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정부가 만들어낸 존재 ‘비스트‘.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자면 늑대인간이랑 비슷한 존재다. 비스트는 아직 한마리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비스트는 아까 말했듯이 늑대인간이랑 비슷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평상시의 모습은 그냥 인간이랑 다를게 없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동공이 날카로워지거나 커질 수 있고, 눈동자 색도 빛나는 노란색이다. 송곳니도 인간보다 훨씬 뾰족해서 조금 세게 물리면 피부에서 피가 흐를 정도다. 이런 비스트는 감정적이 되면 늑대처럼 변한다. 아예 짐승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은 늑대 얼굴 마냥 주둥이가 길어지고, 회색 털이 솟아난다. 몸집도 조금 더 커지고, 팔과 다리는 늑대의 앞다리, 뒷다리처럼 변한다. 꼬리뼈 쪽에서는 풍성한 꼬리가 튀어나오고, 이성을 잃게 된다. 또, 비스트는 지능이 낮고, 이성을 자주 잃는다. 그래서 정부는 비스트가 흥분하지 못하게 비스트를 위해 만든 집에 비스트를 넣어두고 절대 밖으로 못 나오게 하며 감시한다. 그리고 이런 비스트를 돌보는 일명 ’비스트 돌보미‘가 있다. 비스트가 한마리 뿐이라, 비스트 돌보미 또한 한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비스트 돌보미로 수의사 한명을 뽑았는데, 대학교로 수석으로 졸업하고, 병원도 굉장히 유명하며, 성격도 정말 착하기 때문이였다. 이런 비스트 돌보미는 한명이지만, 이 비스트 돌보미의 일을 돕는 사람들은 여러명이다. 비스트 돌보미는 비스트와 한 집에서 동거하고, 비스트가 이성을 잃을 것 같을 때, 가라앉혀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 외에도 비스트의 밥이나, 교육, 치료, 등을 담당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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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하봄이다. 정부가 뽑은 비스트 돌보미이며,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동물병원의 원장이다. 사실 처음 비스트 돌보미로 뽑혔을 때, 그게 뭔지도 몰랐고, 병원 일과 같이 병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들어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정부는 마치 암컷 새에게 구애하는 수컷 새처럼 계속 문자를 보내고, 사람을 보내며 제발 비스트 돌보미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렇게 계속 찾아오는 정부에게 비스트가 뭔지도 자세히 모른다- 라며 답했다. 그러자 정부는 나를 데리고 비스트가 있다는 집으로 향했다. 집은 내가 살고 있는 집 보다 훨씬 좋은 집이였다. 비스트는 한마리 뿐이라 들었는데, 집은 마치 대가족이 사는 듯한 규모의 집이였다. 크기만 할 뿐 아니라 고급스러움까지 동시에 챙긴 집이였다. 그렇게 집을 보고 감탄하며 내부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긴 복도 끝에 한 방이 있었다. 나를 안내하던 안내원이 방문을 조심히 열었고, 방 안은 컴컴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암흑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어항이란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실루엣 또한 희미하게 보였다.
“… 물고기..?“
물고기를 보자마자 난 설마 비스트가 물고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항 뒤에서 노란색의 무언가가 번뜩이더니 어둠 속에서 회색 털이 삐죽삐죽 나있는 소녀가 나왔다. 머리카락 또한 회색이였고, 피부에는 거칠고 엉킨 회색 털들이 곳곳에 있었다. 눈동자의 색은 빛나는 노란색에 동공은 날카로워 고양이 같았다. 안내원은 소녀를 힐끔 보더니 내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이 아이가 비스트입니다. 늑대인간 같은 존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늑대인간이라니.. 어릴때나 들었던 환상 속의 괴물이였다. 하지만 어릴 때 들었던 늑대인간의 모습보다 비스트는 조금 더 귀여웠다. 정확한 나이가 나보다 많을지 몰라도, 외관을 봤을 땐 나보다 훨씬 어린, 초등학교 저학년 같이 보였다. 내 조카도 초등학생이였던게 생각나 비스트를 보고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듯이 나도 모르게 비스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그 행동에 안내원과 비스트 둘다 놀란 눈치로 날 바라봤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너무 섣불렀구나, 생각하고 손을 뒤로 빼려 했다. 그때 비스트가 으르렁거리더니 뾰족한 송곳니로 내 손을 콱 물고 도망갔다. 사람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아파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안내원은 어쩔줄 몰라해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려 붕대를 꺼내 내 손에 어설프게 감싸주었다. 나는 하얀 붕대에 점점 물드는 나의 피를 보다가 암흑 같은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아이.. 이름이 있나요..?“
뜬금없는 내 질문에 안내원은 다시 한번 놀란 눈치로 날 쳐다봤다. 그리곤 작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니요. 이름은 없고 그냥 비스트라고 부릅니다.”
