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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슈기 Oct 07. 2024

08.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나의 삶은 언제나 보호받지 못하는 삶과 일들을 겪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상담날이 되었다.

병원에 가는 마음이 조급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마법처럼 좋아질 것이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세상엔 마법은 없다.

언제나 단계와 시간이 필요한 일들만 있을 뿐


첫 상담 때

상담실에서 불안해하며 이야기하고

펑펑 울었다.

선생님은 우울증이 심각한 단계라고 부모님께 말하셨다.

그리곤 검사지 두 가지를 주셨다.

총 5가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산책하기, 책 읽기, 공부하기가

좋다고 말하셨다.

그러고선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갈 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라고 말하셨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괜찮아지고 싶었다.

나의 파괴적인 모습을 없애고 사랑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하라는 걸 다 했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었다.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할 힘이 나지 않아

툭하면 눈물이 흘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울다가도 검사지를 마치고

초췌한 모습으로 슬리퍼를 신고 나가서 산책을 하고 오고는

발에 물집이 잡히기도 하고

울다가도 책을 읽기도 했다.

공부는 드라마 작법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하고 있는 공부를

끝까지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상담은 상태가 심각해 1주일에 두 번 하기로 했기에

다음 약속일까지 빠르게 다가왔다.


울고, 산책하고, 책 읽고, 누워있고, 울고

그러면 하루가 다 갔다.


그 하루 중 언니가 나에게 가장 힘이 되었었다.

언니는 싱가포르에서 나를 위해 매일 전화를 해주었다.

오늘은 어땠는지, 오늘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그리고 괜찮다고 언제나 옆에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또 하루종일 펑펑 울곤 했다.


다음 상담이 되었다.

나는 빨리 괜찮아지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상담에는 괜찮아진 나를 마주할 수 있겠지? 또 기대했다.

전혀 아니었다.

마주한건 내 상태였다.


"검사지 결과가 나왔는데 우울증이 너무 심하고 자존감이 너무 낮아요"

그리고 다른 심각한 부분들도 이야기해 주셨다.

이야기들을 듣고

부모님께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은 보호받아야 할 시기예요"


보호

나는 보호받은 적이 있었는가?

나의 삶은 언제나 보호받지 못하는 삶과 일들을 겪었다.

늘 맨몸으로 던져져 수많은 우박과 돌들을 맞으면서 버티고 버텼었다.

그래서 난 상처들이 곪고 곪아서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하나씩 터지면서 눈물이 났나 보다

두 번째 상담을 받고 약을 받는 병원도 추천받았다.


병원에 갔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전날 이전 병원에서 받았던 공황약이 부족해 약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들이 들었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이전에 먹던 약들이 너무 세다고 하셨다.

그리곤 말하셨다.

"약이 센 것도 센 건데 조울증약들이네요"


여태까지 공황장애 약인줄 알았던 약들이

조울증약이란는 걸 알게 되자 세상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다.

조울증이라고는 한 번도 얘기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약은 비슷하게 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약을 받으러 약국에 갔는데

세상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었다.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공황이 찾아왔다.

때마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처방한 약 중 약국에 없는 약이 없어서 변경이 가능한지 확인차 온 전화였는데

그 생명수 같은 전화에서

침착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병원으로 올라오세요"


그리고 공황상태에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빠에게 기대어 병원으로 올라갔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서 대기하다가

약 나오면 바로 먹고 좀 진정하고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약이 나오기 30분까지 혼자 펑펑 울다가

손을 떨며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남자친구에게 더 이상 파괴적인 나를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언니에게 바로 전화했다.

전화해서 10분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울었다.

언니는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언니 덕분에 그 지옥 같은 공황의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약을 먹고 조금 많이 지친 몸과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족들과 나만 아는 힘든 시간들이었다.

언니와 통화하면서 매일 눈물을 흘리고

언니는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고

빨리 괜찮아지고 싶어서

매일 아침 슬리퍼를 신고 질질 끌면서 나가 동네를 돌고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몸이 말해주듯

물집이 잡히고

나는 또 괜찮아 질거라 생각하며

물집을 터트리고 약을 바르고 대일밴드를 붙여주었다.


마음에 난 고름과 물집들도 눈에 보인다면

하나씩 터트려 약을 바르고 대일밴드를 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그랬으면 내가 좀 더 괜찮아지는데

시간이 덜 걸렸을까?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아프기 전에 아프다는 걸 알았을까?


우리는 몸에 난 상처는 보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잘 보지 못한다.

나를 돌아보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것 같다.


나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다는 걸

마음에서 나온 나쁜 세포들이 몸 밖으로 표출되어야

그제야

"아.. 나 아프구나"하고 바라보는 것 같다.

그것마저 무시를 한다면

나처럼 깊은 심연에 빠져 산소가 부족해지는 걸 느끼며

물에 빠져가는 나를 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는 걸

조금씩 알아채갈 뿐이다.


그래도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상담을 시작한 건

너무나 잘한 것 같다.

나의 치료의 첫 시작에 발을 들인 건

나에게도 큰 용기의 발판이었음을,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나의 의지였음을

이제 와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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