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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외곽 한국여자 Jun 28. 2024

3일간의 뜨거움, 그 이후

감사합니다..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실게요


선선하네요


오늘 여기 최고기온이 24도인데요, 보통 오후 다섯시에 최고 기온을 찍고 이것이 저녁 여덟시까지 이어지는 식이라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후 두시 기준 현재 21도입니다.


어제는 더웠어요.

네.. 지난 며칠은 분명 더웠습니다.

어제가 최고 기온 32도 체감기온 34도였고, 심지어 2층에는 지붕 양쪽 밑으로 각각 내 방 아이방이 있는데 그곳의 '밤' 실내온도가 30도였습니다. 작년까지는 이렇게 잤습니다.. 한여름에는 이보다 더했죠. 40도까지 올라가는 날도 있었으니깐요. 그래도 각방 선풍기 한 대씩 되도록은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죠


하지만 올해는, 이틀 전이네요, 이렇게는 안 되겠다 방법을 찾아보자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응접실, 말이 거창한데 그냥 피아노와 큰 탁자와 의자 다섯 개가 있는 공간이고 여기가 이층의 침실보다 덜 더워 보이더라고요, 그곳의 탁자를 벽 쪽으로 밀어 두고 반대 벽 쪽으로 매트리스 두 개를 깔았습니다. 밑에 아이들용 놀이방 매트를 두 개 받쳤구요. 그런데 이 방의 온도도 아침이 밝을 때까지 28도였네요. 에어컨은 없고 덥다고 옷을 크게 거의 걸치지 않은 몸에 선풍기 바람이 너무 차게 느껴져서 껐고.. 또 너무 더워서.. 켜고.. 껐다가 켰다가 껐다가 켰다가...


한편, 같이 살고 있는 남자가 사용하는 매트리스는 킹사이즈라서 2미터니까 이 공간에 넣을 수가 없다고 거실에 있는 오픈식 소파에서 자라고 했는데 들은 채 만채 하더라구요. 솔직히 내가 소파베드 펴서 커버도 깔아주고 주변 정리도 해주고 했으면 거기서 잤을 거예요. 근데 날도 덥고 해서 알아서 좀 하라고 했더니, 자기는 안 챙겨주고 순식간에 소외감을 느끼고 기분이 확 상해버리더라구요. 낮에는 내가 잘라 준 머리가 그렇게 마음에 든다고 “넌 정말이지 섬세한 손끝을 가지고 있어서 최고의 esthéticienne, coiffeuse, 고맙다” “너무 마음에 든다”며 뽀뽀를 날리며 기분 좋아하더니.. 하여간에.. 날이 더워지니 저이의 저질 체력의 바닥이 또 여실히 드러나네요..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추우면 추워서 난리 더우면 또 더워서 난리.. 장르가 너무 하드코어네요


그렇게 그는  '열기 속으로' 그냥 기어올라갔어요 보란듯이. 그러고는  새벽 3시에 무슨 괴성이 시작됩니다. 겨우 붙였던 눈을 뜨고 보니 제이가 너무 더워서 그리고 자신을 안챙겨주고 2층에 내버려두고, 둘이서만 함께잔다는 것에 분노하여 앙갚음이라도 하는건지 뭔지 세상 기괴하고 서럽게 포효하고 있는 거였어요.. 이거 저번 바캉스 때 지하에서 한번 들린 적이 있었네요 그러고보니.. 정말 내가 어디 동물원에서 사는 것인지 뭔지 자다가 또 심란해졌지만.. 자기 엄마가 그렇게 하듯이 따라다니면서 얼르고 달래고 하지 않으려구요 한 십년 같이 살다보니 그렇게 해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기만 하고 해서 지난 바캉스 때 지하실에서 같은 상황이었을 때 십년 만에 처음으로 몇 번 흔들어보다가 니 맘대로 해라 그러면서 냅두고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효과가 길게 간 것을 깨달았기에 이번에도 그냥 냅두려구요. 다행히 몇 분 뒤에 부르짖음은 잦아들었습니다. 곤하게 자고 있지만 혹시 괴물이 좇아오는 악몽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 아이를 물끄러미 한번 쳐다보고 힘들게 들었었던 나의 깨버린 잠을 찾아 다시 이렇게도 누워보고 저렇게도 누워보고 그랬습니다.