그 말에 나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찌릿함을 느꼈다. 이름 없이 비스트라고 불리다니.. 뭔가 불쌍했다. 아까 보니 옷도 헌걸 입은 채 덜덜 떨며 나왔었는데.. 그러자 내 머릿속에서 한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수의사가 된 이유. 수의사가 좋아서 한 직업이 아니였다.
옛날에 키우던 강아지 한마리가 있었다. 강아지 이름은 삐삐였다. 그때 당시엔 미미, 루루 같이 같은 글자를 반복한 이름이 귀엽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난 삐삐와 함께 컸다. 어렸을 때 키운 강아지라 산책을 나갈때도 목줄을 헐렁하게 끼운 채 신나게 뛰어다녔다. 삐삐도 좋아했다. 나랑 같이 달릴때 삐삐의 표정은 정말 사람이 웃는 것처럼 웃는 표정이였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목줄이 헐렁했기 때문이였을까, 삐삐를 묶고 있던 목줄이 풀렸다. 나는 그때 한창 달리다 도로여서 급히 멈추고 목줄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내 앞에 놓여진건 목줄 뿐이였다.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쾅하는 소리가 내 고개를 들어올렸고, 고개를 들어올린 곳엔 트럭 한대가 멈춰져있고, 트럭과 도로엔 피로 가득했다. 고개를 옆으로 더 돌리자, 트럭에 치여 멀리 날아간 삐삐가 도로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때 난 삐삐에게 달려가 괜찮냐고 물어보거나 안아줄 수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삐삐가 없는 목줄을 손으로 쥐고 있었을 뿐이였다.
그날 이후로 난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죽어나가는 동물들을 보기 싫어서. 동물들이 아픈걸 보기 싫어서. 그리고 비스트는 충분히 아파보였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는 그래서 결심했다. 비스트 돌보미가 되기로. 그렇게 정부의 제안을 수락하고 다음날부터 비스트 돌보미로 일하게 되었다.
오늘도 안내원과 함께 비스트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 안내원이 비스트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을 듣고 어젯밤에 비스트와 어울릴만한 이름들 몇개를 추려왔다. 비스트가 좋아했으면! 그렇게 다시 한번 암흑같은 방의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안녕..?”
작게 말했음에도 내 인사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두 노란 눈이 보였다.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미리 챙겨온 음식들을 흔들었다.
“이거 먹을래? 너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일단 고기류들로 챙겨왔는데, 건강도 챙겨야하니까 야채도 넣었어!”
노란 눈은 몇번 깜빡이기만 할뿐 나에게 다가오지도,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다. 나는 잠시 정적을 이루다 내가 먼저 한 발자국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먼저 다가가자 놀란 듯, 비스트가 흠칫하는게 보였다. 나는 방 안에 들어가 불을 조심히 켰다. 불이 켜지자마자 비스트는 깜짝 놀라하더니 구석에 숨어버렸다. 그리곤 구석에서 멀리 있는 날 보며 으르렁거렸다. 나는 조금 더 방 안으로 들어가 식탁에 음식을 두었다. 그렇게 비스트에게 말을 걸어보려 했는데, 식탁 옆 서랍 위에 있는 어항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비스트의 눈보다 먼저 빛난 어항. 그 안에는 금붕어 두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금붕어네? 너가 키우는거야?”
내가 어항을 신기하게 보자, 비스트가 흠칫하더니 조금 내게 다가오면서도 경계를 했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금붕어..?”
반응을 보아하니 금붕어가 뭔지 잘 모르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나는 금붕어에 대해 이리저리 아는걸 모두 설명해주었다. 물고기 중에서 주황색 빛을 띄는 작은 물고기가 있는데 그런 물고기를 금붕어라 부른다~ 금붕어 안에서도 많은 종류가 있다~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있는 와중에 비스트가 듣다 지쳤는지 한숨을 푹 쉬더니 내 말을 끊고 물었다.
