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비판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었던 이유

자기비판이라는 생존 방식을 버리기로 했다..

by 제이

‘용의 꼬리가 될래?‘, ’ 뱀의 머리가 될래?‘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을 찾고 보완해 가며 사다리를 오르려고 노력하는 것.

나보다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도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만족하는 것.


‘이 정도면 되겠지?‘

내가 무언가에 만족할 때면 엄마는 내게 말했다.

‘너보다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포기하게?’ 사람이 위를 보고 노력하며 살아야지.

‘너는 왜 항상 하다 마냐, 또 그만하게?‘ 당연히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를 선택할 줄 알았던 아빠도 나의 욕심 없는 성격에 승부욕을 지펴주려 노력했다.


어릴 때 나는 예민하지 않고, 순하고, 소리 한 번 잘 지르지 않는 아기였다고 한다. 혼자 잘 자고 젖병 물려주면 혼자 먹다가 또 잘 자는. 밤낮이 바뀌어 엄마아빠 고생시키긴 했어도 태생이 예민한 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뭐든 잘 시도하고 또 잘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우유부단하고, 금방 포기하는 승부욕 같은 건 없는 그런 사람.


그런데 웬걸, 30대가 된 나는 너무 예민하고, 편두통에 불안을 달고 사는 어른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승부욕을 지펴주고, 욕심을 불어넣어 주려고 한 부모님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디 부족한 건 없는지 찾아내고 또 찾아내서 나를 증명하려 드는 자기비판의 전문가가 되었다.


자기비판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때도 있었다. 실제로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포기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고, 지금 내가 이룬 것들도 어쩌면 다 자기비판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양분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서서히 스며드는 소량의 독이었을까. 문제는 코로나 때 터졌다. 불안과 우울이 마침내 나를 잡아먹고 암막 커튼으로 빛이란 빛은 다 가린 채 침대에 누워 우는,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 둥둥 떠다니며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땅에 발이 닿는 느낌이 들지 않는 우주 속 미아가 되어버렸다.


나는 나이도 많고,

나는 곧 졸업도 하고,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고,

나는 뭐 하나 특별하지 않고,

무엇보다 나는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싫었다. 자기비판에 너무 익숙해진 건지, 내 친구들은 대체 왜 나 같은 애랑 친구를 하는지 모르겠고, 어느 회사가 나를 채용이나 해줄지도 모르겠고, 자기비판은 어느새 자기혐오로 자라났다. 자기비판을 성장의 전제 조건처럼 배워온 탓일까?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순간,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끼면서 나를 다그쳐온 것일까? 자기비판은 그저 개인의 성격으로만 치부하기엔 더 복잡한 것이었다.


사람에게는 타고난 기질이 있다고 한다. 환경에 따라, 삶의 경험에 따라, 작아지기도 커지기도 해서 눈에 띄게 커질 때도 있고 보이지 않게 숨을 때도 있지만, 결국은 변하지 않는 그런 기질을 말한다. 나도 심리 상담을 받으며 기질 검사를 한 적이 있다. ‘자극 추구 기질‘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새로운 일이나, 경험, 혹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자극을 추구하고 성취감과 즐거움을 얻는 것들을 말하는데, 나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자극 추구가 굉장히 낮다고 했다. 특히 유학을 다녀오고, 나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내 기질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추구해 왔던 나의 삶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보면,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을지 보인다고 하셨다. 승부욕이 낮고, 조용히 혼자 잠들던 아기는 그런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주목받는 것이 무섭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려 집에 가기도 전에 차에서 기절하는 내향형 인간인데, 그런 나를 고치기 위해 보드게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지금이야 보드게임 카페라고 하면 하고 싶은 게임을 가져가면 테이블마다 놓인 태블릿이 게임 설명을 해주지만, 내가 20살이었던 2010년대에는 그런 게 없었다. 게임 룰을 모두 아르바이트생이 외우고 2명이든 10명이든 테이블 앞에 서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게 능력인 그런 일을 해야 했다. 상담 중에 이런 일화를 이야기하니까, 상담사 선생님이 놀라셨다. ‘왜 그런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치고 싶었어요.‘ 마치 문제가 있어서 고쳐야 하는 것처럼 나를 설명했다. ’그래서 결과가 어땠어요?’ 결과가 어땠냐면, 나는 사실 스스로 굉장히 잘했다고 자부한다. 심지어 같이 게임해 주면 안 되냐는 손님들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있었을 정도니까. 10명이 넘는 단체 손님들이 다 내 설명을 들으려고 나를 쳐다보고 있을 때도 나는 더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손님들을 빵빵 터지게 하고 싶은 욕심마저 생겼다. 상담 중에 선생님은 대부분의 나와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과는 굉장히 다른 삶의 태도라고 이야기하셨다. 아마 부모님의 교육의 영향이 아니겠냐는 말도 덪붙이셨다. 그러니 부모님을 원망하며 나를 왜 이렇게 키웠냐고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것도 너무 잘 알아서일까? 그래서인지, 너무 자연스럽게 내면화해 버린 자기비판이라는 생존방식은 나를 점점 조여왔다.


20대를 사방으로 흔들리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만 우주 유영을 멈추고 땅에 발을 딛고 싶은 30대가 되었다. 더 이상 자기비판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이제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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