리는 공허를 붙잡아 돌려준다.


"단 한 사람. 딱 한 번만 보러 갈 수 있습니다. 말한 대로, 짧은 순간을 수차례 나누어서 봅니다."


망인은 침묵한다. 잠깐의 침묵은 사고가 다른 언어를 만들어낸다.


"고양이도 된다지?"

"반려동물이었다면 볼 수 있습니다. 망인이 생전에 관계 맺었던 사람이 고양이와 함께 있으면 그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만 보입니다."

"고양이가 내 자식들 곁에 있으면 고양이만 보인단 말이지?"


사검은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망인이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규칙을 잠시 잊은 것이다. 그는 곧바로 실수를 깨닫는다. 만회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네. 단, 관계 맺지 않았던 사람은 망인에게도 보입니다."


이번에는 망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임은 결론을 끌어낸다. 표정은 없다. 표정은 살아있는 자들의 특권이다. 망인은 입술만 살짝 움직여 말한다.


"잘 알았소. 보내주오."


사검이 묻는다.


"볼 수 있는 건, 한 존재뿐입니다. 정말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겠습니까?"

"사람 필요 없소. 우리 밤순이 보는 걸로 족하오."


사검은 어둠을 주시하는 망인을 본다. 왜소한 여자 노인 형체의 망인은 등이 많이 굽어있다.



사검이 아직 알리지 않은 규칙이 있다. 망인이 보는 모든 걸 사검도 본다는 것. 남겨진 이를 보고 온 망인은 이 규칙을 눈치챌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검은 미리 알리지 않는다. 망인 혼자 보고 있다고 믿게 하고 싶어서다.


알리지 않은 규칙은 하나 더 있다. 망인이 살아있는 이를 볼 때는 표정이 생긴다는 것. 안 알리는 이유는 앞서와 같다. 사검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알면, 망인은 감정을 통제하거나 꾸며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검은 망인의 진실한 표정을 보고, 찌꺼기의 본질을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사검에게 부여된 임무인지, 개인적 호기심인지는 알 수 없다. 선대 사검들과 이제는 영면에 든 망인들도 이 같은 일을 반복해 왔다.



사검은 망인의 굽은 등을 보다가 그녀가 내린 결론에 화답한다.



"해가 뜨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정이 되면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보고 싶은 모습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초반에 보이는 짧은 장면 중, 망인의 반응성이 높은 장면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습니다. 이후 유사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망인이 원하면 자정이 되기 전에 보는 걸 그만둘 수 있습니다."


망인은 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사검은 망인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말을 반복한다.


"단 한 번입니다. 두 번은 없습니다. 결과에 따르는 모든 책임은 망인이 짊어져야 합니다."


망인은 다시 침묵한다. 먼젓번 침묵보다 확연히 길다. 하지만 침묵은 끝나기 마련이다.


"보내주오."


사검은 더는 말 붙이지 않고 망인 곁에 가 선다. 사검의 손이 망인의 마른 손을 붙잡는다.





<덧붙임 말>


안녕하세요. 김빗입니다.


소설 '목소리, 향기, 그림자'를 연재하다가 완결 내지 못한 채 중단했습니다. 다행히 브런치북 한 권은 완성했습니다.


출간 프로젝트에 떨어진 후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 소설이 너무 길기도 하고 대중성이 약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고민 끝에, 1화부터 읽어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장편보다는 한 챕터를 하나의 이야기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연작소설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준비 시간이 짧아 촘촘한 설정이나 구성의 완성도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기에 연재하면서 다듬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연재 요일은 모든 날로 설정했습니다. 지난 연재 경험상, 요일을 정확하게 지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번 소설도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써야 하기에 주 2회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새로운 브런치 북인 <무의미의 숙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연재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에게는 소설이 우선이기에 이 시리즈를 매주 연재한다는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1~2주에 한 번은 연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툭 치면 술술 나오는 지식인이 아니어서 글 쓸 때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무의미의 숙제> 같은 경우, 휘리릭 써서 연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런치에 너무 오래 글을 안 썼더니 불안감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글이나 쓸 수는 없었기에 새 소설 연재가 늦어졌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모든 작가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올해 좋은 글 많이 많이 쓰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모든 구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 하시는 일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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