이곳의 여름 날씨는 며칠 바짝 엄청 덥다가 또 선선하다가, 또 엄청 달구다가 좀 떨어지고 이런 식인데, 어찌 보면 제이가 회사에서 뭔 일이 있으면 바짝 사람 피를 말리다가 또 괜찮다가.. 자기 엄마 아빠 새엄마와 뭔 일이 있으면 바짝 사람 피를 말리다가 또 괜찮다가.. 하는 패턴과 유사한 점도 많은 것 같네요.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50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이, 1980년대 이후 두 배로 늘었고 평균 45도 이상을 기록한 날도 1년에 2주 정도 더 발생했다고 합니다.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극한 기온의 발생도 잦아지고 그 세기도 더욱 강렬해지고 있는 거죠.


기후 과학 권위자는 "이처럼 고온일수가 늘어난 건 100% 화석 연료의 사용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왠지 우리 집에 1982년에 태어난 저 남자 사람 하나가 태생적으로 ‘열’을 품고 있음에, 내 열도 올리고 지구 온도도 높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한한 생각까지 해 봅니다.


그럼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무엇이든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을 수 있는데요..

한 기후학 박사는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또 "실행을 빨리 할수록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라고 했습니다. 또 여기서 'oo탈출은 지능순'이라고 하는 말이 동시에 떠오르는데요 저 동그라미 안에는 각자 상황에 맞게 여러 단어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신혼 초에 긍정회로 심하게 돌릴 때 말고는 진짜 보따리 싸서 한국 가는 상상 수도 없이 많이 했는데요.. 지능이 저조한 관계로 여태껏 그 나물의 그 밥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어이없지만, 매 맞고 사는 여자들이 다음 날 꽃 사들고 와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 믿어달라 하는 남편에게 조련이 되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함께 사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좀 되네요.. 이렇게 살아보기 전에는 참 한심하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참 안타깝다,라고 느꼈던 것 같은데.. 이해가 되는 이 상황이 그러고 보면 참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네요.


열흘 간의 일기 예보 파리-대구 (Auj: 오늘 6월 28일 금요일)


위의 첫 번째 사진은 파리의 날씨 예보예요.

서울은 파리보다 6배가 커요. 그래서 '파리'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파리외곽지역(petite couronne)'을 다 합해야 '서울'의 1.3배 정도입니다. 그래서 파리 1구에서 20구까지 온도와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온도는 거의 동일합니다. 지금은 21도, 그리고 조금 있다가 네 시에 아이 찾으러 갈 때는 23도 정도입니다. 어제와 비교해서 거의 10도 정도 차이가 납니다. 마치 전국적으로 에어컨을 틀어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바람이 선선합니다. 숨통이 좀 트이네요..



1. 저는 이제 일자리를 구하러 구직사이트를 또 가봐야 합니다. 지난주에는 노동청에 교육받으러 오라 해서 전체설명회에 참석했었어요, 실업급여 종료 관련인데 한 이십 명 정도 모였었고, 아쉽게도 저는 이 이후에 특별히 새롭게 지원받는 보조금은 전무한 케이스였습니다. 그러니 제이의 압박이 좀 쎄게 들어오네요, 아무래도 눈꼽만한 제 실업급여가 다음 달이면 툭 끊기니까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2. 또 두 달간의 여름바캉스가 다음 주말부터 시작이 되기에 거기에 대한 '제이 안티 미꾸라지-소금 상황 대책마련'도 해야 합니다. gite de france 지뜨 드 프랑스라는 사이트에서는 일주일 단위로 숙소를 예약할 수 있는데 여기는 보통 3개월 전에 좋은 숙소는 거의 다 예약이 끝나버려요 가격도 다른 사이트보다 훨씬 저렴하기도 하고 바닷가 초근접인 경우도 많고 해서 지금 가면 거의 끝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프랑스 바다에 안 간지 몇 년이나 지났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한국바다는 지난 8월에 갔었어요. 포항.


