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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Feb 18. 2024

꼬깃꼬깃한 지폐,  본디아 15

“우리 열심히 공부해요.”

 학교가 개학했다. 

시커멓고 수염 덥수룩한 녀석들이지만 건강한 모습을 보니 반갑다. 분주한 가운데 24년도 산업인력공단 주최의 시험 예정일이 올라왔다. 작년보다 한 달여 앞당겨질 모양이다. 늦장 피울 여유가 없다. 작년 하반기부터 부지런히 만든 시험자료를 모아 제본을 해서 학생들에게 배부하려던 나의 계획도 일찍 조정하여 학교 앞 복사집에 원고를 넘겼다. 가격을 네고하여 한 권당 4불로 정했다.   

  

 학생들에게 시험 일정과 시험 때까지 기출문제집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책을 사라고 공지했다. 학생들의 형편을 아는지라 뭘 구입하라고 말 꺼낼 때가 나 자신도 불편하다. 160여 명의 책을 내가 다 사주기에는 역부족이다. 학생들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꼬깃꼬깃한 5불짜리 달러를 보는 순간 맘이 짠하면서 불편했다.      


 여기 학교는 동티 정부의 국비로 운영을 한다. 전국 각지의 젊은이들이 한국행의 기회를 잡기 위해 수도인 딜리로 올라와 학교를 다닌다. 딜리에 친인척이 있어 거주할 수 있으면 그나마 행운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Kos 라 불리는 쪽방촌에서 여러 명 공동생활을 한다. 시골의 부모님에게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아 생활한다. 학생들의 그 5불짜리 지폐는 농사 지으시는 부모님의 몸빼바지에서 나왔으리라.  

   

 동료교사 고선생님의 반 남학생이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압수당했다. 고선생님이 돌려주는 걸 깜빡하고 본인의 가방 속에 넣고 퇴근을 했다. 담날 새벽에 폰이 계속 울려서 받아보니 그 학생의 아버지였단다. 시골에서 먹거리를 바라바리 들고 아들에게 올라오는 중인데 아들과 연락이 안 된다면서 계속 전화를 한 모양이다. 고선생님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 아버지는 연신 선생님에게 아들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단다. 동티에서는 학교 선생님의 위신이 높다.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 선생님에게 깍듯하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학생들에게서 책값을 받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얘들아,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 줄게. 너희 모두 합격하도록 도와줄게.’ 이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1주일이 지나서야 책이 도착했다. 학생들이 두 손으로 책을 받으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다. 나도 큰 소리로 답했다. 

“우리 열심히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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