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요기
터키 (지금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도착을 하였다. 다음 행선지는 인도. 터키는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터키를 여행하고 싶은 욕구가 크게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과감하게 인도로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알고 보니, 터키 이스탄불은 비행 편을 환승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동남아의 허브 공항이라고 하는 태국의 방콕과 비슷한 위치인 것 같다.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이스탄불은 매우 다양한 비행 노선이 있다. 그러므로,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저렴한 비행 편도 많은 편이다. 사실, 내가 이곳을 오게 된 것도, 저렴한 비행 편 때문이었다.
이곳 이스탄불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서둘렀다. 부랴부랴 다음 행선지 비행 편을 위한 체크인 게이트를 찾아보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약 2-3시간 후면, 인도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한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인도로 가는 비행 편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있어야 할 텐데 왜 없을까?
아뿔싸! 알고 보니 이스탄불에는 국제공항이 두 곳 있었다. 이스탄불 국제공항 (İstanbul Havalimanı)과 이스탄불 괵첸 공항 (Sabiha Gökçen Havalimanı)이다. 내가 내린 곳은 괵첸 공항이고 내가 예약한 비행 편은 이스탄불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아차! 나는 당연히 내가 예약한 비행 편이 같은 공항에서 출발할 것이라고 의례 짐작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빨리 가면 비행기를 탈 수 있지 않을까? 이 공항에서 그 공항까지는 버스로는 2-3시간은 걸리는 거리다. 어쩔 수 없구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최적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포기할 때는 포기도 해야 한다. 억지로 되지 않는 일을 붙들고 있어 보아야 마음만 애쓴다. 어찌 되었든 나의 실수였다.
그렇게 나는 하는 수없이 이스탄불에 머물러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스탄불은 과감히 지나 치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 또한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의 전개에서 무엇인가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 운명. 이는 비단 여행에만 국한되는 상황은 아닌 듯하다. 한 사람의 인생 자체가 이러한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이 아니던가? 이러한 상황에서 종종 매우 흥미로운 혹은 진귀한 일이 발생하곤 한다.
호텔 예약사이트에서 방을 알아보았다. 보통 방을 볼 때, 저가 순으로 정렬을 해서 본다. 우선은 가장 저렴한 곳은 걸러 네고 적당한 선에서 괜찮은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하려고 하였다. 가장 저렴한 곳을 고르다 몇 번 낭패를 본 적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베드버그의 쓰디쓴 경험이 아직도 나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렇게 스크롤을 좀 내리고 적당히 평가가 괜찮은 숙소를 클릭하려고 했는데, 순간 내가 클릭한 곳이 아닌 다른 숙소의 페이지가 뜨는 것이 아닌가? 이것도 AI 기술인가 했다.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그 자동적으로 뜬 숙소를 살펴보았다. 사실, 이렇게 상황이 전개된 것은 찰나의 순간과도 같이 너무 빨리 전개되었다. 그런데 마침, 이 숙소가 괜찮아 보였다. 무엇보다 숙박비용이 저렴하였다. 하루 숙박에 6달러로 기억한다. 장소도 나쁘지 않았다. 이스탄불의 매우 번화가 중 한 곳인 탁심 광장 (Taksim Square) 주변에 위치해 있다. 그래 여기로 결정하였다. 예약을 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이곳에 도착을 하니, 생각보다는 건물이 허름해 보였다. 슬슬, 낚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예약사이트에서 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리셉션 데스크가 있었다. 그리곤 한 명의 피부가 까무잡잡한 중년의 남성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오스만 압둘라 (Osman Abdullah). 흥미로운 점이라면, 그는 장님이었다. 2023년 이후로 눈이 멀게 되었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점이라면, 그는 호스텔 방문객에게 요가와 마사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짐작하게 되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요가를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드문 경험일 것이다. 그와 몇 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쪽 방면의 지식의 깊이가 꽤 깊어 보였다. 물론, 석연찮아 보이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그가 장님이 된 것은, 사람을 많이 죽인 살인자를 치유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10대 때부터 요가를 스스로 배웠고 중국에서 기공 마스터들에게 기공을 수련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인도 아쉬람과 이슬람 성지 등을 전전하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하였다. 그는 남 아프리카 (South Africa) 출신이지만, 두바이에서도 비즈니스 관련 일을 했었다고 한다. 사실 그는 호스텔을 떠나고 안 좋은 일들이 많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다시 되돌아오고 나서야, 본인의 자리를 찾은 것일 것이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꽤 오랫동안 했다. 저녁에 도착을 해서 그다음 날 아침까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에게 설득당하여, 그곳에서 며칠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