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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Oct 24. 2024

돌아보면

하루를 위하여

  물속은 천적이 우글거린다. 버들치가 어디로 가는지, 뱀잠자리 애벌레가 누구를 쫓아가는지 눈이 따라간다. 버들치가 다가오자 땅굴 속으로 달아난다. 다가오는 포식자를 보지 못한 하루살이 애벌레는 잡아먹힌다. 눈 깜박할 사이에 다섯 마리가 사라져도 슬퍼할 틈이 없다. 

  탈피는 작은 껍질을 벗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탈출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형제를 잃거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찢어도 찢어도 물속에서는 같은 삶만 반복된다. 어제와 닮은 오늘이지만 그래도 살아 내야 한다. 몸은 느리고 적을 위협할 무기 하나 없다. 튀어나온 겹눈만이 늘 주위를 살핀다. 물속 낮은 곳에서 굴속 바닥에 몸을 바짝 붙이고 산다. 바닥의 삶은 늘 그러하다.

  서민들의 삶도 그러하다. 남이 꺼리는 일만 하고, 일하다가 다치고, 적은 월급으로 허덕이며 산다. 남이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몸은 늘 땀범벅이고 주어진 일에 묻혀서 산다. 죽도록 일해도 살림은 나아지지 않고, 생각 없이 던지는 주위의 한마디에 상처 입는다. 상처 입은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늘 힘이 든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하여 애를 쓴다. 몸도 마음도 한없이 낮추며 하루를 살아간다. 

  여섯 개의 발로 나무를 움켜잡는다. 기지개를 켜듯 날개를 폈다가 서서히 접는다. 날개에 힘을 주자 탈피선이 벌어진다. 벌어진 틈으로 머리를 내민다. 시간이 지나 가슴과 날개가 나온다. 긴 배돌기를 들어 천천히 곡선을 이루며 껍질에서 뺀다. 몸의 한 부분이라도 다칠까 봐 천천히 껍질을 벗는다. 마침내 꼬리가 빠져나온다. 한동안 하루살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죽은 듯이 붙어 불어오는 바람에 날개와 몸을 말린다. 

  두 쌍의 날개와 세 개의 꼬리가 빛난다. 몸을 깔끔하게 단장하고, 입마저 꿰매고 날개를 접지 않는다. 도망 다니면서 근육을 만들고, 눈은 더 반짝인다. 온전한 하루를 위하여 배수진을 친다. 사소한 시간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긴 시간을 공들여 자신을 닦고 준비한 하루가 반짝인다. 단단하게 하루를 준비한 그의 마음을 읽는다. 천 일간 마련한 하루를 기다린다.

  하루살이가 불을 향해 달려든다. 아래위로 빠르게 선을 그린다. 격렬한 몸짓 사이로 흥이 뿜어 나온다. 불규칙한 춤 선을 긋는다. 각기 다른 좌표로 자신만의 춤을 만든다. 때로는 막춤으로 바람이 자면 떼 춤을 춘다. 나를 잊고 춤판으로 빠져든다. 떼를 이룬 수컷의 몸이 불빛에 흔들린다. 온전한 하루의 춤판에 몸을 흔들면서도 눈은 암컷을 찾는다. 어디선가 보고 있을 암컷을 위한 춤이 이어진다. 지극한 사랑의 춤사위, 사랑을 위하여 뜨거워진 몸과 불빛. 무리 지은 수컷 사이로 암컷이 뛰어든다. 일생을 정리하는 춤꾼의 삶. 밤새워 자신을 불태우는 하루살이를 쳐다본다. 

  천일의 물속 생활과 하루의 공기 중 생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극한의 천일에서 조명이 비치는 무도회장의 하루. 하루살이의 생활은 극과 극에 닿아 있다. 물속에 살면서 꿈꾼 불 속의 춤판은 생명의 절체절명의 목표인 종족 번식이다. 가볍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하루살이의 삶이다.  

  하루살이의 잔해가 땅을 덮는다.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붓고 지쳐 쓰러진 생명체. 얼마나 떨어졌는지 바닥을 모두 덮는다. 입을 막고 날개를 편 채 춤추다가 간 삶이다. 열정적인 삶을 살고도 자신을 위해 동전 한 닢, 옷 한 벌 걸치지 않는다. 소명을 다한 몸부림을 뒤로하고 누운 몸뚱어리가 가볍다. 누가 이토록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루라는 절박한 상황에 온 힘을 쏟아버린 몸이 길게 누워 있다. 

  사람들은 덧없는 짧은 삶이라고 얕잡아 본다. 삼 년 동안 차가운 물속에서 늘 쫓기며 죽을힘을 다하여 보내고 인간보다 긴 역사를 가진 하루살이의 일생이다. 생명체는 하루를 살든 백 년을 살든 모두 죽는다. 삶은 과정이다. 사람들은 훗날을 쳐다보고 하루살이는 오늘을 산다. 그 하루를 어떻게 준비하고 보냈는지 하루살이는 몸으로 말한다.

  삼백육십오 일을 백 번 쌓는다. 삼만 육천오백을 헤지 못하는 인간의 삶이다. 길어도 하루살이 삼만 육천오백 마리의 삶을 사는 인간이다. 사십오억 년이라는 우주에 비하면 하루살이나 인간이나 비슷한 시간을 산다. 더 오래 산다고 얕보나 하루살이의 삶보다 열정적이거나 알차지도 않다. 끊임없이 핑계를 찾고 내일만을 이야기한다. 사고로 죽어도 하루살이의 죽음처럼 생태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가볍기만 한 존재의 죽음이다.

  사람도 시한부의 삶을 산다. 더 오래 산다고 미래만을 쳐다보고, 현실에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찾아 헤매고 망설이다가 하루를 그냥 보낸다. 영원히 살 것처럼 하면서 미루며 사는 것이 인간이다.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는 홀로 나뒹군다. 자신도 언젠가 떠나게 될 하루살이인 것을 잊고 산다. 하루를 살든 백 년을 살든 나고 죽는 것은 같고, 살다가 씨앗 하나 남기고 간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기다린다. 물속에서 태어나 불 속에서 생을 태우는 극적인 삶이다. 하루라는 간절함이 입을 막고 날개를 접지 않는다. 긴 시간 숨죽여 살며 맞이하는 하루살이의 하루를 가로등 아래에서 그냥 바라만 본다. 

  바람이라도 불면 이리저리 쏠리는 저 주검들, 죽음이 삶보다 더 가볍다. 그래도 암컷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유전자를 남겼으면 죽음이 허무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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