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매일 글을 쓰면서 조금씩 새로운 일정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단순한 일과를 만들고 그 일과 속으로 최대한 들어가 몸의 감각과 생각하는 습관을 점진적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줄일 건 줄이고 비울 건 비운다. 어지러운 주변의 풍경과 상흔이 남은 마음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고 싶다는 목적으로. 그러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매커니즘과 목적지의 방향을 바꾸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은 삶에서 부딪히는 일들과 내가 채우는 일상이라는 관성이 있다. 게다가 떠오르는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이나 몸에 배인 습성은 저절로 부유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마련이고, 나아가는 부분이나 나아지는 부분이 있다 해도 '아' 하는 짧은 사이에 나도 모르게 기존의 궤도로 돌아와 있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시도 해보려 한다. 오랜 시간 학교나 직장 같은 시스템에서 길들여지고 그곳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는 관성을 의식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해 본다. 살아가는 스타일이나 생각하는 프로세스를 의식해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한다.
사회 속 학교나 직장은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대부분 이러한 시스템의 범주 안에서 삶을 시작하고 선택하며 살아 간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선택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다양해 보이지만 막상 개개인의 입장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과거 시스템의 목표는 단순하고 구호도 노골적이었으며 목적도 분명했다. 공동이라는 집단성의 목표나 스타일이 개인의 삶보다 늘 우선 했다. 집단 안에서 경쟁하고 공동의 목적을 위해 나아가다 보면 개인이 바라는 삶의 형태가 따라올 것이라는 삶의 지도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시스템은 여러 방면으로 복잡하고 개인이 바라는 것은 다양해 졌고 집단의 목표는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심리적으로 자본주의 효율성과 개인의 욕망이 촘촘히 그물망처럼 엮여져 있고 빨리 빨리 움직이고 집단의 목표나 그것이 바라는 지향점을 일치 시키려 무수히 많은 배경 작업을 한다.
개개인을 움직이는 심리적 배경에는 성공의 이미지나 자본 자체의 힘이 있다. 개인의 욕망을 시스템의 목표에 일치 시키는 것으로 변화해왔고 이 거대한 힘의 패러다임은 아마 AI의 등장으로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AI자체를 개발해나가는 다양한 주체가 대부분 주식회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나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이곳 세계에서는 옳고 그름 같은 것이 큰 의미를 지니지 않았으나 모름지기 따라야할 것처럼 최소한의 정의에 매달렸다.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에게, 권위자에게 때론 맞추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래도 해야할 말이나 행동이 있을때 그 가치를 조금은 지키면서 살아왔다하년서 하루하루를 생에서 지워 나갔다.
그리고 다시 그 매일. 변하지 않는 날들 안에서 최소한의 옳고 그름을 속안에 담으려 시도했다. 바꾸기 힘든 시스템에 속해 있는 나날들임에도 더 인간적이고 더 정의로운 것을 꿈꿨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의 부딪힘과 좌절이 생겼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약자를 위해서라는 표식의 깃발을 들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지금 분명히 알게된 한가지가 있다. '나를 위해서'가 틀림없이 그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순수한 선의만 담겨 있을순 없었다. 가치 있는 삶을 살자는 의식을 머릿속에 담으면서 좋은물건, 좋은사람, 좋은음식, 좋은장소 즉 좋은 시공간을 옆에 두려 했다. 도대체 좋은것이 무엇이었기에. 사람도 물건도 가치관도 선택과 선택하지 않는 기준이 지극히 개인적이 되어버렸다.
까다로워지고 여유가 없어졌다.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웃음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약육강식의 세계로 나를 무장시키고 들어갔다. 이기고 지는 것을 늘 생각했다. 매일 매일. 조금은 패턴이 틀려진 요즘도 그런 생각이나 삶의 관성이 남겨져 있고 베어져 있음을 느낀다. 시스템이 원하는 세계 - 그 세계의 의미 없음을 잘 알면서도 나의 이기를 놓지 않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정도껏 롤 플레이를 해왔던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그런 롤 플레이를 하고 싶지 않다. 위선적인 선택들을 해나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들여온 삶의 관성이 다소 나은 생각과 신념 만으로 거짓이나 위선 같은 것을 세탁해 한번에 때를 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간다. 글을 씀으로써 조금 더.
그래서 매일 기록하고 움직이고 다시 생각하며 알아가고 글을 쓴다. 글의 장르도 가리지 않고 계속 쓴다. 저널.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생활 속 노래와 시. 에세이. 작은 단편과 중편, 쓰고 싶은 이야기라든지 저 너머에 있는 것들 쓰고 싶은 것들을 쓴다. 사소한 가치와 나라는 존재에 대해 글을 쓴다. 세상을 본다.
새로운 시각, 나아가는 진실의 힘을 글에 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세상은 만들어져 있고 돌아가는 방식이 있다. 어느 정도 시대를 살아왔고 시간을 보냈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선택을 해내가는 나만의 시스템이 있었다. 질문들. 질문과 부상하는 희미한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본질을 기록한다. 대부분 답이란 게 나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나를 알게 된다. 거짓을 꾸며 기록하고 써내려 가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심지어 만들어낸 이야기, 소설이라는 이야기의 장르까지도 그렇다.
이제 어떤 것들을 비우고 어떤 것들을 담아내야 될지 모르는 카오스의 시간이다. 시간 안에서 선택을 해나간다. 시간의 덩어리를 빚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생을 통해서.
이러한 시간이 언제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지금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방관한 사이에 문이 닫혀 버릴 것 같다. 그리고 그 문은 더이상 열리지 않거나 열린다 해도 시간이 꽤 흘러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 내가 계속해서 쓰는 이유다. 쓰고, 걷고 세상을 보고, 듣고, 말한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서서히 변화 시킨다.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소중하게 가져가야 할 것을 채워나간다. 이 단순함의 세계를 비우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몰랐던 세상의 단순한 진실, 하지만 알고 싶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조금씩 힘든 발걸음을 뗀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저편 넘어 정경이 열릴 것이다. 마음 속 열림과 함께. 이것이 내가 쓰는 이유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83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