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8일
영화 <모아나>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대사와 노래가 있다. 두 가지로 주인공 모아나의 할머니 탈라가 모험을 앞 둔 모아나에게 하는 말인 "You can sail beyond the horizon(넌 수평선 너머 저편으로 어디로든 항해 해서 갈 수 있어)"와 모아나2 OST 메인 테마곡 'Beyond'(저편 너머)가 그것.
영화에 나오는 섬인 모투누이는 폴리네시아의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섬으로, 가상의 섬이지만 이스터 섬의 모투누이를 배경으로 하기도 했고, 영화 <모아나> 또한 오세아니아의 일부인 폴리네시아 문화와 신화가 배경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 중인 특별전 <마나 모아나 – 신성한 바다의 예술, 오세아니아>은 오세아니아 예술과 문화를 국내 최초로 조명하는 전시로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전시다.
오세아니아의 신화, 공동체, 자연관을 다양한 시각에서 탐구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모아나와 같은 대중문화 속 오세아니아의 재현방식과 18~20세기의 실제 오세아니아 섬 지역들의 삶의 방식을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오세아니아의 신화, 공동체, 자연관이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다가온다. 미국의 종교학자이자 신화학자였던 조지프 캠벨은 자신의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모든 문화권의 신화는 공통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화는 '영웅의 여정'이며, 영웅이 일상 세계를 떠나 시련을 겪고, 변화를 거쳐 귀환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질서를 회복한다고.
<마나 모아나>의 전시 제목인 '마나(Mana)'는 폴리네시아어로 '모든 존재에 깃든 신성한 힘'을, '모아나(Moana)'는 '경계 없는 거대한 바다'를 말한다. 이번 전시는 오세아니아인들의 세계관, 자연과의 공존, 조상 숭배, 공동체의 기억을 예술을 통해 조명하며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전시는 몇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물의 영토"에서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오세아니아인들의 항해와 정착 문화를 소개하고, "삶이 깃든 터전"에서는 일상 속에서 사용된 도구와 예술품을 통해 삶에 대한 지혜를 보여준다. "세대를 잇는 시간" 챕터에서는 조상 숭배와 전통의 계승을 보여주는 유물을 보여주고, 마지막 섹션인 "섬, 그리고 사람들"에서는 공동체와 자연의 조화를 담은 예술 작품들을 선보인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대형 카누, 조각, 석상, 악기, 장신구, 직물 등이 있는데, 이들은 오세아니아인의 삶과 철학을 생생히 전달한다. 특히, 바다를 길로 삼아 이동하고 정착한 오세아니아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카누 뱃머리 조각 '도가이'와 카누 뒷 부분을 장식한 조각 '타우라파' 등은 그 상상력과 표현이 생생하다.
▲ 배의 장식들 배의 머리부분과 꼬리부분에 달았던 장식. 기원과 평화를 담아. 부디 무사히 돌아오라는 마음을 담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숱한 경계 위를 살아간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이 진정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경계의 순간'을 마주해야 하며, 그 안에서 공동체와 연결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공동체 감각'이라 일컬었는데 , 이것은 곧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같은 것.
어쩌면 오세아니아 사람들(부족들)이 믿었던 신화와, 현대의 우리가 알아가는 신화는 단순한 옛 이야기만은 아닐지 모른다. 신화는 때때로 인간이 삶의 방향을 찾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며, 존재의 의미를 회복하는 길잡이로서 신화를 넘어 삶의 등대가 되어 준다.
영화 <모아나>에서도 주인공은 바다의 부름을 받아 공동체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데, 이는 오세아니아 전통적인 신화상과 일맥 상통해 보인다. 이와는 반대의 한 예로, 윌리엄 골딩의 잘 알려진 소설 <파리대왕>은 비록 소설이지만 신화의 부재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무인도에 고립된 아이들은 초기에는 질서를 유지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명은 붕괴되고 야만성을 드러낸다. 이들은 집단을 통해 무의식적 공포를 만들어내고, 거짓된 신화를 만들어 폭력과 희생양의 정당화로 빠진다. 이는 신화 없는 세계 혹은 "마나" 없는 세계의 비극을 상징한다.
전시품들을 오랫동안 천천히 살펴보면 오세아니아의 세계관, 자연과 인간, 조상과 공동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다를 매개로 살아간 오세아니아 사람들은 자연을 단순한 자연 요소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며, 그 사이 모든 생명체에 '마나(Mana)'라는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보고 이를 생활 속에 녹여낸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는 현대인... 공존, 유대감 보여주는 전시품
오늘의 우리는 과거 시대 사람들에 비해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작 '가지지 못한 것' 주로 물질이라는 것에 시달린다. 외로운 현대인들은 그 외로움을 잊기 위해 소유에서 답을 찾고, 고독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기적 행동들을 일삼기도.
전시에서 보여지는 오세아니아인들의 생활은 그러나, 지금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정신의 중심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말없이 바다를 건넜고, 해류의 흐름을 통해 조상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섬과 섬을 잇는 항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대화하고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삶의 터전을 가꿨다.
자연과의 공존, 사람과의 유대감, 생에서 담고가는 의미와 같은 정신을 찾는 깊이가 담긴 이 전시의 전시품들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건넨다.
만약 우리도 모아나처럼 오세아니아의 부족들처럼 따뜻함을 품고 자연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러다 보면 질문과 대답을 함께 내포한 'Beyond', 그 무엇을 찾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편 너머에 있는, 각자만의 그 무엇과 조우할 날도 올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