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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Sep 18. 2022

침묵이 만들어낸 아이

- 지독했던 '침묵독' -


같은 색을 보더라도 실제로 각자 눈에 보이는 색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그처럼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해도 내 시선에서 바라본 일은 누군가와 다를 수 있고, 시간이 지나  마음에 기억고 남겨이야기의 내용 또한 다를 있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이자 부모님의 젊은 시절'

부모님 기억 속 나와 함께했던 그들의 젊은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겨져있을까? 같은 시간을 겪어낸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기억 이 다른가.




나의 기억 속 나의 어린 시절이자 부모님의 젊은 시절은 '침묵', 그 자체였다. 평화로운 고요 속 안정감을 듬뿍 담은 침묵이 아니라, 무언가 터져버리기 직전 최고조의 불안과 긴장감을 듬뿍 담은 '침묵'.


나는 그 에서 자라났다. 

떠올리면 그때의 묵직하고 습한 우울의 공기가 단번에 콧속으로 들어온다.



집안형편이 아지고 난 뒤 살게 된 17평의 아파트. 5명의 가족. 부모님, 할머니, 여동생, 나. 방은 2개.


할머니와 나, 여동생이 작은 방 하나에 함께 생활했다. 작은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은 공간이었지만, 붙어있는 거리와 비례할법한 따스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요 속 아들을 낳지 못했던 일로 시작된 할머니와 엄마의 지독한 침묵 전쟁, 중재안이 없는 상황 속 아빠에게 쏟아지는 날카롭고 불편한 시선 다섯 식구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치열한 근로자의 삶, 타고난 소심함으로 눈치 보는 일에 익숙한 나와 동생.


지금껏 가장 넓은 집이었음에도 여전히 마한 그. 이곳에서 각자의 공간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불가능했고, 오히려 자의 감정들 훤히  수 있었다.


 작은 공간 속갇혀 편히 어떤 것을 함께 나눌 수도, 서로에게 자유로울 수도 없었으니, 서로의 감시자 같은 느낌으로 각자의 침묵을 지키며 살아온 듯싶다.


제약된 공간 속에 서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우리 가족이 택했던 삶의 방식은 '침묵'이었고, 이것은 어쩌면 그 당시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고독하고도 뿌연 담배연기 같은 나날들.

그것은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시는 할머니의 날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 그랬으며, 내게 남겨진 어린 시절의 기억 전부가 그랬다.


좁은 방 안에서 하루에 한 갑, 아껴 피우느라 한 개비의 담배를 꺼내 한 입을 빨고 투명한 재떨이 위고이 올려두었다가 잠시 후 다시 들고 피우기를 반복, 잠들 시간에 맞춰 한 갑이  맞게 동이 도록, 아주 천천히. 


그러니 하루 종일 자는 시간 외에 방안에 담뱃불이 꺼지는 시간은 없었다. 할머니의 유일한 친구였던 그 담배 덕분에 방안은 늘 뿌옇고 매캐했다. 


즘의 시대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아이방의 모습, 그것이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서울로 빠져나오기 전 고등학교 시절까지 방의 모습이었다. 아니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다.



고요꿀꺽 삼켜버린 것 같은 긴장감, 것을 숨기려 하루 종일 애쓰뿌연 연기들과 매캐한 공기의 답답함,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 한 기억이다.




이렇게 되짚어보면 지금의 '나'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말이 잘 내어지지 않고, 사람과 있을 때 가장 불편하고,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몸이 떨리며, 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의미도 재미도 없어 보이는 이 이라는 것을 이어나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나를 이렇게라도 마주하여 이해 고 싶다. 


이해를 하고 나면 원망의 필요도 사라진다. 

고성과 욕설, 분노의 감정만이 전달되던 나의 직장에서  유난히도, 지독히도 고통스러웠다. 긴 시간 침묵 속에 살아온 나는 를 내는 방법도, 들다는 말을 내는 방법도 알지 못했고, 그저 침묵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것조차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내가 한심하고 참 싫었고, 온전히 모두 버려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에겐 도, 장도, 세상도 점점 더 견디기 힘든 공간이 되어버렸다. 숨 쉬고 있는 공간이 모두 싫고 어려워, 결국엔 나에게 호흡곤란이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 침묵이 키워낸 나를 이해해 주었다면 스스로를 지독히 미워할 필요도, 상을 원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내겐 침묵으로 버틸 수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적응기간이 없이도 잘 해내는 이들이 많지만, 난 그렇게 영민한 사람이질 못했다. 불안감을 가득 안고 시작한 세상은 차갑고, 정신을 잃고 싶을 만큼 아팠다.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적응하며 천천히 일어서고 있는 중이다. 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단단하게 평생을 쌓아 올렸던 벽을 하나씩 허물어가고 있다. 천천히 말을 내어보려 연습하기도 하고 시끄러운 소리들 가운데 부러 서있기도 한다. 침묵이 아닌 사람과, 또 그들의 소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올곧이 나로 서있는 연습을 이제야 해보는 중이다. 


어른이라서 단번에 되는 것은 하나도 없더라. 속으로는 이해하려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다 이겨내고 성장한 척, 여유로운 척 그렇게 살아왔던 듯싶다.



지금까지 평생을 침묵의 공간 속에 홀로 살아왔으니 이제부터는 그와 정반대로 살아보고 싶다.

그 세계는 어떤지.


조용하고 뿌옇고 매캐했던 내 방에서 나와 왁자지껄 모든 것을 꺼낸 듯 시끄러운 세계로 나와버렸으니,  그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열심히 이 세계에서 살아볼 테다.


삶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침묵에서 더욱더 침묵으로 수렴하던 누군가의 삶처럼 살고 싶지 않다. 살아낼수록 덩실덩실 이 절로 나는 삶으로 살아보련다.


'침묵이 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 삶에 '침묵은 독'이었다.

이제야 그 독을 '톡' 뱉어내었다.


그러니 이제 정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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