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서본 국회 국정감사
발신번호제한으로 전화가 왔다. 작은애 담당의사였다. 치료받으러 서울 다니는 거 힘들지 않냐고 물으신다. 물론 힘들다. 서울 가는 날은 새벽 5시 23분에 첫 기차를 탄다. 새벽 4시에 내가 먼저 일어나 준비하고 30분 뒤에 작은애를 깨운다. 비몽사몽간에 작은애가 옷을 갈아입는다. 어둑어둑하고 고요한 시간에 손을 잡고 나선다. 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작은애는 잔다. 수서역 가는 기차 안에서 또 잔다.
8시쯤 병원에 도착하면 채혈실부터 간다.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린다. 매번 채혈이 한 방에 끝나기를 바란다. 바늘로 찌르고 혈관을 찾느라 안에서 이리저리 쑤시는 과정이 괴롭다. 어떤 날은 그마저도 실패해서 다른 팔을 대야 한다. 그런 날은 작은애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2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에 병원식당에 가면 죽과 국 종류만 판다. 작은애는 마음에 드는 메뉴가 없어 도통 안 먹는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면 진료를 본다. 피 수치에 따라 수혈을 하기도 한다. 항암주사실에서 종일 주사를 맞고 밤 9시 30분에 마지막 기차를 탄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작은애는 기차에서 자고 택시에서 또 잔다. 집에 도착하면 밤 12시다. 담당의사의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이 수고로움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담당의사가 나에게 부탁할 게 있다며 운을 떼신다. 지역 소아암 환아들이 치료받기가 힘드니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가줬으며 좋겠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사는 지역 대학병원에는 소아암을 봐주는 의사가 없다. 이런 형편을 알고부터 의사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참이었다. 서울로 다닐 수 있는 우리는 그나마 낫다. 지역 소아암 환아 중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치료가 불안정한 경우도 있다. 지방과 서울의 의료 격차가 크다는 걸 몸소 겪고 있는 터라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리하여 2022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10월 6일에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뉴스에서만 보던 둥근 지붕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두근거렸다. 비서관을 따라 국회의사당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예상되는 질문에 대답할 말들을 정리했다. 국정감사실로 들어가 참고인 자리에 앉았다. 여야 국회의원들, 보건복지부 장관, 질병관리청장이 와 있었다. 엄한 자리에 와 있다는 현실 자각이 되면서 긴장됐다.
국정감사에 참석한 증인과 참고인들의 공통점은 해당 영역의 전문가이거나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이다. 적어간 글을 읽다가 울먹거린 젊은 여성은 남편을 잃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던 중년 남성은 다 큰 딸을 잃었다. 나는 어린 딸의 건강을 잃었다. 소중한 것을 잃은 참고인들은 할 말이 많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답변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누군가의 울부짖음에 이제 그만하라는 건 잔혹하다. 더 들어주고 싶었다.
내 순서가 한참 뒤로 미뤄졌다. 덕분에 국정감사를 진득하게 볼 수 있었다. 현 사회에 이런 어려움들이 있구나 와닿았다. 다루어지는 안건들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었다. 기사로 보던 이슈들이 국정감사에도 나오니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예상 답변을 적은 종이를 들고나갔다. 비서관은 자연스럽게 말하는 게 좋다 했지만 난 이 자리가 처음이니까 자연스러움은 포기했다. 내 할 말은 다 하고 가겠다는 일념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목소리가 떨렸다. 울컥하게 되는 지점도 있었다. 다행히 잘 끝났다. 작은 불씨들이 모여 지역 소아암 의료체계가 나아지길 계속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