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과호흡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울증을 앓고 있어도
금방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다들 그러는 거니까.
다들 힘든 거니까.
그냥 이겨내고 견뎌내야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을 마시다가
사건이 일어났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스트레스 때문에
만났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술을 같이 먹던 친구 중 한 명에게
계단에 끌려가 성추행을 당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위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바보같이 그것도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온 거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진 모르겠지만
나의 애정결핍이 만들어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내 친구와 사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배신감과 나의 어리석음, 각종 생각들이 머리를 감싸 안았다.
바보 같았다.
그리곤
매일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일하다가 전화가 오고
나는 전화를 받으러 가고
전화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나는 안중에 없는 그 친구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풀이 속에서
나는 계속 헤엄치고 헤엄쳤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지만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곤 계속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어떤 생각을 할 수도 없고
손이 너무 떨려왔다.
공포감이 밀려왔고
몸이 화끈거릴 정도로 뜨거워졌었다.
과호흡도 여러 번 왔었다.
회사 옥상에 올라가 혼자 울면서
과호흡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었다.
회사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모습이었다.
성추행 당했다는 증거라도 잡으려고 만난 그 아이와의 대면에서
몸에서 심장이 빨리 뛰고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고
나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현기증이 나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스트레스 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공황장애증상이었다.
주변이 현실 같지 않고 너무나 힘들었다.
회사에서 숨이 안 쉬어져서
친구에게 전화하니
공황장애인 것 같다고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바로 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다음 주 목요일 오라는 소리를 들었었다.
나는 더 불안했다.
이게 그냥 스트레스성이라서 일시적인 거라면?
병원에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보지 않을까?
정말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인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겪는 이 상황이
그냥 잠깐 있을 일이고
금방 끝날일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병원에 예약하고
그 남자아이와 통화를 또 하고
그러다 머리가 맑아지는 어느 순간이 있었다.
다 끊어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남자아이와 사귀는 내 친구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그건 언니일이고 저는 저랑 사귀기 전 일이라서 상관없어요"
라고 말하곤
"언니가 힘든 건 이해하지만 언니가 극복해야 할 일인 거 같아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거 같아요"
"오히려 남자 때문에 우리 관계 끊는다는 게 더 상처예요"
라고 말했다.
상처여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볼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관계들을 다 정리하고
나는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자다가 악몽을 꾸기도 하고
꿈에서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하기도 하고
자다가 쓰러지기도 했었다.
이유 모를 눈물에 펑펑 울면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헤매기도 했고
너무 힘들어서 죽고만 싶다고 생각을 했다.
모두 공황장애 증상이었다.
목요일이 되고 병원에 갔다.
공황장애라고 말해주신 선생님 덕분에
내 병명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내 증상도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나는 아픈 거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병원에서 공황장애를 앓을 땐 주변에 말하라고 했다
언제 어떻게 공황장애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생에게 가장 먼저 말했다.
부모님에게는 걱정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었다.
내 마음이 괜찮아져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나 공황장애래"
처음 말씀드린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조금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사실은 나는 많이 아프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게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기대도 된다는 것이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은 가족보다 남자친구에게 더 의지를 많이 했었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친구보다, 가족보다 의지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가족들한테는 말을 못 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다.
엄마와 언니에게 말했었는데
언니와 엄마가
"네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그랬겠지"라고 말했다
그 후부터 내 이야기를 잘하지 않게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에게 어린 시절 너무 힘들어서
심리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거 나중에 기록 남지 않아?"
엄마의 말 한마디로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쌓여왔던 것 같다.
물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엄마와 언니도 그때의 생각과 조언이었을 것이며
내가 마음에 크게 담아두었던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 이야기들은
하나의 나에게 가족에게는 기댈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조금은 극복한 나는
혼자 병원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혼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발버둥을 또 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공황장애라고 말했다.
나는 공황장애를 안고
엄마 아빠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나 공황장애래"
이것 또한 하나의 발버둥이었다.
하지만 나의 공황장애 증상들이
더 이상 혼자만 감당할 수 있는 증상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선생님이 말했다.
"약을 한번 먹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약이라고?
정신병원 약을 먹는다고?
내가 다시 나약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