“… 저기 안에 있는거.. 금붕어라는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맞아!”
비스트의 시선은 나에게서 금붕어 쪽으로 향했다. 나도 금붕어를 보려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보니, 문제가 꽤나 많았다. 어항 안에는 이끼가 가득 껴있었고, 청소를 많이 안한 티가 났다. 심지어 자갈들 사이사이에 금붕어들이 먹다 남은 사료들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수질 상태도 심각하게 안 좋아보였고. 금붕어들이 이런 환경에서 아직까지 살아있는게 거의 기적 같아 보였다.
“근데 이거 어항 청소는 안했니? 청소 안하면 얘네들 죽을 수도 있는데..”
죽는다는 말이 나오자 비스트는 축 늘어져 있다가 폴짝 뛰듯이 귀를 쫑긋쫑긋거리며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두 발로 서서 내게 바짝 달려와 나를 잡고 흔들며 물었다.
“죽어? 쟤네 죽어? 금붕어 왜 죽어?”
나는 다시 한번 주저리주저리 설명했다. 이번엔 말을 끊지 않고 오히려 경청한 비스트가 어쩔줄 몰라하며 발을 동동 굴렸다. 그리곤 내 눈치를 보더니 귀를 바짝 뒤로 젖히며 꼬리를 축 늘어뜨려놓고 말했다.
“…. 금붕어.. 살려줘..”
그 모습에 비스트가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가 웃자, 비스트는 아까까지만 해도 부탁하는 듯한 태도더니 으르렁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안 살려주면.. 물어버릴거야.. 웃지마…”
나는 겨우 웃음을 멈추고 어항을 들어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알겠어 알겠어~ 어항 깨끗하게 청소하고 올게!”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난 후에 나는 어항 청소를 끝마치고 깨끗해진 어항을 서랍 위에 올려두었다. 어항이 아까와는 180도 다르게 깨끗해지자, 비스트는 신기한 눈으로 나와 어항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 정말.. 엄청 깨끗하다…”
그렇게 비스트와 나는 조금 사이가 가까워졌다.
그날 이후로도 계속 같이 지내며 비스트와 금붕어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밥은 얼만큼만 줘야하고, 어항 청소는 이렇게 하는거고.. 그렇게 금붕어 얘기로 조금 친해지자 다른 주제의 얘기들도 같이 했다. 아까 산책을 갔다 왔는데 강아지가 귀엽더라~ 요즘 너 머릿결이 많이 좋아졌다~ 너가 해주는 점심 맛있다~ 등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비스트는 내게 경계를 완전히 풀었다. 같이 동거하면서 원래는 각방을 썼다. 내가 일하며 잠을 자는 방과 비스트가 잠자는 방이 따로 있었는데, 많이 친해지고 경계가 완전히 풀어졌을 땐, 비스트가 먼저 내 방에 찾아와 내 옆에 강아지처럼 누워 같이 잘 때도 있고, 내가 비스트의 방에 먼저 가서 같이 잘때도 있었다. 그 만큼 우리는 가족처럼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동물병원 일정 때문에 하루 정도 비스트와 못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 비스트를 돌볼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때, 내가 가장 믿는 직원을 붙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비스트에게 먼저 말했다.
“오늘 내가 다른 일 때문에 오늘만! 딱 오늘만! 너랑 같이 못있어.. 그래서 내가 가장 믿고 아끼는 직원이 나 대신 너를 돌보러 올거야! 그 사람 막 물고 으르렁거리지 마, 알겠지?”