3. 그리고 지난 수요일에 아이 학교 없는 날 덥기도 해서 영화관에 갔었는데 '인사이드 아웃' 후속 편을 봤거든요. 이 영화에 대해 아이와 아직 얘기를 나누지 못했어서 생각을 좀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야 할 듯한데..


이러니.. 매일 집에서  하냐고 시어머니가 물어봐도  말이 없네요. 이런 기본적인 것도 하지 않으면서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네요. 아이 깨워서 학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아이 점심 준비하고 데리러 갔다가 데려다주고 음악원 갔다  왔다가 댄스 하러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합창 왔다가 갔다가 도서관 예약도서도 찾으러 가고 반납도 하고 , 그러고 보니 반납예정일 지난 것이 3권이나 있네요.... 그리고 정원에 풀도  번씩 뽑고 이불빨래 해서 널고 집안 정리에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하고 아이 피아노 연습도 봐줘야 하고 숙제도 확인하고 슈퍼에 시도 때도 없이 들락날락 봉다리 봉다리 들고 왔다 갔다.. 저녁 재료 준비되면 식사 만들고 차리고 치우고 내일 먹을  재료 확인하고 아이 목욕물도 받아주고 씻기고 말리고 욕조 정리하고 잠자리 봐주고 배드타임 이야기 나누기하고.. 그러고보니 커튼도 내려서 한번  좋을  빨아 말려야겠네요.. 이외에도 뭔가를 잡다하게 하느라    손에 잡지 못하고 분주하기만 하네요


시어머니께서 “일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니? 뭐 하니 하루종일?” 이렇게 나를 걱정하는 것인지 혼자 외벌이를 하는 아들이 겁나 안쓰러운 건지 모를 말을 몇 번 햤는데, 처음엔 기분이 순간적으로 완전 안 좋았는데..

“그런 거는 다른 여자들은 일하면서도 다 하는 일이다”는 말을 지 마누라 방어하려던 제이에게 바로 날리시는 걸 들은 이후에는 그냥 그러려니 해요.

반박해서 뭘 할 것이며 잘잘못을 가려 뭘 하겠어요사람을 어찌 사람이 바꾸겠어요 다 부질없는 일인 것을




솔직히 덥다가 춥다가... 어느 박자에 맞춰 춤출지 정신이 없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커버가능한 마인드를 장착하고 잘 살아보겠습니다.


일단 다짐은 호기롭게,


여름아 와라!
어떤 형태의 계절이든 다 들이대봐라!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바통 터치받고 치고 들어 올 '고온의 날들'이 벌써부터 좀 두렵기는 합니다.


음.. 38도 40도.. 몇도까지 올라갈 지

고온의 날들이 얼마나 이어질 지

그 심중을 전혀 알 노릇 없으나


우리 모두 건강하게 여름 잘 나길..

어떤 모양새를 하고 나타나든지 너무 놀라지 말길..


삶은 고통의 강을 건너는 거라는데

함들 때도 헤엄은 계속 쳐야하고

부표를 잡고 잠시 쉬었다가 가더라도

이 강을 무사히 완주해내려면

여러 영법은 필수인 듯합니다.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보고


조금씩 조금씩

매일 조금씩만 더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그 신성한 죽음의 문에 닿아


내가 내 손으로 탁,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


고귀한 생명에 이르는 죽음의 그 길에


최초의 내 걸음을 내디딜수 있을 것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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