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ow김정숙 Jun 07. 2024

무명이어도 공허하지 않는 것은

집사님이 남겨준 믿음의 유산

무명이어도 공허하지 않고 

그 마음에 풍요함이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 교회 두 자매의 아버지인 80세 집사님이 6월 3일에 소천하셨다.

그분은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에 말씀이 없으셨고 조용하셨고 없는듯 계신 분이셨다. 그리고 얼굴엔 항상 미소가 가득했다.

그분과 인사를 할 때는 나도 함박 미소를 지어야 했다.

말없이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예배당에서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으셨다.

한주도 결석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는데 그분의 두 줄 뒤에 앉았다.

그래서 집사님의 뒷모습을 보았고 말씀을 들을 때나 찬양을 할 때도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겸손과 정성이 느껴졌다.

그 분의 자랑은 딸이 찬양 인도자로 앞에 서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분은 악보를 들고 진심으로 한절 한절을 찬양했다.

딸은 늘 온 힘과 마음을 담아 열정과 감동을 주는 찬양을 인도했다.

나는 그 딸을 매주 바라보고 있는 그 분의 모습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8년 전에 우리 교회에 오셨을 때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꽤 오랫동안 폐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결국엔 돌아가신 원인도 폐질환 때문이었다.

자유롭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았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오랜 힘든 투병 생활을 하셨다.

    

3주 전 예배에 참석하셨다. 그 모습이 내게는 선명하다.

얼굴이 창백해 보여서 자녀에게 물어보니 요즘 건강이 악화되어 힘들어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2주 정도의 병원 치료를 받는 중 하늘나라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든 몸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의사도 손을 쓸 수 없다고 전했다.   

마음이 아팠다. 눈물이 났다.

   

나는 돌아가시기 전 만나 뵙고 싶었다.

항상 웃고 계시던 아버지 같은 그분의 손을 잡아보고 싶었다.

병문안을 갔다. 그분은 앉아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밝고 환한 얼굴은 환자라기보다 천사의 얼굴이었다.

하늘나라 갈 준비를 하고 계시며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정리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분의 얼굴은 창백했고 평소보다 통통해진 몸을 볼 수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간병 중이던 딸이 말했다.

아버지는 현재 평안하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제 나는 하늘나라로 갈 준비가 되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슬프고 아쉬운 시간이지만 주님이 주신 평안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그저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기도를 한 후 아쉬운 마음으로 병실은 나왔다.

문밖으로 나오기 전 너무 아쉬워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분과 눈이 마주쳤다. 온화한 미소로 웃으며 손을 활짝 펴서 흔들고 계셨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다.

우리의 방문을 좋아하셨다고 하니 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3일이 지난 후 소천하셨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예상된 소식이었지만 너무 일찍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분의 영정 앞에는 그분이 쓴 성경 필사 공책이 놓여 있었다.

수년 전 성경 필사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성경 전체를 두 번 필사하셨고 세 번째 필사 중이었다고 했다.  

못다쓴 부분은 자녀들이 이어쓰겠다고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필체로 씌어진 것을 보고 그 분의 변함없는 성품이 보여서 고개가 여졌다.


화장하기 전 찬양인도자 딸은 아버지께 천국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한 후 '충만-난 예수로 충만하네~~'찬양을 했다.

여기저기 훌적이는 소리가 만들어낸 비지엠이 충만해졌다.

무명이었지만 그 분은 공허하지 않았다.

고향 선산 경치 좋은 곳, 바다를 바라보며 안치되는 곳까지 함께 했다.

그곳은 몸과 마음의 안식처로 보였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그분에 대한 마지막 모습이 되어 버렸다.

장례절차 내내 그 모습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감싸는 듯 했다.      

하나님 품에서 평안한 쉼을 누리시는 그분의 사후의 모습을 그리며 나도 평안해졌다.

한 동안 주일마다 경건한 모습으로 앉아계시던 그분의 빈자리가 허전할 것 같다.  

                                            매일매일 묵상하시는 삶의 모습

   

그분의 딸이 아버지를 보낸 후 유품 정리하며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그분은 몇 년간 매일 말씀 묵상을 하셨다고 한다.

짧게 묵상 소감을 기도하듯 기록한 것을 보았다.

내 마음에 큰 감동이 일었다.

멋진 분이셨는데 생전에 뒷모습만 보았다는 아쉬움과 후회스런 마음이 일었다.

자녀들에게 가장 귀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셨고

교회에도 믿음의 좋은 표본이 되어주신 겸손하신 그분을 그리워하며 추모의 글을 적는다.

무명이어도 누군가에게는 큰 울림이 된 집사님의 삶은  공허하지 않았다고, 그의  특별한 의미였다고 전하며 하늘나라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과 인생 동반 그리고 기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