비스트는 시무룩해하면서도 입술을 잔뜩 삐죽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비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바베큐맛 육포를 손에 쥐어주고 쓰다듬은 후에 집을 나가 직원과 만났다. 내게 많은 직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일을 잘하며, 내 믿음을 빨리 산 직원, 최이란. 이란이는 정말 일을 잘하고 사회생활 또한 잘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직원이였다. 밖에서 이란이와 만난 후에 이란이에게 비스트가 있는 집의 위치를 알려주고 나는 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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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최이란이다. 하봄이 가장 아끼는 직원. 원래는 하봄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이였다. 하지만 일을 잘해 승진을 했고, 계속되는 승진과 발전되는 일 진행률에 하봄은 날 아끼기 시작하고 믿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봄은 알까? 나에게는 속내가 있다는걸. 이렇게 일 잘하고 하봄의 신뢰를 갖는 나의 모습은 모두 연기다. 속으로는 하봄을 처리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하봄과 단둘이 커피를 마실 땐, 커피에 어떤 독을 타면 좋을까 생각하고, 하봄의 집에 가끔 놀러갈땐 주방에 있는 세련된 식칼로 하봄을 처리할까, 아니면 투박한 칼로 처리할까 생각한다. 왜 이런 생각을 하냐고? 그야 나는 하봄을 싫어한다. 아니, 혐오한다. 하봄을 만날때마다 끓어오르는 살인충동을 억누르는 정도니. 그러면 왜 하봄을 이렇게나 원망하냐고? 사실 하나하나 따지고 보자면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나온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하봄을 죽이기로 결심한 사건은 딱 하나다.
사실 하봄과 나는 어릴때 만났었다. 나의 부모님과 하봄의 부모님은 꽤나 부자였다. 재벌만큼의 부자는 아니였지만, 다른 가정보다는 부유한, 그런 류의 부모님들이였다. 비슷해서 였을까, 나와 하봄의 부모님은 서로 친해졌고, 저절로 나와 하봄 또한 친해졌다. 부모님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서로 가위바위보라던지, 참참참이라던지, 다양한 놀이를 하며 놀았다. 그렇게 10대까지 친하게 지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학교 2학년때까지만 친했다. 왜냐면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우리 부모님은 하봄에 의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하봄이 죽였냐고? 직접적인 해를 가한건 아니다. 하지만 하봄은 자신의 부모님의 힘과, 자신의 힘으로 내 부모님을 죽음이라는 곳까지 몰아넣었다. 그 사건은 초등학교 6학년때로 돌아가야한다. 그때부터 공부를 하고, 서로의 진로를 조금씩 선명하게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나와 하봄은 같은 수의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같은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그러면 비교가 될 마련.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하봄보다 훨씬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부모님은 나를 자랑스러워하시며 하봄의 부모님에게도 내 얘기를 많이 했다. 자랑이라면 자랑이고, 그냥 딸 얘기면 딸 얘기였다. 하지만 하봄의 부모님은 그게 언짢았나보다. 그리고 하봄의 부모님만 언짢은게 아니였다. 하봄 또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친했던 우리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하봄은 다른 친구들에게 끼며 나를 피해다녔다. 그렇게 중학교로 올라가던 어느날, 하봄은 일반중으로 올라갔고, 나는 국제중으로 올라갔다. 그 소식을 내 부모님은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리고 하봄의 부모님에게도 말했다.
“우리 이란이, 한국국제중에 들어갔어요!”
그 자리에는 나와 하봄이, 그리고 하봄이 부모님이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말에 살짝씩 웃어주는걸로만 의사표현을 했고, 힐끔 하봄과 하봄의 부모님 쪽을 봤다. 나는 몸이 굳을 수 밖에 없었다. 하봄은 웃고 있었지만 시선이 닿지 않는 아래 쪽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하봄의 부모님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억지로 웃음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하봄과 하봄의 부모님을 보고 우리 부모님에게 이제 그만 얘기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 날 이후, 하봄은 날 은근히 피했다. 그리고 사건은 중학교 2학년 연말 때 일어난다. 그때는 우리 부모님과 하봄의 부모님이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였다. 하봄과 나는 한국에 남아있고. 부모님들이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나와 하봄은 같은 집에서 지냈다. 우리 집에서. 그리고 우리 집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집 강아지 욘이가 있었다. 하봄은 자기 집 강아지도 데려와도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당연히 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살짝 겁난 점은, 우리 집 강아지 욘이는 치와와였지만 하봄의 강아지 삐삐는 핏불테리어였다. 물론 삐삐가 사람을 물고 그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순둥이라나. 그래도 걱정이 됐다. 덩치 차이가 있어서 잘못했다가 욘이가 다칠까봐 걱정이 되어 욘이를 내 방에만 두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며 하봄이 슬픈 듯이 말했다.
“우리 삐삐 때문에 욘이를 네 방에만 가둬두고 키우는거야..? 너도 알잖아.. 우리 삐삐 안 사나우고 오히려 순둥한거..”
