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사랑할게 아니라 나를 먼저 사랑했어야 했다.
술 먹고 기억을 잃었다.
순식간에 시간이 사라졌다.
그럼 내 불안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술은 나에게 더욱더 깊은 심연으로 이끌었지
푸르른 세상으로 이끌어주진 않았다.
남자친구와 크게 다투게 되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날은 왜인지 둘 다 예민했었다.
예민한 둘의 작은 말다툼이 싸움이 되어버리고
남자친구는 나에게
"택시 불러줄 테니까 집으로 가"
라고 말했다.
나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싸우고 가면 우리 관계가 불안정해 질 것만 같았다.
그 불안감이 나를 더욱 집어삼켜버렸다.
"싫어"
"안 가"
"내가 알아서 갈 거야"
세 마디를 했다.
남자친구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과 상황이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그래서 꺼내서 안될 말과 행동을
내 안에서 꺼내어 버렸다.
가위를 들고 남자친구 앞에서
손목을 그으려 했었다.
남자친구의
"너 미쳤어?"
의 외마디 소리침에도
나는 손목을 그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안과 공황이 나를 잡아먹을 때쯤
두려워서 공황약을 한 움큼 쥐어먹었다.
그리고 짐을 싸
남자친구집에서 나오면서
보드카 한 병을 들고 나왔다.
정말 그때는 약과 술을 같이 복용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었기 때문에
더욱더 나에게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들을 했다.
아빠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를 하고
보드카 반 병을 마시고
기억을 잃었는데
다음 날 아침 눈떠보니
내 침대에서 얼굴과 팔다리에 피가 떡이 되어 누워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픔에 오후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빠가 식탁에 앉아보라고 말했다.
순간 너무 무서웠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어제의 하루가
두려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빠가 데리러 오셨는데
내가 30분이나 전화를 안 받았다고 했다.
세네 번의 전화 끝에 남자친구가 전화를 받았고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끌고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아빠는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남자친구와 30분간 대화를 했다고 한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흐르고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스릴러 저리 가라였다.
아빠와 남자친구가 이야기하는 걸 보고
나는 기억에도 없지만
혼자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다
자빠져 턱이 울퉁불퉁한 아스팔트에 깨지고 파였다고 한다.
손과 무릎, 다리 역시 아스팔트에 갈리고
멀쩡하지 못한 몸에
아빠의 등에 업혀 집으로 겨우 돌아왔다고 했다.
20대 초반에나 칠 사고를
30대가 되어서 쳐버렸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 기억을 도려내 누군가 삭제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빠의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듣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한테 얘기 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어?"
남자친구의 말은 아빠의 이야기와 일치했지만
아빠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밖으로 데리고 나왔을 때
남자친구에게 욕하고 소리친 것,
파괴적인 모습을 보인 것,
아빠와 남자친구의 30분의 이야기한 것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충격작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헤어지자"
나는 헤어질 수 없다고 말을 했다.
미안하다고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한참을 생각한 남자친구는
"그럼 생각할 시간을 좀 가지자"
그렇게 남자친구와 2주의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헤어질 수도 있는 2주의 유예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유예기간.
나는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고 싶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헤어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변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펑펑 울었다.
다 울고 난 후
그리고 아빠와 엄마와 이야기를 해
약을 쳐 방 받는 병원을 바꾸기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또 심리상담 센터도 다니기로 했다.
병원이 집에서 너무 멀기도 했고,
1년 정도 약을 먹었는데도 차도도 없고
오히려 심해진 나를 본 엄마 아빠의 결정이었다.
나는 서른인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관리하지 못했던 것을 들킨 것만 같아
부끄러워졌다.
우울감이 더 왔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자책을 하게 되었다.
공황도 왔다. 너무 힘들었다.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지쳤을 때
이 사건이 왜 일어났나 병원들을 예약하고
고민에 고민을 했다.
가장 중요했던 건
나는 그를 사랑할게 아니라
나를 먼저 사랑했어야 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파괴시키기만 했다.
가장 큰 문제였다.
상담을 받으면 조금이라도 괜찮아질까?
마음의 희망을 품으며 상담날짜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상담은 나를 구원해 줄거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