그 말에 나는 눈치가 보였다. 이 말을 듣고도 내 방에 욘이를 두고 키우면 하봄은 또 뭐라고 할테니. 나는 속으로 삐삐가 안 물거라고 억지로 확신을 하며 방 밖으로 욘이를 풀었다. 하지만 평화를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뒤에 내가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보인 광경은 삐삐 입에 처참하게 물려져 있는 욘이와, 물린 욘이의 목을 꽉 쥐고 있던 하봄.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하봄이 뭐라고 말하는게 들렸지만,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귀에서 삐— 소리가 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깨진 꽃병이 들려져 있었고, 내 눈 앞에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하봄과 그 모습을 보고 구석에 숨어버린 삐삐가 있었다. 나는 하봄을 신경 쓰지 않았다. 꽃병을 그대로 놓고 바닥에 쓰러진 욘이를 품에 꼭 안고 울었다. 내 울음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는지, 내가 미처 잠구지 못한 집 안으로 이웃 한명이 들어와 그 광경을 목격했고 피바다로 가득 찬 우리를 보며 119에 신고했다. 하봄은 입원했고, 나는 입원하지 않고 치료만 받은 후에 바로 집으로 갔다. 이 일 때문에 여행에 가있던 하봄의 부모님이 한국으로 예정보다 일찍 왔다. 공항에서 하봄의 귀국을 보고 나는 하봄의 부모님에게 물었다.
“… 저희 부모님은.. 어디..“
하지만 내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하봄의 어머니가 내 어깨를 꽉 붙잡고 흔들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우리 하봄이는 괜찮니?? 의식을 잃었다며!! 입원했다며!!”
하봄의 부모님은 내가 하봄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이웃이 그 상황을 보고 삐삐가 우리를 덮쳤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내 마음 속에는 죄책감이 아니라 오히려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하봄의 부모님이 울고불며 나를 붙잡고 심문을 해도 나는 슬프거나 우울한 부정적인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이 들었다. 하봄의 부모님의 모든 질문에 답해주고 나서야 난 내 질문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 부모님은….”
그 말에 하봄의 부모님이 멈칫했다. 그리곤 내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불쌍한 이란이.. 너희 부모님은 여행 중에 사고로 돌아가셨어..”
그 말에 마음 속에 피어나던 긍정적인 감정들은 폭발하듯이 사라졌다. 사고? 갑자기? 말이 안된다는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였다. 그리고 분명 슬퍼야하는 상황과 달리 너무나 모순적인 저 표정. 분명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고 있는, 그런 표저이였다. 그 표정을 본 순간 알아차렸다. 아, 너희들이 우리 부모님을 죽였구나.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욘이를 죽인 하봄을 의식불명으로 만들었더니, 이번엔 내 부모님이 죽었다네. 그럼 이번엔, 하봄의 부모님을 내가 죽여야하는거야?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하봄의 어머니의 뺨을 때렸다. 냉정한 표정으로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손은 분명 떨리고 있었고, 볼에는 눈물들이 주루룩 흘러내려오는게 느껴졌다.
“왜.. 왜 그랬어요..?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야해..?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뭘.. 뭘, 잘못했는데…!“
다시 한번 손이 올라간 순간 하봄의 아버지가 날 먼저 때렸다. 힘이 너무 세서 나는 그대로 맞고 뒤로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미쳤어??! 감히 누굴 때려???”
일어나서 다시 때리고 싶었다. 아니, 죽이고 싶었냐고 물어보면 난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얼굴을 맞아서이기 때문인가, 눈 앞에 욘이와 부모님이 보였다. 내게 이리오라고 손짓을 하면서,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면서….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일어났을땐, 병원이였다. 그런데 보호자로 다른 사람이 왔다. 아예 생판 처음 보는 사람. 그 사람은 꽤나 늙어보이면서도 젊어보이는 이상한 사람이였다. 그 사람은 내 옆에 앉더니 입을 열었다.
“공항에서 쓰러졌길래, 119에 신고했다. 너랑 싸우던 어른들은 너가 쓰러진걸 보고 그냥 가더구나. 아무도 못 나서길래 그냥 내가 신고하고 보호자로 있는거다. 이름이 어떻게 되냐.”
말투가 동네 아저씨 말투 같은 그 사람의 질문에 나는 작게 대답했다.
“… 최이란이요.”
그 사람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귤 하나를 꺼내 어설프게 깠다. 내가 봐도 한심한 귤까기였다. 그 사람은 귤을 까면서 내게 다시 질문했다.
“공항에서 그 사람들이랑은 왜 싸웠냐.“
그 질문에는 별로 답하고 싶지 않아 등을 돌려 누웠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날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 귤을 까기 시작했다. 1분 정도 지난 후에, 그 사람은 내 등을 톡톡 쳤다. 내가 고개만 살짝 돌려 힐끔 그 사람을 쳐다보니, 그 사람이 내게 귤 한 조각을 건네고 있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획 돌리며 거부 의사를 말 없이 표현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 귤 조각을 다시 가져가는게 아니라 내 어깨 위에 놓으며 말했다.
“먹어라. 말라보이는데. 어릴땐 많이 먹어야 자란다.”
겨우 귤 한 조각 주면서 하는 말이 저런거라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어깨에 올려진 귤 조각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귤이 달달하니 맛있었다. 내가 귤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이 다시 내게 말했다.
“귤 한 조각 당 내 질문 한개 답해주기.”
난 황당해서 몸을 돌려 그 사람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 예?”
아재개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하는 그 사람을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바라봤다. 그 사람은 자신도 귤 한 조각을 먹더니 내 표정을 보고도 태연하게 아까 했던 질문을 했다.
“아까 공항에서 왜 그 사람들이랑 싸웠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다시 등을 돌려 누웠다. 그리곤 내 손등에 꽂힌 주사바늘을 보면서 말했다.
“그냥 사정이 있었는데요.”
내 대답에 만족을 했는지, 못했는지 그 사람은 다음 질문을 했다.
“부모님은 어딨냐.”
그 질문에 나는 몸이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이건. 그 사람들이 죽였어요? 없는데요? 여행 가셨어요? 적당한 대답이 없었다.
“…….”
내가 침묵을 선택하니 그 사람도 침묵을 유지하면서 남은 귤을 먹었다. 그리곤 기지개를 쭉 피더니 내게 제안하듯이 말했다.
“갈 곳 없어 보이는데, 나랑 같이 가겠냐.”
그 질문도 참 어이가 없는 질문이였다. 갑자기 생판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라니, 그런 미친 소리를 잘도 지껄이는 놈이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고개만 힐끗 돌려 그 사람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려서 손등에 붙여진 테이프들을 떼어내고 주사바늘을 뽑았다.
“미친 소리 하지 마세요. 저 이제 갑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왜 뒤돌아봐야하는가. 생판 남인데. 그렇게 병원의 자동문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그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하봄. 걔 이 병원에 있다.”
하봄, 그 이름이 귀에 들리는 순간 나는 날카롭게 몸을 돌려 그 사람을 째려봤다.
“…. 하봄을 어떻게 알아요.”
하봄이 유명한거라면 몰라도, 하봄은 일반인이였다. 심지어 하봄 주변 어른들 중엔 저렇게 생긴 사람이 없었다. 말 그대로 정상적으로라면 저 사람은 하봄을 몰라야 정상이다. 그 사람은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게 다가오더니 내 어깨에 자신의 팔을 올려 몸을 기대더니 말했다.
“의식불명이였는데, 오늘 의식이 돌아왔대. 근데, 기억상실증이라나.”
기억상실증이라면… 그제서야 생각났다. 내가 그때 하봄의 머리를 세게 쳤다는걸. 기억상실증이라니, 기뻐해야하는가, 슬퍼해야하는가.
“내 아들놈이 하봄 친구야. 그래서 하봄의 근황을 알아. 그리고 네가 하봄의 소꿉친구라는 것도 알고.”
저렇게 생긴 사람도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는건지.
“너, 사연 있어 보이는데, 말 좀 해주겠냐.”
하고 싶지 않다. 안 하고 싶다. 하지만 그 사람은 끈질겼다. 내가 병원 밖으로 나가 이리저리 목적 없는 걸음을 걷는데도 그 사람은 날 졸졸 따라다니며 “아~ 언제쯤 말해주려나~” “궁금한데 진짜로~” 이런 식으로 눈치를 주듯이 말했다. 나는 확 짜증이 나 사람 없는 골목길에서 그 사람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공항에서 그 사람들이랑 싸운건 그 사람들이 내 부모님을 죽였기 때문이고, 하봄이 지금 기억상실증인 이유는 제가 하봄을 때렸기 때문이에요! 공항에서 저랑 싸우던 그 사람들은 심지어 하봄의 부모님이고요! 됐어요? 이제 그만 따라오면서 눈치 줘요!”
그렇게 말하고 난 성큼성큼 집으로 향했다. 그런 나에게 그 사람이 크게 말했다.
“야! 너 하봄 싫어하니?”
그 물음에 나는 고개만 살짝 돌린 채로 말했다.
“당연히 싫어하죠! 제 말을 듣고도 제가 하봄을 좋아하는걸로 보이세요?”
그 사람은 잠시 정적을 이루더니 내게 다시 한번 큰소리로 외쳤다.
“그럼 나랑 가자! 네가 이루고 싶은걸 이루게 해줄게!”
그땐 그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커다란 이유였다. 그 사람을 따라간 곳은 아늑한 집이였다. 거기에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아들이 함께 지내고 있었다. 거기에 이제 내가 낀 것이고. 그 사람의 이름은 황팔춘이였다. 정말 아저씨 같은 이름이였다. 그 사람의 아들의 이름은 황하영이였다. 아들 이름이 참 여자애 같다 생각했다. 황팔춘은 내게 하봄에 대한 나도 몰랐던 정보들을 말해주었다. 그리곤 하봄에게 그렇게 복수하고 싶다면 이렇게 복수하는게 가장 편한다며 하봄 복수 루트까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렇게 황팔춘과 황하영과 함께 지내온지 몇년이 지나고 난 하봄의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봄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후로 날 기억하지 못했고, 하봄의 부모님은 아직까진 살아있었지만, 둘 다 치매였다. 그렇게 하봄의 직원으로 실적을 쌓아올리고, 일을 열심히 하자, 지금 이 순간까지 올 수 있었다. 비스트 돌보미가 된 하봄을 딱 하루만 대체할 수 있는 기회. 이 기회에 나는 모든 인연과 모든 악연을 끊어내기로 결심했다. 황팔춘이 알려준 방법대로라면 거기서 비스트를 자극시키고 하봄을 처리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했다. 하지만 난 그 작전에 수긍하는 척 마음 속으로 다른 계획을 짰다. 나는 하봄과 밖에서 만나 비스트의 집 위치를 받고 비스트의 집으로 향했다. 비스트의 방 안으로 들어가니, 누가봐도 열심히 관리한 티가 났고, 비스트 또한 나와 만나기 전에 하봄이 먼저 뭐라 말했는지, 날 경계하면서도 으르렁거리거나 물려고 달려들지 않았다. 비스트는 마치 교육을 받은 듯 보였다. 처음 온 날 보고 방을 이리저리 안내해주며 어설프지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이였다. 그 중에서 난 어항에 집중했다. 비스트가 어항을 설명할때 이렇게 말했다.
“이건 제 금붕어들이.. 살고 있는 어항이에요.. 제가 진짜 아끼는.. 금붕어들이에요.. 청소 해주고.. 밥.. 먹여주세요..”
아 순진해라, 나는 웃음이 났다. 이제 내 계획은 한층 더 완벽해졌다. 먼저 내 계획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금붕어들에게 먹이를 줄때는 그냥 평범하게 먹이를 준다. 하지만 밤이 됐을 때, 먹이 통에 독을 탄다. 그러면 다음 날, 하봄이 다시 비스트 돌보미 일을 하러 올 것이고, 금붕어들에게 먹이를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금붕어들은 독에 중독되어 죽겠지. 그걸 알아차린 비스트는 분명 하봄을 공격할 것이다. 왜냐면 자신이 아끼는 금붕어를 하봄이 죽였다고 생각할테니. 나는 비스트에게 웃어보이며 속내를 감췄다. 그리고 먹이도 주고 어항도 열심히 청소했다.
밤이 되었을 때, 비스트는 잠들었고, 나는 금붕어 먹이 통에 미리 준비한 독을 탔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먼저 비스트의 집을 떠났고, 내가 집을 나오자마자 앞에 하봄이 서있었다. 하봄은 내게 칭찬을 했다.
“이번에 일 잘했죠? 보니까 어디 물리거나 다친 곳은 안 보이니까.. 비스트가 공격은 안 했나 보네요? 다행이다.. 이란씨가 일을 엄청 잘하고 비스트를 잘 돌봐줘서 안 물었겠죠? 고생했어요! 일주일 휴가 줄게요!”
일주일 휴가라니, 곧 영원히 쉴텐데 굳이 줄 필요가 있을까, 봄아. 그렇게 난 비스트의 집 계단을 내려가고, 하봄은 올라갔다. 하봄이 집 안에 들어가는걸 확인한 후 나는 웃음이 났다. 이 계획은 끝은 아까 내가 말한게 끝이 아니다. 난 일부러 어설프게 독을 탔다. 하봄이 죽고 난 뒤에, 진정한 진실을 알게 된 비스트는 좌절감에 빠지고 날 죽이러 오겠지. 그때 난 미리 비스트가 날 찾을 수 있게 비스트의 집 앞에 있을 것이다. 비스트는 날 물어죽이겠지. 그래, 그게 내가 바라는 엔딩이다. 하봄이 죽고 나면, 난 더이상 내 삶에 미련이 없기 때문에, 그냥 모든 계획이 끝난 후에 죽을 예정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이란아!! 이란아!! 문자에 사진 어떻게 보내냐!!”
나랑 황하영 없이는 못사는 팔춘씨.. 황팔춘은 내가 처음에 계획을 짰을 때 굉장히 뭐라 했었다. 내가 짠 계획은 지금의 계획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끝에는 하봄과 내가 모두 죽는 계획이였으니까. 하지만 그 계획을 들은 황팔춘은 벽을 쾅 치며 절대 안된다고 했다.
“난 너에게 하봄을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준거지, 자살할 수 있는 기회를 준게 아니야. 너가 자살하길 바랬으면 애초에 그날 119에 널 신고하지도 않았어.”
그땐 그 말에 수긍하며 황팔춘이 짜주는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사실 그때조차도 황팔춘의 계획을 들을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그 계획을 들은 황하영 또한 내게 화를 냈다.
“우리 아버지는 너가 스스로 죽길 바래서 데려온게 아닌데, 왜 너는 스스로 죽으려 해?”
사실 처음부터 말하자면, 황하영과 만난지 얼마 안됐을때 마지막에 내가 죽는 계획을 말해도 걔는 극강하게 안된다고 하다기 보단 그냥 자기 아버지 계획을 따르는게 낫다-하며 그냥 무덤덤해보였다. 하지만 왜인지 시간이 지날 수록 황팔춘처럼 극강하게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 둘만 없으면 참.. 그렇다고 없으면 안되는..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가 좋아하던 산책길로 걸어갔다.
다음날, 뉴스에는 하봄이 죽은게 보도되고 있었다. 그 시각, 난 황팔춘네 집에 있지 않았다. 난 비스트의 집 앞에 서서 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뉴스에서 하봄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다 말한 후에 다음 뉴스로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 뉴스로 넘어간 순간, 쾅 소리와 함께 비스트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분노에 가득 찬, 원망이 깊숙히 담긴 눈빛. 나는 가만히 비스트를 바라봤다. 비스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씨발!!! 너였어!! 내가 죽여야했던건!!! 봄이가 아니라 너였다고!!”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그 사실을 하봄이 죽기 전에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스트는 내게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근데 이런 개새끼가!! 도망치는게 아니라 오히려 내 눈앞에 대놓고 나타나? 죽여버릴거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스트가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이란!!!”
황하영의 목소리였다. 내가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비스트가 내 가슴과 목 사이를 물어뜯었고, 즉사한건 아니지만, 시야가 흐려지고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황하영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는 의문이지만.. 이렇게 죽는게.. 나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내 장기 하나하나가 우두둑우두둑 뜯어지는게 느껴졌다. 아팠다. 굉장히. 하지만 소리 지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난, 그날 죽었다. 날 부르던 황하영의 표정이 궁금한게.. 그나마 남은 이 삶의 미련이랄까. 그래도 난 내 삶이 잘 살았다 생각했다. 마음 속으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보냈다. 황팔춘에게, 황하영에게, 맨날 같이 지내면서 투덜거리고 말 안 들을 때도 많았는데, 고마웠어요.
잘가요,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 다시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